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좋아해요?"
그가 물었다. 그저 그렇다고 답했다. 머릿속에 꽃다발의 이미지만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꽃을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꽃다발을 받는다면 어색한 미소만 지을 것 같다.
꽃을 선물로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하게 말하자면 싫어한다. 꽃은 그저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어린 날의 졸업식에서 꽃다발은 싫다고 차라리 먹는 것으로 달라고 했던, 그래서 사탕 다발을 한 아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보기 좋으라고 혹은 누군가의 환심을 사려고 굳이 생명을 꺾을 필요가 있나. 우리가 먹으려고 취하는 생명과는 엄연히 다른 의미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호오가 분명하진 않았다. 정확한 시점은 모르지만, 언젠가부터 꽃 선물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들, 큰 상을 받았을 때 축하의 의미로 건네받은 꽃, 어버이날 선물로 드렸던 꽃들... 많은 꽃을 주고받으면서 생각의 경계를 오갔던 것 같다. 때로는 꽃다발을 끌어안고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고, 때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꺾인 생명에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자라나며 꽃 선물에 대한 거부감도 조금씩 커졌고,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성인이 되어 꽃 선물을 거절하진 못해도 적어도 내 손으로 건네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마음을 감춘 일이 딱 한 번 있었다. 친구의 생일이었다. 그 친구는 꽃을 참 좋아했지만 한 번도 꽃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그 모습을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꽃을 선물하기로 했다. 아마도 그 꽃을 건네며 다음은 없을 거라는 각오를 한 듯하다. 자신과의 타협이었다. 친구의 기쁨이냐 신조를 지킬 것이냐 사이에서의 망설임은 길지 않았다. 친구가 좋아하는 걸 해주는 쪽을 택했다. 건넨 손은 기뻤고 포기한 마음은 썼다. 가벼운 신조는 꽃보다도 쉽게 꺾였다.
꺾인 것을 논하자면 꽂꽂이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꽃이 유리병에 갇힌 채 목만 덩그러니 내밀고 있는 듯하다. 너무 잔인한 말일까.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줄기와 잎을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는 일이 그렇다. 이미 꺾인 꽃이지만 여전히 생명이 있는 것만 같다. 실제로 꽃의 싱싱함은 물을 담은 병에 두면 며칠 가지 않은가. 거기서 생명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꽃에만 특별한 생명감을 부여하는 걸까? 아마도 꽃이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한 선물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꽃이 그토록 아름다운 건 이유가 있다. 자연이 우리에게 꽃이란 선물을 준 것은 그것을 꺾어 우리의 식탁 위 만찬을 화려하게 장식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꽃이 피고 지는 한 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꽃에서 아름다움의 이면이 보인다. 다른 말로 아름다움의 숙명일까.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이 꽃을 꺾어 사랑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해온 걸 보면, 어쩌면 꽃을 취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인간에게는 훌륭한 언어라는 도구가 있는데 마음이란 걸 전하기에는 그걸로 부족한 것일까. 아니면 꽃은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사랑, 기쁨, 축복'을 뜻하는 또 다른 언어인 것일까. 언어를 대신할 아름다운 꽃을 찾고 또 그것을 대신할 빛나는 보석을 찾듯이 인간은 끊임없이 꽃을 꺾듯이 무언가를 탐한다. 꽃을 꺾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도 감히 취하려 든다. 그래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는 것일까.
꽃이 아닌 말과 글과 눈빛으로 진심을 전하고 싶다. 그런 사랑을 택하겠다. 그리하여 언어의 끝을 확인한다면, 그 마음이 닿아서 이루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결실이리니. 그와 함께 손을 잡고 들에 피어난 꽃을 보러 가는 게 진정 꽃다운 로맨스다.
꽃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게 있다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보다 바람이 만들어 낸 바닥에 피어난 꽃길에 더 시선이 가고,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온 작은 민들레에 눈길이 머문다는 것이다. 모든 꽃의 빛깔은 아름답지만, 공원에 가지런히 조성된 꽃들보다 들꽃을 보는 게 더 좋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꽃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가끔은 그 자리에 서서 물끄러미 꽃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떻게 자연에서 이런 색깔이 나올까?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생겼을까? 참 신비로운 생명체에 홀리곤 한다. 이렇게 시선을 빼앗기듯 꽃을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한층 자연에 가까워진 느낌이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던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 드디어 고개를 들고 일어선 듯하다. 나는 늘 자연 속에 있었음을 새삼 깨닫는다.
나는 살아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날씨와 계절을 온몸으로 감싸 안은 꽃의 마지막을 사랑한다. 이 작은 손에 꽃이 쥐어진다면 바람에 흘려 날아오거나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길 바란다. 그런 꽃이라면 기꺼이 마음으로 끌어안겠다.
어린 시절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그림일기에서 이 글의 시작과 마침표를 발견했다.
어머니께서 꽃을 뽑지 말라고 하셨다.
어머니께서 꽃은 생명이 있다 하셨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기억하지 못해도 마음은 그것을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