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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망 Nov 08. 2020

다시 손에 넣은 자유

소설_단편

    어느 날 인파로 우글대는 길 한복판에 서서 시야를 쨍하니 방해하는 빛깔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곳엔 새 한 마리가 있었다. 금세 사라졌다 다시 시야 오른편에서 튀어나온 새는 바람을 타고 또 거스르며 내 머리 위에서 날갯짓을 뽐냈다. 햇빛의 비호를 받는 듯 새의 눈이 반짝 번득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면서 상공을 유유히 비행하는데, 그 행로가 비뚤어진 타원으로 마치 수많은 점에 지나지 않는 나를 비웃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 눈에 그 새는 '자유' 그 자체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새처럼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높이 더 높이 그리고 누구보다 자유롭게.     

    날개가 없는 나여서 마음대로 하늘을 날지 못한다. 날개가 있다면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왜 지금 레드불 광고가 생각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는 것 대신에 기분을 업 시키기로 했다. 내 친구는 이걸 '하이퍼 모드'라고 명명해줬다. 사람들을 막 헤치고 다니면서 떠들어댔다. 타인에게 뻗는 손은 거침없이 그들의 어깨 위에 내리 앉았다. 모두의 달아오른 숨결이 뭉게뭉게 날아올라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누구와도 함께였으며 그들은 나를 자신의 몸의 일부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땅 위로 고꾸라져야 했다. 그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날갯죽지가 꺾인 나는 다시 수많은 점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아냐, 나는 달라. 나는 하늘 저 높이 비상해야 해! 혼자 성내며 뇌까리는데 아까 그 친구가 내게 살며시 다가왔다. 그리곤 너 조울증이냐며 걱정 반 농담 반, 아니 농담이 대부분인 말을 던지고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는 사태의 심각성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잠깐의 비상을 위해 지상에서의 시간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훨훨 날던 비행운이 하늘을 응시하는 내 눈동자 안에서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면 나는 보다 형형한 눈으로 그러나 온몸으로 발악했다. 원래 외롭고 상처 많은 짐승이 더 사나운 법이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게 상처 입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늘어났다. 나에겐 그들이 수많은 점 중 아무개로 보였던 걸까. 이윽고 나는 그들과 떨어져 빛을 잃어가는 단 하나의 암담하고 쓸쓸한 회색 점이 되었다. 그게 내가 받아드려야 할 자유의 결과였다.     

    나는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하늘의 새를 보며 묻고 싶었다.      

    '내가 잘못한 게 뭐야? 새야,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거지? 대답해봐. 새야!'     

    미묘하게 어긋나 나를 안달 나게 하는 이것을 당장에 알아내야 했다. 왼손을 쥐면 오른손이 펴지고 오른손을 쥐면... 아무튼, 나는 가만히 손 놓고 이 같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도 내 머리 위에서 넓디넓은 하늘을 자기 안방처럼 누비고 다니는 새. 그 웅장함에 치기 어린 질투가 끼익 끼익 맞물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장이 낮은 허름한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책을 한 권 집어 들었다.     

    '어디 보자. 새는 날기 위해 머리를 비웠구나. 나처럼 돌대가리지만 너는 텅 빈 새대가리네 히히. 응? 뼈도 텅텅 비었고 똥주머니도 없다고!?'     

    새가 날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꽤 많았다. 머리에 든 게 없으니 멍청하고 조금만 충돌해도 쇼크사로 죽겠네. 하늘을 날면 하늘과 땅 모두에게 표적이 되겠군.     

    '나는 자유를 위해 이 모든 걸 포기할 수 있을까. 아니면 하늘이 아닌 지상에서 자유를 찾을 순 없을까? 아니야. 그건 이미 자유를 포기한 거야. 내 자유는 저기 저 하늘 위에 있어. 지상에서 자유를 찾는 건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하지만 난 날 수 없어. 나도 새처럼 머리도 비우고 뼈도 비우고 똥주머니도 없애고 하면 자유롭게 날 수 있겠지. 그걸 위해 난 뭘 더 포기해야 할까. 하늘을 나는 걸 포기하면 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옳거니!'     

    내가 하늘에서의 자유를 포기하면 지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반대로 새처럼 다 게우고 비우고 하면 하늘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요는 내가 무엇을 포기할지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거야. 애초에 양립할 수 없는 거였어. 하나를 포기하면 다른 하나가 자연스레 손에 들어온다. 이건 내가 상상했던 광활한 하늘의 자유는 아니야. 하지만 이것도 땅 못지않게 풍요로운 자유가 아닐까. 요란한 자유는 아니지만 꾹꾹 눌러 담은 자유. 혼자가 되는 자유가 아니라 모두와 함께하는 자유. 막 즐겁지는 않지만 막 슬프지도 않은 자유. 소박하지만 확실한 자유!'     

    서점을 나온 뒤 나는 희망에 부푼 가슴을 끌어안고 땅을 헤엄치듯 가로지르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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