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거실에서 들려오는 시끄러운 음악이었다. 집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는 스피커 소리. 옆집이 "떠나가라" 소리쳐도 아랑곳하지 않을 것 같은 무감각. 그곳을 스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장을 보러 가는 길. 가는 길목마다 앞선 사람들에게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범인은 그들의 손에 걸린 담배. 그 팔을 휘젓고는 떡하니 걸어간다. 뒤에 누가 오든 말든 관심이 없다. 그저 입에 문 것에만. 아니, 그들은 자신의 입에 문 것이 무엇인지나 알고 있을까? 모를 것이다.
그 연기 속을 헤치고 발견한 참외 트럭. 만 원을 건네고 아주 작은 참외 한 소쿠리를 골랐다. 건네는 봉지를 마다하고 들고 간 장바구니를 내밀었다. 돌아오는 한마디 "고마워라". 나는 그 말이 더 고마웠다. 내 작은 노력을 봐 준 배려가. 돌아서며 아저씨가 참외를 많이 팔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란 꼬마 참외를 끌어안고 발을 재촉했다. 아니나 다를까, 담배 연기는 내 발을 따라다니나 보다. 나는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연신 숨만 참기 바빴다.
뱉은 숨을 돌리고, 집 앞에 다다르자 옆집에서 부산한 모습이 보였다. 페인트칠을 새로 한 것인지 물을 뿌리며 씻어 내고 있었다. '아, 들어가야 하는데...' 그리고 보였다. 집에서 나서며 내놓고 간 종이 상자가 젖어 있는 것을... 깊은 한숨이 나오려던 찰나, 나도 내기 힘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미안해요"라는 사과가 들려왔다. 그 한마디에 '오늘 참 인류애를 잃게 만드는 날이구나. 바깥세상은 변한 게 없구나.' 싶었던 온상이 사르르 녹았다. 젖은 박스도, 신발의 밑창도 아무렴. 아무렇지 않았다. 나는 진심으로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래, 그거면 되는 거다. 사과할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한다. 잘못을 하면 사과를 하고, 자신이 놓친 것을 주워 담으려는 작은 노력을 해야 한다. 결코 주워 담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게 말 한마디로 된다면 우리는 해야만 한다. 우리가 해야 하는 배려란 그런 것이다.
나는 '배려 없음'이 싫었던 거다. 그리고 또다시 배운다. 나는 오늘 배려 없는 순간이 없었는지를. 나를 다시 돌아본다. 배려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먼저 배려를 품고 있는 사람이 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