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앞둔 마흔이 된 마흔을 넘은 당신, 꿈이 뭔가요

십 대와의 동거

by 영웅

"엄마는 꿈이 뭐야?"


아이 둘을 낳고 직장이 있는 마흔 살의 내게

꿈을 묻는 이는 긴 시간 없었다.

나 또한 누가 봐도 성년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나 이런 질문을 말 붙일 겸 던져 보았지

주변인들에게 '꿈이 뭐예요?'라고 물어본 지는 꽤 긴 시간 흐른 것 같다.


의례 그랬다.

마흔을 앞두고 마흔이 되어 마흔이 넘어 꿈이 있다면

한 겨울 두툼한 외투의 소매 사이로 쓱 넣어놨다가 어쩌다 소맷단에 손가락이 스칠 적에나

그 누구도 알 수없게 혼자 자각하고 느껴보는 것, 그런 것 일 거라고

양치질을 하거나 길을 걷거나 긴 연휴를 지내고 출근하는 아침이라던지

일상의 권태를 느끼는 날에 문득 생각나는 그런 것, 딱지접은 편지처럼 펼쳐봐야만 보이는 그런 것,

당당하지 못하게도 피식거려지며 흘깃거리고 말게 되는 그런 것,

나는 내 꿈을 의례 그런 것이라 여겼다.


나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이고, 어딘가에 소속된 직장인이니까.

이렇게 조용히 정년까지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오늘 하루 무탈하기를 바라며

일주일, 한 달, 일 년을 지내며 다가올 노후를 준비하고

마치 사과나무에 열린 사과처럼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익어가는 일만 남은 인생이라고

그렇게 여겼다.


"나는 우리 서안이 서율이 엄마가 꿈이지, 아 꿈을 이뤘다"

"그런 거 말고, 나랑 누나에 관한 거 말고 엄마 꿈 말이야, 엄마 꿈이 뭐야?"


그런 내게, 나무에 열려 움직이지도 떨어지지도 못하고 가만히 달려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내게

꿈을 묻는다.

부끄럽게도 소맷자락에 스치는 것이 있지만 이것이 대답거리가 되나 싶어

선뜻 대답을 못하고 둘러 대답한다.


"엄마는 뭐 다 이뤘지, 이렇게 귀한 보물 두 개가 있는데 그거면 됐다. 그거면 엄마는 다된다"

"아니 꿈, 꿈 말해줘, 꿈! 하고 싶은 거 엄마는 뭐가 하고 싶어?"

"작가, 작가가 하고 싶어"


직장인이라는 것을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는 걸 어떻게 알고

아이들은 나에게 하고 싶은 걸 묻는 걸까?


내뱉고 나니 쉽다

"작가가 하고 싶어"

더 묻지 않아도 한번 더 말하게 된다.

"아, 작가, 엄마 시 쓰잖아, 시 쓰고 있잖아"

10살 아들이 누워서 골똘히 생각하며 계속 묻는다.


"유~~ 명한 작가, 유~ 명한 작가 하고 싶어"

"엄마, 쓴 거 보자. 요즘도 계속 쓰고 있지? 보여줘!"

"응, 쓰고 있지"

"엄마 그 속담 뭐지, 처음부터는 안 되는 거. 한 발부터 내딛는 거"

"첫술에 배부르랴?,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응 맞아 맞아. 그거! 엄마 계속해야지.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그렇지, 맞아.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지. 열심히 해야 할 수 있지"


내 글을 조용히 읽다가 아이가 다시 묻는다.

"엄마 여기 유~명한 사람들은 누구야? 유~ 명한 작가들도 있어?"

"많지, 여기 여기 이 분들은 다 인기 많은 사람들이야"

"이 사람은 500개 글이 500개네, 이 사람은 200개, 엄마도 계속해야 꿈을 이루지"

여전히 아기분내가 나는 것 같은 10살 아들이 해주는 이야기는

막연히 소맷단만 매만지는 나의 소매를 걷어준다.

"그렇지? 엄마가 너무 성급했지? 맞아.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어디야"


"엇, 이 사람은 9개다. 9개인데도 유명해졌어"

"그렇지? 어떤 사람은 몇 작품 없어도 이렇게 유명해진다니까."

소맷단을 다시 내릴까 하다가 그래도 여전히 걷어있는다.


"너는 꿈이 뭐야?"

"나는 자꾸 바뀌어, 요리사도 하고 싶고 피아노 치는 사람도 하고 싶고 지금도 고민 중이야"

아이는 진중하게 말한다.


앞으로도 수없이 바뀌기도 이루고 그다음 꿈이 생기기도 할 그런 꿈들.

무한히 돌아갈 고민스러운 꿈들 속에서 아이는 나의 꿈을 묻는다.


선뜻 꺼내지 못하고 소맷단만 매만지는 어른들의 꿈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어른이 될까.


사과열매를 가득 품은 사과나무였던 나는

언제부터 가만히 익어가는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가 되어버렸을까.


나는 다시 땅으로 떨어져 사과나무가 되어 꽃을 잔뜩 피울 수 있을까.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