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아니요.”

by 겨울

“꼼장어 드실래요?”

“어디 괜찮은 데가 있나?”

“동암역 근처에 꼼장군이 유명하대요!”

“그래 그럼 가보자.”

그날은 일이 늦게 끝났다. 사장과의 불협화음으로 대화가 길어졌고, 합의점을 찾아낸 끝에 퇴근을 했다. 뭐라도 먹고 가자는 사장님

“맛있네”

“그쵸? 이제 가요.”

어느 정도 먹었다. 맵다며 헤헤 거리는 꼴이 꽤나 보기 싫었지만, 외국생활 오래 하다 와서 그런 거려니 하고 자리를 계산하고 나왔다.

“2차는 미스김이 사는 건가?”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는 새벽, 그는 집으로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네? 음.. 맥주 드실래요?”

그날따라 빨리 들어가라는 듯, 유난히 눈이 비처럼 내렸다. 따뜻한 날씨에 쌓일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내가 눈으로 인해 젖기엔 충분했다.

“맥주? 어디 마실 데가 있나?”

“저기 안쪽에 하나 본 거 같은데”

“잡아줘, 구두가 미끄럽네, 이거 성추행 아니다?”

“네”

본인의 정장구두는 미끄러우니, 팔짱을 껴서 잡아달란 말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늙은 사장님의 팔짱을 꼈다.

“어, 문 닫았나 봐요. 불이 다 꺼져있네요.”

“에이, 신발 젖었다. 다시 올라가야 되나?”

“네, 맥주 마실 곳이 없는 것 같아요.”

나는 눈치도 없이 맥주집을 찾았다. 그리고 끝까지 그는 자신의 팔을 빼지 않았다.

“그 옆에 노래방 있지 않았나? 거기 가자!”

“네? 그냥 집에 가요.”

“한 캔씩만 먹고 가자!”

“음.. 알겠어요”

“미스김 두곡, 나 두곡 이렇게 부르고 가면 되나?”

노래를 부르고 가고 싶은 건지, 집에 들어가기 싫은 건지, 집에 가자는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는 사장님은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노래 한곡을 불렀고, 두곡, 세곡 맥주도 두 캔째 됐을 때 상황이 정상적이지 않음을 직시했다.

“어이구, 이거 완전 볼매네”

“네?”

“볼매야!”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사장님을 보며, 아차 싶었다.

“왜 이러세요.”

경계하는 나와 달리, 그는 씩 웃으며 말이 없었다. 본인의 곡을 부르더니 내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얼떨결에 일어났고 양팔 벌려 안으려는 자세를 취한 사장님을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러더니 나를 안았고, 외국인들이 하는 볼 키스를 했다. 외국에 오래 살다온 사장님은 늘 외국문화를 알려줬다. 그날의 문화는 퍽이나 불쾌했다. 불쾌하다 못해 섬뜩했다.

“사장님 진짜 왜 이러세요.”

내 몸은 이미 떨려왔다. 그는 더 이상 사장님이 아니었다. 내 허리에 손을 감쌌고 손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손을 다른 한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밀어내려 했을 때, 그는 얼굴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그를 자리에 앉히고 나도 자리에 앉았다. 그는 요즘 뉴스에 나오는 성추행 사건들이 재밌기라도 한 듯 연신 물어댔다. 그 순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순간의 물음은 그의 성희롱이었다.

“성희롱, 성추행, 성관계?”

“아뇨, 성폭행이요.”

알면서 모르는 척 묻는 건지, 날 조롱하기 위한 물음인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이때의 물음으로 알았다. 어떤 물음인지

“아,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성관계?
뭐가 다르지?”

“모든 건 여자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일어나요.”

“허리도 감쌌으니, 내가 성추행 한 건가? 허허 이거 재밌네? 성희롱, 성추행, 성관계? 나는 미스 김이랑 이 마지막께 하고 싶은데”

마지막 손가락을 접으며 관계가 하고 싶다던 그의 달라진 눈빛 앞에 나는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소름이 돋았고 온몸이 바르르 떨리며 심장이 미친 듯이 빨리 뛰어 숨통이 조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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