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지야 May 08. 2021

내 카톡에는,나의 부고장을 받을 이들이 남아있다


 내가 죽었을 때, 장례식에 와줬으면 좋겠는 사람들

그 사람과의 추억이 한두 개쯤 바로 떠오르는 그런 사람들만 내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남겨져 있다. 그들이라면 갑작스러운 나와의 이별에 진심으로 아쉬워하고, 작별 인사를 나눠 줄 것 같기 때문이다. 이제는 연락하지 않는 옛 친구들, 퇴사한 전 직장 동료들, 어쩌다 스쳐 지나간 잠깐의 인연은 모두 숨김 처리되어 있다. 부고 문자를 보내야 하는 누군가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함이기도 하고, 내 부고장을 받고 '누구지? 어쩌지?' 하는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도 싫어서다.




몇 해 전, 시부모님과 남편 쪽 선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큼직한 비석에 남편과 내 이름이 적힐 공간이 비워져 있었다. 하지만 난 그곳에 묻히길 절대 원하지 않는다. 모르는 조상님들과 죽어서 함께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소망은 지금 조부모님이 안치되어 계신 안성의 작은 납골당에 가는 것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홀로 산소에 계시던 할아버지 묏자리를 정리해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때 부모님 또한 자리를 미리 예약해 두셨다 한다. 나 역시, 부모님과 할머니와 함께 그곳에 머물고 싶다. 결혼했다는 이유로, 딸이라는 이유로 이름 모를 어느 산에 가고 싶지 않다.


만약 그곳에 내 자리가 없다면, 혹은 남편도 나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수목장을 하고 싶다. 꼭 라일락 나무였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동해 바다가 30분 내에 있었으면 한다. 가족, 친구들이 바다에 들러 쉬고 돌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불안한 기질의 사람들은 죽음을 친구처럼 여긴다

이렇게 꽤나 구체적으로 나의 죽음 이후를 생각한다. 처음에는 콧방귀를 뀌던 남편도 이제는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꼭 너 말대로 해 줄게.’ 그제야 한결 마음이 놓였다. 남은 숙제는 딱 하나, 아이를 위한 준비를 해 놓는 것이다.



이렇게 쓰면, 내 정신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조차 이런 나를 이상하게 여겼던 때가 있으니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죽음에 대한 생각만큼이나 삶에 대한 애착이 많은 편이다. 그저 언제 닥칠지 모르는 마지막을 미리 준비하고 싶을 뿐이다. 내일 아침, 내가 당장 깨어나지 못한다 해도 말이다. 그저 기질적으로 불안감을 많이 느끼고, 계획적인 삶을 추구하는 성격 때문이리라 생각해 주길 바란다.

  




 

글을 정돈하며 다시 한번 카톡 목록을 쭉 훑어봤다. 과연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까? 혹시 나만 이토록 그대들의 인사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한동안 연락하지 못한 친구의 프로필 사진에서 한참이나 손끝이 머물렀다.


죽음을 준비하며 사는 삶의 가장 큰 혜택이 바로 이런 것이다. 후회할 행동을 적어도 하나씩은 고칠 수 있다는 것. 오늘은 그녀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다정한 인사를 건네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네엄마, 지금 김밥20줄째 싸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