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와의 동거
하얀 종이 위로 적힌 글이 모든 감각을 무디게 했다.
'역시나 엄마는 사과의 편지 따위를 적어 올려놨다. 또 미안하다 하고, 뻔하다, 지겹다'
'엄마 내가 개야? 내가 하루 종일 집에 있다가 산책 한번 가자고 하면 꼬리 흔들고 좋다고 따라나서는 개야?'
'엄마가 지랄하지 말고 꺼져, 병신이라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의 여러 날들에 걸친 일기장의 문장들이었다.
밑에는 날마다 담임선생님의 코멘트가 적혀있었다.
그중 최근에 적힌 코멘트가 다시 나를 때렸다.
'엄마를 바꿀 수 없다면 네가 단단해져야 해'
토요일 저녁, 해가 지려면 두어 시간 남아 기분 좋은 시간
산책 나가자며 옷을 갈아입고
천천히 준비하는 딸아이의 책상이 엉망이라 정리 좀 해주려는 찰나
펼쳐진 종이를 눈에 들이고 말았다.
딸의 일기장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쓰는지 안 쓰는지 멀찍이 서서 확인만 하고 넘겼다.
딸아이의 사생활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고
딸이 좋아하는 장소, 딸이 좋아하는 음식, 딸이 원하는 놀이,
우리의 저녁과 우리의 주말은 웬만하면 딸과 아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흘렀다.
그렇게 노력했고 그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딸아이의 일기장이 멀리 서서 빼곡할 때마다
'아 오늘도 즐거운 것 잔뜩 적었네' 싶었다.
하지만 딸아이의 일기장에는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엄마가, 엄마가, 엄마는, 나의 뒷담이 잔뜩이었고
사실이 아닌 부문까지 사실이 되어있었다.
제일 사랑을 나누는 지인에게서
제일 믿음을 나누는 지인에게서
칼에 찔린 마음이었다.
아무런 이성의 끈을 잡을 수도 없는 채
딸아이의 이름을 부르고 '이게 뭐야?'라고 물었다.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달랠 수가 없었다.
'너는 반성하고 있어' 남편과 첫째를 집에 남기고 둘째와 현관을 나섰다.
어른인 척을 다시 멈췄다.
놀고 있는 둘째를 바라보는 흉내만 내며 한참을 놀이터 주변을 걸었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을 헤아릴 공간이 없는 채
내 마음 하나 달래기 힘들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저녁과 우리의 주말은 늘 행복이었는데
왜 딸이 기억하는 우리의 저녁과 우리의 주말은 불만으로 가득했을까.
그날은 딸아이가 산책을 가고 싶어 했다.
저녁 할 일을 얼른 끝내고 아파트 단지 한 바퀴를 돌았다.
놀이터도 가고 한참을 놀다 들어와 씻고 포근히 잠들었다.
적어도 내 기억은 그렇다.
그런 저녁에 드라마'폭삭속았수다'의 학씨 부인 대사를 저렇게 적어 놓을 줄이야.
어릴 적부터 말들을 잘 외워서 집에서 텔레비전도 잘 틀지 않았다.
그 드라마가 오랜만에 재밌는 바람에 아이과 가끔 보았다.
같이 목욕을 하던 날 졸졸졸 저 대사를 읊어 대는 걸 보고
속으로 흠칫 놀래기도 귀엽기도 했던 그 시간이 기억이 났다.
내가 학씨 엄마가 될 줄 몰랐던 그 시간.
종이 울렸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생각했던
그 하루의 저녁에는 그 주말의 밤에는
언제나 숙제의 시간이 있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차려내고 정리를 하고 나면
수학과 영어문제집을 펼치게 했다.
하루 한 장씩 수학을 다 풀어내면 영어책을 펼쳐야 했다.
그렇게 사랑을 변명으로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기장을 펼치기 직전 아이의 마지막은 전쟁이었던 것이다.
쿵쿵 내딛는 발소리, 짜증 섞인 대답,
반쯤 감긴 눈, 구부정한 허리
나는 그 앞에서 어른인 척하지 못했다.
내 마음에서 내 입에서 그런 언행이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엄마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한숨, 이마로 올려지는 손,
날카롭게 부르는 이름, 한심하다는 듯 보내는 눈빛
그 모든 것을 아이는 아이답지 못하게 받아내며
그렇게 흡수했으리라.
나는 그 어린아이의 마음을 또 뒤늦게 알아챈 채
그 아이를 집에 두고 놀이터에서 걷고 있었다.
아이에게 잘못을 떠넘긴 채 '반성하라' 말해놓고는 또 늦고 말았다.
반성을 해야 되는 건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