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뮤지컬이 핫하다. 핫하다는 뮤지컬을 다 보고 다니다 보면 통장이 텅장이 되고 만다.
그럴 땐 최대한 외출을 자제하며 집에서 어떻게든 뮤지컬을 보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곤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나온 웬만한 뮤지컬 영화는 다 섭렵했다는 당신을 위해 좀 올드해서 신선한 영화를 소개한다.
바로 뮤지컬 영화의 고전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다.
하늘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
영화의 시작은 고요한 동틀 녘이다.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장면이 길고 느리게 진행되다가 갑자기 지붕 위에서 누군가 바이올린을 키는 장면으로 전환된다. 구슬픈 그러나 어찌 보면 신나고 즐거운 선율. 바이올린 소리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어째서 저 사람이 지붕 위에 올라 바이올린을 켜는지 이야기 해주진 않는다. 마치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이 이유를 알게 될 것처럼...
사람 사는 평범한 이야기
요즘 자극적인 뮤지컬에 익숙해져서 일까. 사랑의 파국, 눈물 짜는 신파, 고통과 복수 등 극적인 플롯들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다소 심심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의 이야기다.
가난한 우유 장수이자 다섯 딸의 가장인 테비에가 혼란한 시대상황과 가난 속에서 딸들을 시집보내며 집안을 책임져 나가는 이 이야기를 보다 보면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떠오른다. 가정에 헌신하는 아버지의 짠내 나는 이야기. 바로 딱 그것이다.
하지만 우울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해 천만이다. 구수한 흥겨운 사람 사는 이야기에 즐거운 노랫가락이 엮기면서 점점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더하여, 이 아저씨 노래실력이 상당하다. 보다 보면 자꾸 수염 부숭부숭한 우리 테비에 아저씨의 노래에 빠져든다. 저절로!
우유 장수 안 하시고 가수 하셨으면 더 잘 사셨을 것 같은데...?
이 극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노래는 '내가 만일 부자였으면!'이라는 노래다. 시종일관 엉덩이를 흔들어가며 부르는 아저씨의 노래 가사는 어쩌면 텅장이 돼서 모니터 앞에 쪼그려 앉은 나의 심금을 가장 많이 울렸달까.
나도 부자라면 이 노래처럼 매일같이 흥이 넘칠 것 같다.
+ 작가AAA 선정, 명대사는 아래와 같다. +
"돈은 세상의 저주예요!"
- 공산주의자
"저주 좋아하시네. 하나님이 확 그냥 나 좀 그 저주로 때려줬으면 좋겠네. 회복 불능 일정도로!"
- 테비에 아저씨
세 딸의 결혼식
하지만 실제 배경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공산주의 혁명 직전의 러시아 마을 아나테프카의 유대인 마을.
러시아 황제 차르가 통치하는 가운데 서서히 공산주의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서서히 유대인 추방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시점에서 이 극은 시작된다.
테비에는 전통을 사랑하는 유대인이다.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고자 하지만 그들이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시대까지 늘 변하지 않던 아나테프카의 전통은 밖에서 밀려드는 여러 물결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가 지키던 전통이 허물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세 딸들의 결혼 허락 장면이다.
전통대로 아버지가 정해주는 짝이 아니라 직접 남편감을 고르는 첫째.
키예프에서 온 공산주의자와 사랑에 빠져 시베리아 수용소까지 같이 가버리는 둘째.
유대인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규칙을 깨고, 이방인인 러시아 사람과 결혼하는 셋째.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결혼식을 치른 테비에에게 마지막으로 시련이 닥쳐온다. 급기야 러시아 군의 유대인 퇴거 명령에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마을에서 쫓겨나 떠도는 신세가 된다. 현실의 상황만 보면 가련하고 고달픈 삶이다. 하지만 영화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활기차다. 도대체 왜 그럴까?
알고 보면 두 명의 주인공 - 바이올린 연주자의 정체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극에는 숨은 주인공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힌트는 가끔 하늘을 비추는 카메라. 대사는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그를 향해 늘 테비에는 말을 건다. 자신이 슬플 때나 즐거울 때.
하늘이 열리고 도사님 같은 목소리로 대답해주실 것 같은 하나님은 침묵하지만 대신 뜬금없이 개구진 모습으로 바이올린 연주자가 나타난다.
주인공이 고뇌에 빠져있을 때 저렇게 항상 뜬금없이 나타난 바이올린 연주자는 개구진 연주로 테비에와 흔들흔들 춤을 추며 귀가하게 만든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
하지만 항상 그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난은 끝이 없고 항상 그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테비에도 하나님께 원망한다. 단지 유대인, 하나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고난에 그가 외친다.
"가끔은 다른 백성도 선택해주시죠!"
하지만 대부분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심한 일들이 일어날 뿐이다. 계속해서 닥쳐오는 고난에도 테비에는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 마지막에 마을에서 쫓겨나는 순간까지도.
그가 마지막에 쫓겨나 가족과 정처 없이 떠돌 때에도. 갑자기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라는 듯, 가방 하나 없이 바이올린 하나 들고 나타난 그는 테비에가 어딜 가든 뒤 따라오며 흥겨운 연주를 이어나간다. 가장 힘들 때에도 항상 옆에 계신 하나님처럼.
고향을 빼앗긴 절망적인 상황에도 바이올린 연주자는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쫓아온다. 그 바이올린의 흥겹고 힘찬 연주 소리가 테비에에게 다시 웃음을 되찾아주고 흰 눈 쌓인 광야를 희망찬 곳으로 바꿔 놓으며 극이 마무리된다.
이런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 흥이 필요하신 분 - 시종일관 흥겨운 멜로디에 어깨춤이 절로 난다
- 역사물에 관심이 있으신 분 - 공산혁명 무렵의 러시아 상황, 유대인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다.
- 군무 좋아하시는 분 - 무릎이 깨질 것 같이 흥겨운 러시아 전통 춤도 감상 포인트!
-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하시는 분 - 놀랍게도 극 구성중에 바이올린 간주곡이 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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