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꿈
'여기가 내 방이야'라고 말하는 한때는 문을 꼭 닫은 채 그 안에서 지구 반대편을 그렸던 그곳에서, 나는 연필을 꼭 쥐고 있다. 책상 오른쪽 책꽂이 아래로 책상밑에 겨우 기어들어가야 볼 수 있는 비밀스럽고도 비밀 아닌 공간에 꽂힌 각양각색의 공책들과 수첩들, 한 장 한 장 빼곡히 적힌 모든 장에는 그 책상에 앉아 무표정하기도, 미소 띠기도, 울고 있기도, 졸고 있기도, 화가 나 있기도, 속상하기도 한 연필을 들고 있는 내가 있다. 작은 책상에 앉아 연필심이 톡 하고 부러지면, 다시 깎아 돌아와 또박또박 글씨를 쓰던 내가 있다.
여전한 채로 놓여있는 나와 연필깎이 앞으로 연필과 공책만이 짧아지기도 다시 새것으로 놓이기도, 비어있기도 흑연으로 가득 차기도 하며 변해갔다. 공책의 제일 첫 장을 꾹꾹 눌려 펼치는 것과 나무속에 납작 히 들어가 있는 연필심을 연필깎이에 넣고 돌려 뾰족하게 만드는 행위는 나만을 위한 작업 같았다.
나는 그렇게 늘 책상 한편에 앉아 마음을 눌러 적었다. 그것이 습관인지, 꿈의 시작인지 모른 채
브런치 안에서의 첫 번째 작품'정태'를 덜컥 시작하고 나는 온 마음을 담아 글을 써내려 갔다. 머리의 길, 마음의 갈피, 내면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꺼내어 고민도 감춤도 없이 순식간에 첫 번째 화를 완성시켰다. 그리곤 마치 변두리 무명작가라도 된 마냥 다음화 다음 화에 심혈을 기울여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또 그다음화를 써내려 갔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첫 번째 화에 마음을 머무르게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거의 불가능하다 싶었다. 첫 화에 내려 적었던 그때의 나로 다시 돌아가, 읽어 내리고 조용히 되새김 해 보아도 감정이란 미세하게도 계속 변했다. 이미 그때를 지나쳐 온 내가 그때의 나를 고스란히 불러오는 일은 아무리 내가 쏟아낸 것 일지라도 여간 대수롭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써내려 온 글을 저장하듯이 머물러있는 글쓴이의 감정까지 저장하고 불러오기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네 번째 화부터는 쓰던 창을 여러 번 닫았다. 그리곤 알게 되었다. 같은 자리에 앉아 여전한 채로 놓여있는 나 일지라도 결코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대수롭지 않았던 글이 우연히 다시 펼쳤을 때 심장을 쳐내고, 일렁이게 만들었던 문장이 어느 날 어떤 때 아무런 문장이 아닌 것이 된다. 이미 써 내려간 흑연, 저장된 문구, 출력된 잉크, 그들은 그 어떤 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머물러 있는 듯 머물러 있지 않는 글쓴이와 독자가 변하지 않는 글들을 변화시킨다. 나는 결국 인정하고 변하는 감정도 어제와 다른 오늘의 생각도 그대로 연필심에 담는다. 연필심에 나의 꿈도 담는다. 작가의 꿈.
첫 번째 작품이 곧 마지막 화를 앞둔 지금 꿈을 쥐고서 시작의 연필을 겨눈다.
나의 연필심이 독자들의 가슴에 콕 박혀서 내 손끝에 있는 울림이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며,
머물러 있는 내 글이 동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