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한 다리로 10초 동안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노인은 잡을 수 없는 노인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균형감각과 수명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길래? 그게 어렵나?' 하면서도 일어나서 한 다리로 균형을 잡아봤다. 그리고 내심 안도하는 내 모습에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균형감각과 수명 사이에 이런 명제가 성립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근육이 손실되면 균형을 잡기 어렵고, 균형을 잡지 못하면 쉽게 넘어져서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매사에 '중심'을 잘 잡는 것은 중요하다. 몸의 중심뿐만 아니라 삶의 중심도 잘 잡아야 한다. 나무위키에서는 무게중심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무게중심이란 지구 중력이 질량을 가진 어떤 물체에 작용할 때 물체가 넘어지지 않고 안정적으로 서있을 수 있는 지점이다.'
살다 보면 외부에서 숱한 힘이 작용한다. 그때 쉽게 넘어지지 않으려면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엄마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무게중심이 온통 '아이'에게로 옮겨간다. 본능적인 모성 때문인지, 엄마는 그래야 한다는 교육의 결과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된다. 그런데 아이가 다 자라서 엄마의 손길을 보살핌이 아니라 간섭으로 여기기 시작한다면, 무게중심을 재빨리 자신에게 환원시켜야 한다. 아이를 위해서도, 자신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뭔가 소중한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상실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나에게 돌아가는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 길을 찾기 위해서, 무게중심을 다시 나 자신에게로 환원시키기 위해서 매일 하나씩 질문하고 답하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매일 자기 인터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을 귀하게 여기고, 언제 화가 나는지... 혼자 묻고 답하면서 잊고 있었던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온갖 핑계로 미루고 있었던 숙제를 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의 저자 최인아는 질문은 '존중'할 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질문은 상대방을 존중할 때 하게 됩니다. 자신이 다 정해서 그냥 해버리지 않고 상대의 뜻에 맞추는 거죠. 취향도, 기질도, 다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기준을 정해 일방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일일이 질문하고 의시를 듣고 반영하려면 당연히 수고도, 시간도, 비용도 훨씬 많이 듭니다. 그러니 상대의 의사와 생각을 묻는 건 상대를 존중할 때 하는 겁니다. (...)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방법도 타인을 존중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시시때때로 묻는 겁니다. (...) 요즘 꾸준히 글을 쓰고 기록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여러분 자신에 대해 써보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에게 묻고 생각해 본 것을 쓰는 겁니다.
- 최인아의 <내가 가진 것을 세상이 원하게 하라> 중에서
나를 존중하고 사랑하기 위해서, 또 나를 더 많이 알아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찾아내기 위해서 묻고 답하기 기를 계속 반복해 봐야겠다.
참고: 매일 자기 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면 여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