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

by 겨울

다음날, 바보 같은 나는 출근을 했다. 순간순간 울컥하는 마음을 수백 번은 누르며 퇴근시간까지 버텼다. 그런 그는 어찌나 뻔뻔하던지, 너무나도 순진무구하게 무엇이 잘못된 건지 모른다는 듯,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소같이 직원 대하듯 나를 대했다. 기가 찼다. 다시 한번 소름이 돋았다. 그러고는 배가 고프다며 짜장면을 먹겠느냐 물었다. ‘네 얼굴을 보고 짜장면이 넘어가면 내가 사람새끼도 아닐 거다.’ 속으로 말했다. 난 그저 퇴근시간만을 기다렸다.

정산을 마치고 사장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더 이상 얼굴 보고 일을 못하겠으니 그만두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려던 찰나, 나에게 시비가 붙었다. 내 말투를 운운하며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 했다. 별 같잖지도 않은 놈이 시비를 거니 어이가 없었다. 무섭지도 않았다. 그런 그를 바라보던 사장은 시비 거는 그에게 웃으며

“안 오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욕이라도 할 기세로 노려봤지만, 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청년의 친구들은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며 돌아갔다.

“내가 저 술 취한 놈과 뭐가 다른가 싶네, 이렇게 보니 확 와 닿네.”

속으로 말했다. ‘네놈이 저놈보다 백배 천배 나쁜 놈이다.’
낯짝도 두껍지, 그런 그는 달력을 보며 당장 6월 해외출장도 가야 하고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 내게 일을 더 해줄 수 없겠느냐 부탁했다. 또, 같잖은 칭찬으로 직원으로서의 나를 놓치기 싫다고 말했다. 어쩜 이렇게 끝까지도 이기적일 수 있는지, 그 사람의 속이 부럽기까지 했다. 본인의 그림대로 움직이지 않을 다음 상황이 겁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저, 알아서 갈게요.”

“데려다줄게.”

“필요 없어요.”

더러운 그와 말도 섞기 싫었기에, 일이 끝나자마자 집에 가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미스김, 한 번만 용서해주라, 미안하다.”

그는 내 앞으로 와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았다. 빌었다. 하지만 떨림 하나 없었고, 여전히 뻔뻔했다. 구역질이 났다. 더 모질게 대답하지 못한 내가 원망스러웠다.

“사장님이 잘못해 놓고 왜 저한테 그러세요.”

“그래 내가 잘못했지. 내가 다 잘못한 거야. 한 번만 내 얼굴 봐주면 안 될까?”

그 순간 그에게는 무엇들이 스쳤을까, 아내? 자식? 사업? 범죄자? 글쎄, 적어도 범죄자는 스치지 않았을 것이다.

“싫어요.”

“미스김 그러면 나도 상처 받는데”

“상처는 사장님이 줘놓고 왜 저한테 그러시냐고요.”

나도 사람인지라 참고 누르던 눈물이 터졌다. 하지만 고개를 치켜 천장을 바라보며 애써 숨겼다. 코끝이 아려왔다.

“그럼, 다음 일자리 구할 때까지만 있으면 안 될까?”

“그쪽 얼굴 보기 싫어요.”

참고 있던 한 방울의 눈물이 책상 위로 뚝- 떨어졌다. 비참했다.

“다른 일자리 알아봐 줄게.”

“필요 없어요.”

“사실 나는 이 가게를 오래 할 생각이 없어. 그리고 무역회사를 하면서 함께 일할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미스김이 일하는 것 보고 함께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영어학원도 지원해준다고 한 거야. 운동도 꾸준히 하길 바란 거고 그렇게 3개월은 하면 뭐라도 달라지지 않겠어?”

일하면서 빤히 보이는 사장의 사업적 큰 그림을 눈치 못 챈 게 아니다. 일할 때만큼은 괴짜스럽지만 남다른 열정과 안목, 상황 대처력에 배울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게 그곳에서 일하는 이유의 전부였다.

“네, 저도 단순히 이곳에서의 먼 미래를 내다본 게 아니었어요. 오래 일할 생각이 있어서 열심히 한 거죠. 그런데 어제 이후로 다 사라졌네요.”

“그럼 일단 시간을 가져볼래? 마음이 괜찮아지면 다시 일하는 거야. 나는 여기 안 있을게. 미스김이 다 하는 거야. 미스 김정도 면 스스로 다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사리분별 못하는 그는 뻔뻔해도 너무 뻔뻔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그들만큼.

“안 해요.”

“하.. 어떻게 해야 미스김이 사과를 받아줄까?
고모님께 말했니?”

“아뇨.”

“내가 고모님 얼굴이라도 뵙고 사과드리면 좀 풀리겠니?”

“그렇게 해보세요.”

그의 사과가 얼마나 눈물겨울지 지켜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상황을 어떻게 서술할지, 얼마나 솔직할지 기대조차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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