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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 Oct 29. 2020

도피와도 같은 여행

프롤로그

2015년, 고등학교를 졸업 후 제천에 있던 모든 짐을 싸서 인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의 얼굴을 맞이한 적이 거의 없다. 그들은 내가 고향에 갈 때마다 반갑게 마주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만들어주었다. 부모님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형용할 수 없는 어색함과 적막함 그리고 불편함을 느꼈다. 그 후로부터 5년이 지났을까. 도피와도 같은 기나긴 여행이라는 이름의 방황이 시작됐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동안 한국을 떠나있고 싶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속에 있고 싶었다. 내가 온전하게 편안함을 느끼는 시간은 오롯이 나 홀로 외롭게 여행할 때뿐이었다. 사람은 이름처럼 살아간다는 말처럼 나는 혼자가 편하고 좋았다. 버스에 몸을 담는 시간. 기차로 이동하는 시간. 비행기 안에 있는 시간. 내게는 여정을 위한 모든 시간들이 아주 편안하게 다가왔다. 몸은 불편했어도 마음은 편안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는 그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는 용서와 치유라는 명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학도 직장도 가족도 모두 뒤로한 채 한국을 떠나자고 결심했다. 혼자 오랫동안 떠나면 괜찮아질 것 같았다. 남들 눈에는 여행이었지만, 나에게는 방랑이고 방황이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우울감과 무기력에 시달리며 힘겹게 몸을 옮긴 날이 적지 않았다. 방황의 긴 여정은 과거와 그 안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외면했던 모든 것들을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머나먼 땅에 발을 내디뎠다. 길 위에서 저마다의 삶과 사연을 마주했다. 누군가의 삶을 마주한다는 것은 마추픽추 같은 멋진 곳을 다녀오는 것보다 가슴 깊숙하게 남았다. 깊은 것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내 과거의 자리를 침범할 때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떨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내 마음이 누군가의 삶으로 가득 차도록 계속해서 낯선 이들의 삶과 사연을 마주하려 노력했다. 마음과 돈이 넉넉하지 못한 시간들이었다. 외롭고 고독한 날들도 많았다. 하지만 분명하게 칭찬하고 싶은 한 가지는 지독하리만큼 스스로를 온전하게 내버려 뒀다는 거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을 때까지 떠돌아다녔다. 내 곁에 많은 것들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머나먼 곳을 떠돌아다녔다. 


나를 아프게 했던 시간을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 한 켠 아주 깊숙이 박혀 있는 그 아픈 기억들을 이 글로나마 지워내고 싶을 뿐이다. 지워지는 것도 때로는 흉터를 남겨야만 지워낼 수 있다. 글을 써내리며 많은 눈물도 쏟아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쏟아낸 눈물과 함께 나의 마음이 그 시간들을 서서히 용서하는듯했다. 단 한 번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던 내가 이 글이 마무리되어가면서부터는 서서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나로서는 굉장한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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