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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Aug 25. 2020

백야행을 읽고서

저자 히가시노 게이고

    백야행 소설을 읽었다. 1권은 주춤거리며 며칠에 나눠서 읽었지만, 2권은 책을 펼친 그 날 하루 만에 다 끝내버렸다. 짜임새가 돋보이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등장인물의 이야기가 모여 하나의 큰 서사를 완성한다, 는 느낌이 들었다. 재밌는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두 명의 시점은 묘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러 등장인물이 우연찮게 겪는 에피소드는 마구 뒤섞인 퍼즐 조각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배배 꼬인 두 겹의 한 줄기가 수많은 이야기 실타래를 관통하면서 모든 게 필연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퍼즐을 맞춰나가다 보면 마지막엔 한 그림이 완성되고, 모든 게 명료해진다.


    슬픈 이야기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태양이 뜨지 못하면, 그래서 희망이라는 새싹이 자라나지 못하면 어떻게 어긋날 수 있는지에 대한 단편을 제시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가지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안나 카레니나에선 아쉽게도 등장인물들의 어린 시절을 자세히 묘사하진 않는다. 하지만 백야행은 다르다. 그들이 하염없이 어둠 속을 걷고 있는 이유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됨을 분명히 한다. 어떤 부부는 남자로서, 여자로서 자신의 성(性)에 충실히 살아가며, 부모로서는 무관심하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아이를 생계의 도구로 취급한다. 그 결과가 초등학교 어린아이가 의지할 곳이 비슷한 상처를 앓는 친구뿐이라니. 너무 슬프다.      


    기리하라 료지는 책 안에서 굉장히 비정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철저히 남을 속이고, 이용하고, 기능이 다 하면 거침없이 치워버리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에게서 한 줄기의 빛을 봤다. 한편으론, 태양 못지않은 달빛으로 어두운 유키호의 마음속을 그윽하게 밝히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는 어린 시절 겪은 사건으로 인해 마음을 닫아버리고 모든 희망을 짓뭉개버린다. 그렇게 절망 속으로 빠지려는 직전, 그는 작지만 환하게 빛나는 희망 하나를 발견하고 손에 꾸욱 쥔다. 그날 뒤로, 그에게 낮은 오지 않았지만, 난생처음으로 태양이 떠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어두컴컴한 배기관을 누비다 원 모양의 작은 출구에 빛이 스며드는 걸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가 키워낸 희망은 유키호만을 위한 것이었고, 그것만이 삶의 이유가 됐다. 어린 시절 좋아하던 종이 오리기를 같이 하며,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던 그녀의 곁을 평생 지키기로 결심한다.  

             

    니시모토 유키호는 그날 사건 이후 자신을 껍데기 안에 꽁꽁 싸매어 가두어버린다. 무엇을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걸까. 그 안에 있는 건 자신에게 아픔만 주는 쓸모없는 감정이지 않을까. 이후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여러 사건을 통해 보여준다. 나는 이런 유키호가 조금은 이해가 갔다. 그 어린 것의 눈에도 어른들 눈빛에 떠오른 자신의 모습이 제 사리사욕 채우기 위한 도구로 비치는 게 보였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물론, 세상과의 관계도 그렇게밖에 정의하지 못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유키호와 관련된 가장 극악무도한 장면을 꼽아보자면, 비로소 엄마의 입장이 된 그녀가 자신의 양딸에게 한 짓거리가 떠오른다. 어릴 적 자신의 상처를 그대로 안겨주다니. 딸이 해바라기처럼 자기만을 바라보게 되면 지가 태양이라도 될 줄 안 거지. 그래서 자기는 자기 생모와 다르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던 게지. 이번엔 조금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이 둘의 관계를 남녀 간 사랑이라는 진부한 관계로 만들고 싶진 않다. 이들이 공유하고 있는 유대감은 그것보단 좀 더 심오한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어릴 적 비극의 사건을 함께 겪은 두 사람이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도 흥미롭다. 어쩌면 그 작은 차이가 삶은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이들에게 무턱대고 도덕적 잣대를 들이미는 건 큰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행동은 벌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마음으로 고스란히 느껴보는 것에서 시작해도 늦지 않는다. 생각보다 판사라는 직업은 힘들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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