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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Aug 17. 2020

상상 중독

희망 저 너머로

      <살다 보면 뇌의 신경망에 불순물이 더러 끼기도 한다. 속세에 찌든 때 같은 거. 불순물은 신경망 안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우연히 한 뉴런과 만나 자리를 편다. 우연이 반복되면 그것은 필연이라 했던가. 다른 불순물도 이 거대한 흐름과 팔짱을 낀 채 어느새 그 뉴런 위에 덕지덕지 앉아있다. 해당 뉴런은 주위보다 상대적으로 큰 질량을 가지게 되고 그것의 밀도는 점점 높아진다. 그러다 보니 자체적으로 중력까지 띄운다. 주변에 있던 다른 불순물도 너나 할 것 없이 중력에 휩쓸려 같은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한 점을 향해서 모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뉴런에서는 곧 수축작용이 일어나고 열에너지가 만들어진다. 내부 온도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뉴런 외부 표면에 달라붙어 있는 수많은 시냅스들은 타들어 가고 곧이어, 다른 뉴런들과 동떨어진다. 그 주위에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스파크가 일고 있다. 그 뉴런은 멈추지 않는 수축작용으로 폭주 기관차처럼 온도의 비이상적인 지점에까지 이르게 되고, 마침내 신경망 안에서는 대폭발의 징조가 나타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딱히 특별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나는 시공간을 여행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봤다고 이러는 건 아니니까. 물론 그라면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이것은 뇌의 신경망 어딘가에 스파크가 일기 시작하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알 수 없는 붉은 점이 끝내 대폭발하여 만들어진, 또 다른 우주로의 의식 이동이라고. 맙소사. 이해했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부러워할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일정 조건이 충족되면 나는 절박한 상태로 의식의 저 멀리에 있는 한 곳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무언가를 상상하는 건 내 오래된 취미 중 하나다. 처음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아마 중학교 때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자습 시간이 생기면 나는 곧장 책상 위에 엎드려 선잠을 잤다. 그리고 종종 루시드 드림 비슷한 걸 경험했는데, 그때의 황홀한 경험이 내 인생을 이렇게 바꿔놓았다. 그 후 물고기가 강변에 던져지면 격렬하게 파닥이며 말라죽듯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되었다. 한 번은 마음 세게 먹고 그만두려고 했었다. 그러나 곧바로 금단현상에 압도당해 지금껏 끊질 못하고 있는 상태다. 사람들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 음악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명예를 상상에 물려줘도 되지 않을까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특별한 법이다. 비운의 운명으로 태어나거나 혹은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거나. 그곳에 악역을 빼놓을 순 없겠다. 혹시 자기 인생에 악역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걱정하지 마라. 돈키호테가 그 답을 줄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인생이란 서사에 악역이 빠진다면 그것은 김빠진 콜라와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린 악역을 만들어내는 데 꽤 능숙한 편이다. 아직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내겐 악당 후보군이 넘쳐난다. 그것도 항상! (왜 이런 식으로만 복을 받는지 모르겠다) 문득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내가 어벤저스와 같은 팀이여서 그런 건 아닐 것이다. 왠지 초조한 마음이 불쑥 솟는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그들의 프로파일을 샅샅이 뒤져보기로 했다. 무언가 공통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엔 이렇게 적혀있다. '나를 불편하게 한 사람들'     


    히어로도 가끔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적어도 내 상상에선 그렇다. 정의가 무엇이든 간에 내 마음을 사뿐히라도 즈려 밟고 간 사람들은 쉽게 용서받을 생각 따위 하지 않길 바란다. 마침 '넌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어!'라고 쓰인 슬로건이 불쑥 올라가기 시작한다. 이에 감정은 자신이 느낀 부당함을 놓고 공소 제기에 나선다. 하여간에 막무가내다. 그런 감정을 이성이 달래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정상참작에 힘을 보태는 것 뿐. 탕. 탕. 탕. 실형이 나왔다. 지금부턴 히어로의 활약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의를 짊어진 자 누구나 히어로가 될지어다. 나는 내가 존경하는 논객의 이름을 빌려 그들 앞에 선다. 내 무기는 넘사벽 논리다. 이윽고 그들 빌런은 속수무책으로 패망하고 끝내 항복을 선언한다.     


    그렇게 한 서사가 마무리되면 신체의 감각이 하나둘씩 부스스 깨어난다. 상쾌한 기분이다. 지난날은 잊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요즘 부쩍 느끼기 힘든 아침의 상쾌함을 여기서 다시 맛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실 몰랐던 게 하나 더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내게 살아갈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권선징악, 인과응보, 사필귀정. 이런 말들을 어쩌다가 만들어진 것일까? 세상의 부당함에 분개해서? 이 말들의 지은이는 글자 하나하나를 엮어 이 말들을 완성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그들의 얼굴은 희망으로 피어나고 있었을까? 나는 세상이 엉망진창이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것보다 더 나은 희망은 없을까 하고.






커버 이미지 저작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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