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빠졌는지는 몰라도 빼는데 선수들이 모인 곳이 있다.
어떻게 빠졌는지는 몰라도 빼는데 선수들이 모인 곳이 있다. 바로 119구조대다.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뭇 남성의 가슴을 설레게 소슬바람이 부는 2018년 어느 가을. 할아버지와 함께 차에 올라탄 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차량 손잡이 틈 사이로 팔꿈치가 들어가더니, 안간힘을 줘도 빠지지 않았다.
현장은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여 있었고, 흥분한 아이는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괜찮아. 아저씨가 금방 꺼내줄게”
황준호 소방관은 아이를 진정시키는 한편, 어떻게 꺼내야 할지 차량 손잡이와 아이의 팔꿈치를 번갈아 살폈다.
“팔이 점점 더 빠지는데 손잡이를 절단기로 자를까요?”
“잠깐만. 절단기로 자르기보다는… 저기, 어머님! 혹시 집에 식용유 있나요?”
“네? 식용유요? 식용유는 왜? 지금 가져다드릴까요?”
절단기로 손잡이를 자르고 구조할 수도 있지만, 황 소방관은 행여 아이가 놀라지는 않을까. 또, 차량의 2차 손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윤활유 역할을 해 줄 식용유를 선택했다.
황 소방관은 식용유를 아이의 팔 이곳저곳을 바른 뒤, 천천히 팔을 돌리자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던 팔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쑥’하고 빠져나왔다.
“어머머! 세상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황 소방관의 오래 경험으로 아이의 팔은 특별한 외상 없이 빠졌고, 차량 역시도 손상 없이 구조출동은 마무리가 됐다.
구조버스에 올라 사무실로 복귀하던 중, 또 다른 구조출동이 차량 무전기로 전해졌다.
급히 핸들을 꺾어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담당 의사는 황 소방관을 환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며, 환자 상태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벌에 쏘였는데 온몸이 다 부어올랐습니다. 그런데, 손가락이 낀 반지 때문에 이쪽에 혈액이 돌지 않고 있네요. 빨리 절단해 주지 않으면 손가락이 괴사할 수도 있어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 소방관은 반지 절단기를 이용해 절단하기 시작했고, 이내 손가락을 감싸고 있던 반지가 ‘툭’하고 끊어지자 굳어있던 손가락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번의 끼임 사고를 마무리하고 소방서로 복귀하는 길. 구조버스 안에선 ‘식용유도 필수 구조 장비 목록에 올려야 한다.’며 황당한 끼임사고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졌다. 한참 동안 듣고 있던 황준호 소방관도 입을 뗐다.
“뭐 그 정도 가지고 황당하다는 거야? 예전에 형사들이 소방서에 찾아왔는데, 수갑이 풀리지 않는다고 우리 보고 풀어달라고 사정한 적도 있어.”
빠지긴 쉬워도, 끼우긴 쉬워도, 채우긴 쉬워도… 빼기 어려운 끼임 사고.
하지만, 장소 불문. 시간 불문. 끝내 빼내고야 마는 119구조대. 사랑에 빠진 사람 빼곤 다 뺄 수 있다는 119구조대의 이야기가 빈말은 아닌 듯하다.
<소방청 대응총괄과 황준호 소방경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