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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에게 반한 순간

by 유연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던 건 그의 예쁜 말씨 때문이었다. 물론 그는 듣기 좋은 목소리를 가졌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 음색으로 하는 말이어서 더 다정하게 들렸을지 모르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낀 건, 내게 설렘을 안겨 준 건 그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예쁘고 다정한 말이었으니까.


그를 만나고 처음으로 머리와 마음에서 느낌표가 뜬 순간을 선명히 기억한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이었다. 출근길 우산을 챙겼지만, 날씨를 보아하니 퇴근할 때가 되면 비는 그칠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벌써부터 그 우산이 몹시 귀찮게 여겨졌다. 우산을 들고 가기 귀찮다며 투덜거리는 나의 문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만 우산이랑 친구해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마 내가 그에게 처음으로 '반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정말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그에게 빠졌던 것 같다. 그의 한 마디에 성가시던 우산도 가벼워졌다. 퇴근길 나는 그의 말대로 웃으며 친구를 집에 데려갔다. 가끔 하늘이 개고 바닥이 젖은 날 내 손에는 우산이 들려 있을 때, 나는 그 말을 떠올리곤 할 테지.


그는 항상 그런 입버릇이 있는 사람인 듯했다. 태초부터 나쁜 말이라곤 할 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그에게 들었던 말들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다정함이 입에 배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자연스러움이 좋았다.


우산이랑 친구하라는 말처럼 그는 또 다른 예쁜 말로 나를 다시 놀라게 했다. 회사에서 손이 다친 날이었다. 속상한 마음에 손에 밴드를 덕지덕지 붙은 사진을 그에게 보냈다. 찢어진 손처럼 마음도 너덜너덜하다고 했더니, 그는 "마음 밴드도 팔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마음 밴드라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어릴 때 분명 씽크빅, 구몬, 눈높이 같은 학습지를 하고 자란 어른인 게 분명하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정말 마음 밴드를 붙여 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따듯한 위로를 건네어 주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그 사람이.


내가 스스로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고 느꼈을 때, 그도 그렇게 나의 변화를 느끼고 있을까 봐 "요즘 나답지 않다"라고 내가 말했을 때. 그는 "지금도 당신다워요"라고 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의 모습도,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나의 모습도 있는 그대로, 나로 바라봐 주던 사람이었다. 어찌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건 불가항력이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되었고 예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예쁜 말들은 내가 그에게서 닮고 싶은 모습, 배우고 싶은 점이었다. 그래서 그를 더 좋아했다.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이후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모습을 찾곤 했다. 누군가를 만난다면 그 사람과 같은 구석이 있거나 그 사람과 비슷하지만 더 나은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그동안 구체적인 이상형은 없었지만 그 사람 때문인지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이 하나의 이상형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가 가진 것들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좋아했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언제나 아름다운 기억 속에 있을 사람이고, 언제나 그는 내게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가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건 그가 가진 것이 아니라 그가 건넨 어여쁜 말들이었다. 나는 그의 말에서 고운 마음씨를 보았다. 그는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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