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대와의 동거
시댁 식구들과의 오랜만의 여행에서 지난밤 시부모님은 이른 잠에 드시고
시누네 네 식구와 우리 네 식구는 산책을 나섰다. 기억에 남을 밤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거실로 시부모님의 소리가 들렸다. 이른 잠에 드시고 일찍 일어나셨다.
둘째 아이가 후다닥 일어나 방에서 나가 시부모님 곁으로 갔다.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우리 아가 일어났나"
"네 할머니"
"아이고 어제 뭐 했노. 뭐 한다고 그래 늦게 잤노"
"편의점 갔어요"
"편의점 갔더냐, 뭐 샀노"
"얼음이요"
아이는 더 이상의 어떤 설명이 없었다.
그 밤에 얼음은 왜 샀는지 편의점 간다고 그렇게 한참을 나가있었는지 궁금하실 터였다.
당장에라도 일어나 방문을 열고
'어머님, 어제 바닷길도 산책하고 리조트 건물 곳곳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오락실도 가고
올라오기 전에 편의점에 들러 간식거리들을 샀는데 얼음이 아니라 얼음모양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어요'
라고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아이에게 이야깃거리로 아침까지 남는 것은 마지막 들렀던 편의점의 기억이었다.
긴긴 하루에 아이의 일기장이 행복으로 차려면 마지막 감정이 행복해야 했다.
그 감정으로 내일 아침 담아낼 이야기까지 행복을 묻혀낸다.
하루의 마지막을 숙제로 마무리하고
모른다며 윽박을 지르고 한숨을 쉬어대는 엄마는
결코 아이의 일기장에 좋은 말로 마감할 수 없을 터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아오면 미안한 마음에 출근 전 써놓는 편지도
하루 종일 식탁에 놓인 따뜻한 음식도, 함께 걸은 거리도, 나누었던 이야기도
아이의 마음에 절대 와닿을 수 없을 터였다.
마지막의 한숨만이 아이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일방적인 편지, 일방적인 사과
그 어떤 것도 초등학교 5학년 딸아이의 마음을 풀 수 없을 터였다.
나는 아주 이기적인 엄마다.
아이가 왜 그런 일기를 적을 수밖에 없었을지
('4화 - 엄마, 내가 개야?' https://brunch.co.kr/@writeratdusk/52 참조)
한참을 생각하다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식탁 위에 반성문을 올려두었다.
반성을 해야 될 사람은 나인데 아이가 올려 두었다.
아이에게로 갔다.
여전히 평소처럼 억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서
말대꾸를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반성문은 남편이 시켜 겨우 쓴 게 분명하다.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가 이렇게까지 너에게 모질게 한적도 욕을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적었냐 물었다.
"아빠도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다 엄마편만 들고 엄마가 잘했다고만 하니까
엄마도 선생님께 혼나보라고 그렇게 적었어!"
아이는 눈에 미안함을 잔뜩 묻히고 엄마에게 혼날까 두려움도 비치며 여전히 억울함을 토해냈다.
"그랬구나.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네가 그렇게 느끼도록 그럴 수밖에 없도록 너를 혼낸 건 맞아"
매일 저녁 방과 후 수업에 피아노학원에 저녁 먹고 나면 너도 지칠 텐데
엄마의 욕심에 나의 욕심에 수학문제집 영어문제집 붙들고 모른다고 혼내고
그깟, 수학
그게 뭐라고
너와 나를 이렇게 갈라놓는지
아이는 일기장에 어떤 글이든 적을 권리가 있다.
이유가 어찌 됐든 그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행동한 내 잘못이 크다.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매일 영어 수학을 하는 건 부담이 크니
꾸준함을 위해 월수금 영어 한 장, 화목토 수학한 장 이렇게 복습해 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사랑하는 이가 담은 내 욕을 잔뜩 적은 글을 떨치는 데는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엄마 나도 미안해, 나도 너무 화가 나서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그렇게 적었어, 고칠게 미안해"
"아니야. 네가 그런 감정이 드는 건 당연한 거야. 엄마도 너도 모두가 느끼는 감정은 그럴 수 있는 거야.
그냥 이 상황을 우리 같이 고쳐보자"
그깟, 수학
그것이 아직은 우리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