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서관을 나와 지나던 길목에서 들은 말이다. 어르신 두 분이 앉아 계셨는데 앞뒤 문맥은 생략된 채 이 한 마디만 스치는 찰나로 들었을 뿐. 전후 사정은 모르지만 어조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란 게 있지 않나. 그래서 어르신의 푸념, 한탄으로 다가왔는데 이것도 어설픈 편견일까 두렵다.
가는 길에 계속 생각했다. '집의 온기'란 무엇일까 하고. 집의 온기란 무릇 사람의 온기에서 피어난다. 그렇지만 반드시 집에 머무는 사람의 수가 그 온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북적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소란의 행복이 있으면 고요의 행복도 있는 법이다. 온기를 느끼는 감각도 서로 다르며 저마다의 온기로 집을 채워 간다. '온기'의 다른 말은 '편안함''안락함''안정감'이 아닐까. 꼭 같이 사는 가족이 있어야만 돌아온 집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집에 왔을 때 꼭 누군가가 반겨 주어야 할까.
내가 집을 반길 수는 없을까.
내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집'의 조건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쉴 수 있도록 잘 정돈된 집, 나의 생활 패턴에 맞춘 가구와 생활용품의 배치, 자주 창문을 열어 정체되지 않은 집 안의 공기, 작지만 아늑하고 단정한 방.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집이라면 돌아오는 발걸음도 가벼울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집이어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결국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때로는 공간의 에너지를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이 결정하기도 한다. 같은 공간이라도 어떤 사람이 머무느냐에 따라 그 공간이 갖는 에너지는 달라진다. 단순히 외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 기류가 다른 걸 우리는 알아챌 수 있다. 나의 감각에 따라 느낄 수 있는 온도도 달라지는 것이다.
내 손 때가 묻은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명상을 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그렇게 몸을 누이는 곳을 가꾸고 마음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그런 일상이라면 나의 온기도 쉬이 식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저 미온의 일상을 보내고 싶다. 내 온기를 지킬 수 있게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나를 편안하게 하는 일들을 하며 집에 머물고 싶다. 그런 곳이라면 세상 어디든 그곳은 '내 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