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부정표현은 조기퇴장

부정어

by 안종필 작가


다음은 뇌와 부정적 태도 사이에 관련된 실험적 기록물을 소개합니다.


⟪긍정의 뇌⟫를 쓴 하버드대 뇌 과학자 질볼트 테일러교수의 이야기다.

저자는 37세의 나이에 뇌졸중에 쓰러졌다 8년의 회복과정을 거쳐 정상으로 돌아온다. 저자 질볼트 테일러 교수는 신경 해부학을 전공한 뇌 과학자이다. 어릴 때부터 정신 분열증을 앓는 오빠를 보며 자라 뇌의 작용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35세 이른 나이에 NANI 전미정신질환자 협회 임원으로 활동한다. 이런 뇌 과학자인 그가 37세이던 12월 어느 날 아침에 쓰러진 것이다. 이제 그가 직접 체험했고 연구한 기록물 중에 특별히 부정과 긍정 부분을 발췌한 내용이다.

“이른 아침 내 병력을 확인하러 들어온 의대생이 잠을 깨웠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말을 하지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뇌졸중 환자라는 사실을 통보받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날 아침 나는 병원이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환자의 에너지를 보호해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 젊은 여자는 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뱀파이어 같았다. 내 상태가 어떻든 상관없이 내게서 원하는 걸 얻으려했고, 그 대가로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말도 어찌나 빠른지 쉴새없이 떠들었고, 귀먹은 사람을 대하듯 고함을 쳐댔다(...)

그때 얻은 최고의 교훈은 재활 과정에 있을 때 나를 돌보는 사람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게 달려있다는 사실이다.

마음을 여느냐 마느냐 하는 결정은 내 소관이었다. 나와 교감을 나누고, 부드럽고 적절하게 나를 만져주고 눈을 마주보며 차분하게 말을 건네면서 에너지를 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열었다. 긍정적인 대우에는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반면 나와 교감하지 않고 기운을 빼는 사람을 대할 때는 그들의 요청을 무시하고 자신을 보호했다.

같은 날 아침 또 다른 의대생 앤드류가 와서 신경 검사를 다시 했다. 허약해진 내 몸은 덜덜 떨렸다. 혼자 서는 것은 고사하고 앉아있기도 버거웠다. 하지만 그는 부드러우면서도 확고한 손길로 나를 편하게 대했다.

조용하게 말했고, 내 눈을 마주 보았으며 필요하면 말을 반복해 주었다. 한 인간으로서 나를 존경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앞으로 좋은 의사가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과연 그랬기를 바란다.”

독자 여러분은 질볼트 테일러 교수의 체험적 기록을 어떻게 들었습니까?

저도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통하여 좌절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운 적이 꽤 많이 있지만, 뇌를 다친 뇌 과학자가 스스로 고백한 회복 수기는 충격과 감동 이었습니다.

위로와 격려, 의지를 세워주는 메시지는 누워있는 자를 일어나게 하고, 멈춰 있는 자를 움직이게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분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듣고 일어설 친구,후배,선배.동료,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방향의 메시지를 선포해 보세요.

방향이 있는 말은 목표를 보게 한다. 소망의 메시지는 소망을 보게 한다.

격려의 메시지는 의지를 모으게 한다. 의지의 에너지는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게 한다.

질볼트 테일러 교수는 멋진 인생을 가꾸어 나갈 비책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몸을 낮추고 평화로운 은혜의 상태로 돌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은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매사에 고마워하면 당신의 삶은 정말 멋질 것이다.!”


• 무관심보다 더 큰 상처는 부정어

“공부가 그리 중요한 것이오?

옷차림이 그리 중요한 것이오?

나는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소, 내가 바란 것은 따뜻한 눈길 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위 메시지는 2014년에 상영되었던 이준익 감독의 영화 ‘사도’ 의 한 장면이다. 자신을 뒤주에 가둔 아버지 영조 임금을 향한 사도세자 이선의 저항 메시지이다.

“나는 임금도 싫고, 권력도 싫소, 내가 바란 것은 따뜻한 눈길한번, 다정한 말 한마디였소”

따뜻한 눈길과 다정한 말 한마디. 나는 이 둘을 합쳐 관심이라고 부른다.

관심은 말하고 싶은 눈길이다. 관심은 닫힌 문 열어주는 말길이다. 관심은 차가운 손 잡아주는 손길이다.

관심은 상처가 없습니다. 관심은 따뜻한 시선이 보내는 손길이지요. 따뜻함은 참 좋은 단어입니다. 따뜻함에는 상처가 없기 때문이지요. 어떤 손길은 우동 한 그릇에도 따뜻함을 담아 놓습니다. 그 손길은 처음부터 따뜻한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이철환 작가는 ⟪연탄길1⟫에서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상처는 ‘아파요’하는 흐느낌이다. 우리는 타인의 삶에 상처자국을 남길 때가 더러 있다. 어떤 사람은 상처위에 또 상처를 남긴다. 새살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상처를 파는 이것들은 무관심보다 더 큰 웅덩이를 파지요. 그 웅덩이는 ‘부정어’란 단어입니다.

무관심은 시간 속에서 엷어지기도 하고 얕아지기도 한다. 색깔이 옅어져서 잊혀 지기도 한다. 하지만 부정어는 시간과 함께 상처의 부위를 파고 들어갑니다.

특히 부정어로 상처 낸 인격적 모욕侮辱은 가슴이 아파 한다. 분함이 통증을 때린다. 천성이 여린 사람은 혼자 끌고 가다, 영혼을 놓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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