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고 싶은 곳 있어?"
친구가 물었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서 유명한 여행지, 관광지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더 이상 그런 곳에는 흥미가 없다고 했다. 한때는 세계 일주가 꿈이었다는 얘기도 했지만 그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다음에 여행 같이 가자"라는 말에 그러자고 답했지만 그것도 사실 빈말이었다.
그동안 언젠가 가고 싶다고 캡처하고 저장한 많은 여행지들이 어느 순간 내 기억에서 사라져 있었다. 특정한 장소가 가고 싶다는, 어느 한 곳이 머리에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관광과 휴양을 놓고 어느 쪽을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휴양에 가깝다고 답하겠지만. 그건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 아니다.
생각해 보았다. 내가 떠나고픈 곳. 내 발을 딛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하고. 그러다 답을 찾았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나무, 흙, 숲, 바다가 있는 곳. 그런 곳이면 어디든 좋다.
조금은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면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 좀 더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딱딱한 아스팔트보다는 흙길을 밟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나무가 많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그런 곳을 걷고 싶다. 그게 전부다.
한 가지 꿈꾸는 여행은 있다.
바로 나무를 만나러 떠나는 여행
언제부터였을까. 나무에게 시선이 갔다. 지난봄에 통영에서 일주일을 지낸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고목들을 찾아다녔다.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그러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을 뿐. 그건 우연한 발걸음이자 자연스러운 이끌림이었다.
나무에 대한 이끌림은 그것보다는 오래됐다.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는 한 책에서 나무의 지혜로움을 전해 들었을 때이려나. 사실 정확히 모르겠다. 애초에 인간은 자연과 가까워서 이건 본능이 아닐까?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무 아래 서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마치 나를 위한 세상의 유일한 그늘이 여기 있었다는 듯한 안정감을 느낀다. 나를 힘들게 한 모든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세상 걱정이 사라지는 순간에 사로잡힌다. 착각이어도 좋을 만큼.
내 나이보다 오래된 나무. 그 자리에서 태어나 그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나무에서 오랜 지혜를 배운다. '나무는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가 불행한 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내 행복으로 가지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백 년, 이백 년,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지나온 나무를 만나러 떠나고 싶다. 그게 내가 꿈꾸는 유일한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