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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Oct 24. 2020

시민 검열의 시대

    '시민 검열의 시대', 주호민 작가가 자신의 라이브 방송에서 한 말이다. 그 말을 듣는데 나는 마음이 조금 편치 않았다. 말 그대로 불편한 진실이었다. 그건 어쩌면 대부분이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만 간단한 말로 표현할 수 없어서, 혹은 입 밖에 내기 어려워서 하지 못했던 말이 아니었을까. 어느 시대건 문화란 사회 지배 계층이 주도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천명을 받은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와 떡하니 전해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문화를 만들게 된 걸까?          


    한국의 한이 한(恨)이라는 말이 있다. 한(恨)의 민족. 한반도의 역사는 단군부터 지금까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만큼 민족의 아픔도 헤아릴 수 없이 길고 또 깊다. 오랫동안 중국의 영향 아래에서, 그게 아니면 북쪽 유목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섬나라 왜놈들도 빼놓을 순 없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여러 외세의 세력이 한반도에 뻗치면서 우리 민족은 강점과 분단의 아픔까지 겪어야 했다. 참으로 수난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아직 아픔이 제대로 아물지 못했다는 건 그건 그것대로 한이 아닐까. 광복 이후 친일파를 제대로 처단하지 못했고, 북쪽 동포와도 무엇하나 시원하게 끝맺음이 난 게 없다. 그리하여 강점과 분단의 비극 뒤엔 사회에 불신이 극에 달하여 서로의 사상을 검열하지 않곤 더불어 살아갈 수 없는 희극이 남반도에 펼쳐진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그 병적인 집착은 사상 검증을 넘어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도덕성에까지 닿아있는 게 아닌가 싶다. 친일파라던지 빨갱이라는 말은 더는 간첩에게만 쓰는 말이 아니다. 이제는 나와 정치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찍는 낙인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했는가. 지정학자는 이러쿵 지정학적 이유를, 사회학자는 저러쿵 사회학적 이유를 말해 줄 것이다. 역사학자는 조금 더 나은 답을 줄지도 모른다. 중국은 중화사상으로 우리 조상들을 업신여겼고, 일제는 제국주의를 신봉하며 이조 오백 년 치하에서 자라난 민족적 산물에 침을 뱉고 짓밟았다. 북한은 사회주의라는 사상을 앞세워 작은 반도를 반으로 쪼갰으며, 어떤 장군은 독재가 나라를 더 부강하게 한다는 일념으로 선량한 시민에게 총을 겨누었다. 역사학자는 말할 것이다, 이 모든 게 자신의 것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됐다고.


    그 피해는 다름 아닌 우리의 몫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냐며 우는 아이의 말에 말문이 막혀 더럭 화부터 냈던 우리 조상들. 그 설움과 비참함은 여전히 우리 가슴속에 한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가 이 같은 아픔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있다는 소리가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학교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학업적 우월성이라는 굴레를 씌운다. 그래서 소수의 공부 잘하는 학생을 제외한 대다수 학생은 배움에 있어 즐거움보단 설움을 먼저 배운다. 열등감이라는 설움이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어떤 아이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인정받고 모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데 그걸 바라보는 다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렇다면 다시 한번 의문이 생긴다. 학교폭력 같은 잘못을 과연 아이들에게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학교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우월성을 부추기는데 거기에 육체적이든(힘) 물질적이든(돈) 각양각색의 우월성을 끼워 넣는 것에 과연 아이들이 나쁘게 생각하겠느냐 이 말이다.          

    

    나도 이런 사회에서 자라온 탓에 남과 비교하는 습관이 삶의 깊숙한 곳까지 뿌리 내려 있다. 우리 민족은 아픔에 민감하다. 지난날 그 민감함이 시민들을 우매함에서 일깨웠고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투철한 의지로 이어졌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이 우월감과 어우러질 때, 나는 남을 시시각각 검열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우리 강산을 지키기 위해 했던 것이 오늘날 남의 치부를 찾는 데에 쓰인다. 지난날 마음속에서만 머물렀던 말들이 오늘날 온라인을 통해 쉽사리 밖으로 새어 나오고 있다.


    나는 일본에서 1년 남짓 살았던 경험이 있다. 그들은 자기 것에 보이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이 보면서 내심 부러워했다. 하지만 그 자부심이 일정한 도를 넘고 다른 나라와 비교를 통해 쌓아질 때, 내가 당한 인종차별이나 남의 것을 인정할 줄 모르는 태도로 돌변하는 걸 체감했다. 우리는 당당히 자부심을 품어 마땅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남과의 우열에 빌어먹는다면 그 긍지는 한낱 우월감으로 전락할 것이다. 과거 일제가 그러했듯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손끝에서 나온 제국주의적 칼날이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난도질할까, 그것이 심히 우려스럽다.





Cover Image from https://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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