제사장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기적적으로 아이를 잉태한 지 여섯째 달이 되었다. 어느 날 밤, 엘리사벳은 깊은 잠결에 신비로운 꿈을 꾸었다. 눈부신 빛과 함께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가 그녀에게 말했다. "엘리사벳이여, 기뻐하라. 이제 곧 주님을 잉태할 여인이 너를 찾아올 것이니, 그를 돕고 보호하는 것이 너의 사명이다."
다음 날 아침, 엘리사벳은 꿈의 의미를 되새기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사촌 동생 마리아가 서 있었다. 엘리사벳은 간밤의 꿈을 떠올리며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안으로 들였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마리아야, 혹시... 네가 그 여인이냐?"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또한 가브리엘 천사를 만났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정혼자 요셉의 씨가 아닌, 하늘의 씨로 주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털어놓았다.
마리아의 고백은 엘리사벳을 깊은 고뇌에 빠뜨렸다. 율법을 어긴 처녀의 운명과 하늘의 뜻 사이에서 그녀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남편 사가랴는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조언도 해줄 수 없었고, 엘리사벳은 홀로 방에 들어가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에 잠긴 엘리사벳의 눈앞에 환상이 펼쳐졌다. 그녀는 조상 아브라함의 두 아내, 사라와 하갈이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갈등은 온 집안에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환상은 계속해서 야곱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자매였던 그들 역시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평생을 불행 속에서 살았다. 엘리사벳은 그들의 슬픔이 마음으로 전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환상이 걷히자, 다시 가브리엘 천사가 엘리사벳 앞에 나타났다. "보았느냐. 네 조상들의 고통은 아내들이 서로 사랑하며 돕지 못했기 때문에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여인들이 서로를 품지 못할 때, 그 가정과 민족에게는 불행이 따랐다."
천사는 말을 이었다. "마리아는 하늘의 씨를 받아 주님을 잉태할 것이다. 세상의 법과 편견 속에서 그녀가 무사히 아들을 낳기 위해서는 너의 지혜와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너의 사명이다." 엘리사벳은 자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지만, 그 책임의 무게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엘리사벳의 주저함을 본 가브리엘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네가 두려움 때문에 사명을 이루지 못한다면, 네게 아들을 준 의미가 없다. 너의 아들은 장차 마리아의 아들이 걸어갈 길을 예비해야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엘리사벳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천사가 떠나자, 엘리사벳은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마리아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도움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가는 거룩한 동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