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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Oct 30. 2020

당신은 아직 실패를 잘 모른다

실패의 짝사랑에 지친 당신에게

  우리 인생을 보면요,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것이 있어요. 이거는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겁니다. 아마 이것에 비친 자신의 초조한 표정을 보는 것만큼이나요! 뭔가 짐작이 가시나요?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것과 쭉 함께하고 있습니다. 네. 바로 실패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실패를 피하려고만 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흔히 아는 그의 일면이 너무나 강렬한 탓일까요. 혹시, 우리가 보지 못한 실패의 또 다른 모습이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실패를 외면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뭘까요? 그의 낯뜨겁고 일방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워서? 그럴지도 모르죠. 아니... 성공하기도 바쁜데 자꾸 눈에 띄면 짜증 나잖아요.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실패는 싫어하고 성공만 좋아해서 그래요. 실패 따윈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허세를 부렸는데 코앞에 찾아온 실패를 보면 당혹감을 감출 수 없는 거죠. 이렇게 찾아와줬는데 어떻게 합니까. 일단 얘기라도 들어봐야죠. 그럼 점차 무력감을 느낄 겁니다. 아... 내가 아무리 열심히 도망쳐도 실패는 나를 포기하지 않겠구나. 나 어떻게 하면 좋지!          


    그래도 실패만큼 한결같은 사랑도 없을 거예요. 성공만 부르짖는 우리를 몰래 지켜보면서 갖가지 뒷바라지를 해주잖아요. 잘못된 길로 가는가 싶으면 좋은 소리 못 들을 거 알면서도 찾아와서 갖은 잔소리를 해주지요. 가령 이런 거 있잖아요. 모두에게 사랑받기. 가끔 정신이 번쩍 들도록 절망을 안겨주기도 하고요. 그때마다 우리는 왜 찾아오냐고, 오지 말라고 온갖 심통을 다 부렸을 겁니다. 조금만 더 하면 성공할 수 있었는데, 하면서요. 그래도 어디 실패가 눈 깜작이나 합니까? 그것도 따지고 보면 다 정이지요.     


    실패가 우리를 독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하도 무안하고 해서 우리는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르지만요. 우리가 아직 성공이란 걸 해보지 못한 시절, 실패만 거듭하며 분한 마음에 울고불고했던 그 시절 말이에요. 이때만큼은 부모님도 실패에게 한 수 접고 대했었죠.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 삼일천하 같은 찰나의 순간 때문에 실패는 우리 곁을 떠나지도 외면하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주위를 맴도나 봅니다.     


    저는 가끔 실패가 섹시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런 날 있잖아요. 평소엔 남 앞에서 허세를 부릴 정도로 잘 해왔는데 실패가 보일 듯 말 듯 한 그런 날. 이상야릇한 긴장이 몸에서 묻어나오는 날이요! 그때 속살 하얀 실수를 살짝 보여주면 내 눈앞에 실패가 불현듯 나타나서 나를 확! 그리고 온몸을 잠시 실패에게 맡기는 거죠. 그렇게 한바탕 겪고 나면 허세고 뭐고 마음이 발랑 벗겨진 것 같은 창피한 기분이 드는데, 중무장한 사람 마음도 순식간에 발개벗기는 실패, 어떠신가요? 섹시하지 않나요?     


    그건 그렇고 실패에게 여간 낭패가 아니네요. 가끔 실패는 설움도 없을까 하곤 해요. 배다른 형제도 아니고 주워온 자식도 아니겠는데 하필이면 성공과 남매 쌍둥이로 태어나 온갖 설움을 받고 자랐으니까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사람들이 성공을 편애하는 건 다 아는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그걸 바라보는 실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몰라요. 실패는 사랑을 주는 방식이 서툴다고요. 때론 순애보같이 때론 이기적으로 사랑을 했던, 마치 그때의 우리처럼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실패의 어리광을 다 받아줘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실패의 미련한 사랑은 우리를 향해서 계속될 겁니다. 외로운 마음에 생각보다 더 자주 찾아올 수도 있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실패가 찾아오면 당황하지 말고 그가 섭섭하지 않게 따듯한 차나 밥 한 그릇, 더 나아가 방 한 칸 내어주고 하룻밤 정돈 묵고 가게 해주어요. 실패가 화가 나면 공연히 또 다른 실패를 부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실패가 원하는 건 단지 우리의 관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실패에게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 하다 보면 그도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점점 성숙한 사랑을 하는 날이 오지 않겠어요? 그렇게 우리도 성숙해지면요, 언젠간 실패가 잠시 머물다 가도 쓴웃음 한 번 짓고 훌훌 털어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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