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난사고 전문가!
2009년 평생 함께할 거라 믿었던 검은 베레모를 벗고, 주황색 제복을 입은 전정길 소방관. 25살 젊은 나이에 119구조대의 일원이 돼 구조현장뿐만 아니라 화재 등 각종 재난현장을 젊은 패기로 누비며, 선배들로부터 인정받는 소방관이 됐다. 하지만, 수난사고 현장에서만큼은 ‘나는 남을 구조하는 사람이 아닌, 동료에게 짐이 되는 사람이다’라며 크게 낙담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육군 특전사 특성상 수난훈련이 거의 없어 수난현장에서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장에 가면 시민들이 ‘소방관이 왔으니 다행이다.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아니... 내가 그 기대를 저버린다면 어떨까?”
전 소방관은 시민들의 기대에 저버리는 소방관이 되지 않기 위해 새벽마다 수영장 문을 열었다. 비번날에도 수영장을 찾아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수난 구조의 정보를 얻기 위해 미국 등 해외 사이트를 뒤져 번역기를 돌렸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 반복해서 보면서 머릿속으로 구조의 방법을 하나하나 채워갔다. 그걸로도 부족했을까 사비를 들여 스쿠버까지 도전하며 수난 구조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던 어느날.
“구조출동! 폭우로 서구 양동 태평교 인근 시민 고립 신고입니다.”
광주지역에 갑자기 쏟아진 빗줄기에 광주천 수위가 상승하면서 태평교 부근 징검다리가 물에 잠기면서 시민이 고립된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수난 출동 알림에 몸이 위축됐지만, 그동안 수난 구조를 위한 노력 덕분이었을까 전 소방관은 머릿속으로 구조방법을 그리며 현장으로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전 소방관은 급류구조 조끼를 입고 밧줄로 안전을 확보한 뒤, 상류에서 물살을 타며 구조에 나섰지만, 워낙 빠른 물살에 몸을 가누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더욱이, 물 밖에 있는 대원과 소통이 되지 않아 물살에 갇히길 여러 번. 코와 입을 통해 물이 한 움큼씩 들어가고 거센 물살에 시야는 계속 흐려졌다. 그런데도 구조하겠다는 전 소방관의 집념을 꺾지 못했고 마침내 갇혀 있던 시민을 무사히 구조해냈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지만, 그동안의 노력을 보상이라도 받은 듯 전 소방관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수난 현장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며 낙담했던 전 소방관. 그랬던 그가 이제는 수난 구조 전문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수중 및 로프 평가관, 수상구조 강사, 수난 교관 등을 맡을 만큼 수난 구조 현장의 일인자가 되고 있다.
자신의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전정길 소방관. 그의 노력과 도전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란다.
<광주 광산소방서 전정길 소방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