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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나 Feb 03. 2020

배터 럭 투머로우 - 2000년대 초 LA 아시안 감성

2000년대 초 아시안 아메리칸 범죄 영화

배터 럭 투머로우 - Better luck tomorrow






2000년대 초반 아시안 아메리칸의 감성



가끔 글이나 사진을 보면 90년대 감성, 80년대 감성처럼 특정 년대를 주제로 한 사진이나 영상이 올라온다. 누군가에게는 그런 자료들이 향수처럼 느껴지지만, 그 시대에 그곳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게 뭔데?라는 의문이 먼저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때 그시대를 살지 않았더라도 해당 태그로 모여있는 사진 영상자료를 보다 보면, 그 시대 특유의 아련함과 순수함, 혹은 색감이 특정 배경이나 인물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 시대를 맴돌았던 환희와 좌절 등에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자글거리는 화질은 우리나라 90년대 감성과 비슷하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건 그런 시대적 뉘앙스나 분위기였다. 2000년대 초반이라 '시절'같은 시대감이 느껴지는 단어를 붙이기에는 조금 빠르지만 어쩐지 배경이 미국이다 보니 느껴지는 거리감 때문일까. 한국의 2000년 초반과 사뭇 다른 생경함 때문일까. 이 영화를 보면 2000년대 초반, LA의 아시안 아메리칸의 청춘을 지배하는 시대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gq.com/story/better-luck-tomorrow-oral-history







인종의 벽과 문화의 벽 사이의 좌절


미국에는 아시안 부모들은 한국의 부모들이 그러하듯, 자식의 학업에 매우 관심이 많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두 아시안 아이들은 학업적 성취에 대한 압박을 느끼며 자라난다. 이 영화를 보다보면 그런 점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학업이 최고의 성취며, 전교 1등이라 하면 누구나 부러워하는 위치라면 미국은 조금 다르다. 공부만 잘하는 왜소한 체격의 아이들은 너드나 찐따 취급을 받으며 학교 생태계의 낮은 위치를 차지한다. 높은 위치는 성적만이 아니라 풋볼이나 치어리딩과 같은 체력과 체격적인 측면에서의 뛰어남, 그리고 부정할 수 없이, 백인이라는 인종 차지하고 있다.


경시대회에서 상을 타는 주인공과 친구들



주인공 4인방은 표면적으로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 전형적인 아시안 아메리칸 아이들이다. 하지만 한 꺼풀만 벗겨내 보면, 그 뒤에는 다른 청소년들과 같은 사춘기의 성적 욕구, 사회적 인정에 대한 갈망, 폭력, 비행들이 얽혀있다.


'배터 럭 투머로우'에서는 이런 모범생과 갱스터라는 정반대의 모습이 충돌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답안지 커닝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살해라는 범죄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점차 마음이 무거워진다. 모범생, 순종적인 모델 마이너리티, 2등 시민, 성공에 대한 갈망 등 어지럽게 쌓인 높은 벽들이 사실을 자유분방했어야할 아이들을 사방에서 조여 온다. 그것에 대한 반발이 반향처럼 커져나간 결과를 이 영화에서는 살인이라는 결말로 나타낸다.


모범생이던 아이들이 밤에는 총과 돈, 술과 마약 등의 범죄를 저지른다.





종착점을 지나치는 결말


보통 영화에 살인은 자백이나 구속 등 죗값을 치르는 방향으로 끝이 난다. 그것이 살인이라는 범죄에 응하는 당연한 종착점이며 당연히 그런 식으로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배터 럭 투머로우'는 브레이크가 망가진 차처럼 이러한 결말을 벗어난 채 위태롭게 비틀거리며 계속해서 도로 위를 달려나간다.

 

살해 장면 후, 친구들은 자살시도나 살인에 대한 후회, 은폐 등 각자의 모습대로 흩어지게 된다. 주인공 또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로 여자 친구의 차에 올라탄다. 죄를 부정하지도 자백하지도 않는 채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모범생인 상태로 끝이 난다. 살해를 저지른 혼돈의 상태로 계속해서 일상을 이어나가는 열린 결말은 답답함과 혼란을 남긴 채 끝이 난다.


주인공들과 저스틴 린 감독(중앙) https://vcmedia.org/latest-news/2017/6/7/better-luck-tomorrow-here-and-back-again






결말 - 출구가 없는 답답한 혼돈


2000년대 소수자로써 살아가는 아시안 아메리칸 청년들의 혼돈과 답답함이 아마 '배터 럭 투머로우(Better luck tomorrow)'가 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짙은 안개처럼 답답하게 그들의 인생을 덮고 있는 인종 차별과 사회적으로 달리 인정받을 방법이 없기에 높은 성적이나 대학으로 어떻게든 인정 받아 그 안개를 해치고 나아가야 한다는 정신적인 압박, 그럼에도 인간이기에 인간처럼 살고 싶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들이 사방으로 에워싸인 벽에 부딪히고 튕기며 출구없는 터널을 방황하는 공과 같다. 그런 끝없는 반향과 메아리가 결국 이 영화를 계속해서 곱씹게 만든다.



메이킹 필름

아시안 아메리칸으로써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찍는 계기와 촬영장에서의 삶 그리고 썬댄스에서 수상하는 것까지의 과정이 담긴 영상

보다보면 짠하고 응원하고 싶고 이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https://youtu.be/YT2LsWsw0bU


관련하여 읽을 거리(영어주의)

https://www.gq.com/story/better-luck-tomorrow-oral-history

https://the-artifice.com/better-luck-tomorrow-minority-myth-crimin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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