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의 특성상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있습니다.
시대극을 좋아하는 사람과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교집합이 있다. 지나간 시대의 아름다움과 고아함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들이 무엇을 입고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시대극과 패션
부제목과 달리 필자가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되었던 것은 단순히 에즈라 밀러라는 매력적인 배우 때문이었다.
시대극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시절의 예법, 복식, 그리고 그 시대만이 가지는 독특한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그 안에서 배우가 자신의 개성을 어떻게 살리는지 팬의 입장에서 궁금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마담 보바리를 끝까지 봤을 때 남은 것은 예쁘고 잘생긴 에즈라 밀러나 미아 와시코브스카 보다는 특정 시대를 담은 아름다운 영상과 패션이었다.
담백하고 절제된 서사
시간상으로 첫 장면은 수녀원 여학생 기숙사의 장면이다. 처음 영화를 보게 되면 누가 주인공 보바리인지 그녀가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꽤나 불친절한 시작이 아닐 수 없다.
보통 영화에서는 내레이션이나 자막을 통해 지금 주인공이 살고 있는 시대가 몇 년인지, 그녀가 왜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혹은 멋진 경구나, 주변 인물들의 대화를 통해서라도 현재의 상황을 표현해준다.
하지만 영화 마담 보바리는 마치 소설에 기반한 예술영화와 같다. 화자가 모든 상황을 다 말해주는 친절한 영화라기보다는 인물이나 배경의 변화를 통해 보고 그들의 생각과 의도를 캐치해나가야 한다. 한마디로 머리를 써서 보지 않으면 내용의 이해되지 않거나 재미가 반감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생각보다 이 영화이 평점은 낮았다.
하지만 감독은 유명한 고전이기도 한 마담 보바리를 감독은 굳이 '보여주기'방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였는데 덕분에 이 영화는 시종일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배경과 패션을 통해 극을 끌어간다.
예전에 코코샤넬의 일대기에서 그녀가 어릴 적 수녀원에 딸린 고아원에서 본 수녀들의 패션과 스테인글라스가 그녀가 디자인하는 옷들에 큰 영감을 주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게 했다. 그녀가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절제된 옷들과 차분한 환경. 수녀원, 기숙사 등 검소하고 소박한 그곳에서의 삶. 흑백과 청의 대비가 뛰어난 영상은 그 시대의 여성들의 삶을 엿보는 기분이 들게 하였다.
주인공의 변화를 패션의 변화로 표현한다.
주인공이 학교에서 나온 후, 뒤이어 나오는 장면은 역시 결혼식을 위해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다.
옷의 변화로 마담 보바리의 삶의 변화를 보여주는 첫 장면이다.
코르셋을 조이고 속치마 위로 드레스를 얹어 입는다. 드레스를 입는 방마저도 아름답다. 여인의 초상화, 벽난로 위의 거울, 라벤더 꽃병과 레이스 커튼 사이로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빛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다.
실제로 옷을 입는 이 장면에서는 거의 대사 하나 없이 진행된다. 천과 천이 마찰하여 내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 코르셋을 조일 때 들리는 팽팽한 끈의 소리 등이 전부이다.
그런 조용한 소리들을 통해서 결혼을 앞둔 신부의 긴장된 모습과 하나하나 공들여 매듭을 짓는 손끝으로 주인공이 결혼식을 맡는 심리를 묘사한다. 조용하고 섬세하게 진행되는 이 장면은 실제로 결혼식이 진행되는 장면보다 길다.
서사보다 자연스러운 풍경
주인공의 서사보다는 장면의 아름다움을 담백하고 평범하게 담아낸다.
억지로 꾸며낸 듯한 화려함보다는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표현한다. 정원, 빨래하는 아낙들, 마차를 타고 이동하는 풍경들 등. 이렇게 풍경만 담긴 컷이 이 영화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일부 관객평에서는 스토리에 몰입하기 어렵다는 평들이 존재하였지만 어디까지나 호불호의 영역이다. 필자에겐 오히려 이 편이 신선했다.
그리고 다시 패션
마담 보바리의 변화에 따라 영화에는 점점 아름다운 배경과 우아한 드레스의 향연이 펼쳐진다.
화려하고 대담해지는 마담 보바리 드레스를 통해 그녀의 불륜과 허영심, 그녀가 누리고자 하는 화려한 생활을 보여준다.
...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지만 사실 마담 보바리의 본인이 꿈꾸던 사랑을 향한 갈구와 허영보다는
아름다운 드레스가 더 인상 깊다.
드레스와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보니 보바리의 감정선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이런 아름다운 광경들이 불륜이라는 범죄의 추악함을 반감시킨다. 긴장되는 애인과의 밀회마저 그저 아름답고 또 아름다운 장면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
- 눈호강하고 싶은 사람들
복잡한 감정선보다는 예쁜 것을 보면서 쉬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
예전에는 서사가 분명치 않은 영화를 선호하지 않았으나 인생살이가 복잡함을 알게 되면서 그저 아름다운 것을 보며 쉬는 것도 큰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패션에 대한 영감
패션에 대한 영감이 필요하거나 평온한 일상 시대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 꽤 수작이다.
중간중간에 상인이 설명하는 터키산 스카프나 실크, 수 놓인 옷감들을 보고 있으면 패션잡지를 능가하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
- 시대물 러버
180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당시의 생활상이나 시대 배경에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화려한 보바리 부인과 대조적인 사람들의 삶이 곳곳에 많이 표현되고 있으니 시대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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