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산타가 아니라 엄마니까.

십 대와의 동거

by 영웅

성탄절 아침

한숨과 눈물이 난무하는 아침 속에서 나만 웃고 있다.

트리 앞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힌 편지와 조그만 열쇠고리가 테이프로 붙어있다.

"내가 이제껏 너에게 못 온 이유는 너도 나이가 있어서 그렇단다. 하지만 이번엔 엄마 중에 특별상으로 너에게도 선물을 준다. 네가 원하는 걸 잘 몰라서 미안하구나. -산타-"




"엄마는 산타가 있다고 믿어?"

"있잖아, 너네 매년 선물 받잖아"

아차 싶은 얼굴로 분명히 친구들도 선생님도 없다고 한 산타를 매년 있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친구들과 선생님 말을 더더욱 믿으면서도 물증이 없는 아이들이 묻는다.

"언젠간 나타날 거야. 엄마는 그렇게 믿어. 그래서 매해 산타에게 선물 받으려고 열심히 살잖아"

"올해도 엄마 선물은 안 주면?"

"뭐 그냥 아. 올해도 없네. 그냥 뭐 괜찮아. 앞으로도 열심히 살지 뭐"

"아 너무 슬픈 말이잖아!"

"푸핫, 슬퍼?"

"아니 너무 안 돼 보이잖아!"


가로등 불빛이 분명하지만 마치 저 멀리 있는 달이 밝게 비춰주는 것 같은 크리스마스이브의 겨울밤

분리수거도 할 겸 꽁꽁 싸매고 나갔다 집 앞에서 몇 걸음 걸으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나의 산타가 다녀간 것을 보니

이제 아이들은 산타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 같다.


나는 영원히 산타를 믿을 것이다.


"이거 봐, 산타를 믿으니까 결국 산타가 또 오잖아. 내년에도 또 왔으면 좋겠어!"

행복함을 잔뜩 묻힌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얼굴은 슬픔이 가득하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부터 한숨과 억울한 소리가 거실 한편으로 울러 퍼진다.


이 좋은 크리스마스는

아침을 시작으로 한참을 기쁨이 없었다.


크리스마스 몇 주 전

아이들과 함께 연말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일본 만화책과 만화영화에 푹 빠진 아이들에게

실제 일본의 정취를 느끼게 하고 싶어 연말 휴가와 아이들 방학을 맞추어 계획하였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후에 출발하는 일본여행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더욱 기대하는 눈치였다.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이미 산타의 존재를 눈치챈 것은 확실하지만

끝끝내 진실을 말하지 않는 내게

본인들이 무엇이 가지고 싶은지 산타가 아닌 나에게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전달하는 남매


5학년 딸아이는 도마뱀 한 마리,

3학년 아들은 요즘 푹 빠진 만화 주인공이 가지고 다니는 칼을 만들 수 있는 레고를 가지고 싶다 한다.


이 엄마의 눈에는 큰 아이는 아직 생명체를 책임지고 키우기에 부족해 보이고

둘째 아이는 차고 넘칠 만큼의 레고와 장난감이 눈에 거슬린다.


산타의 눈으로 봤어야 했는데 엄마의 눈으로 선물을 판단하고 있다.

나는 산타가 아닌 산타인 척을 하고 있다.


'크리스마스라고 또 선물을 주고 그다음 주 연말에 일본여행을 가서 또 여행을 기념하며 물건을 살게 분명할 텐데 흠...'


고민하던 찰나에 번뜩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엔화로 주자!'

세상에 이렇게 좋은 아이디어를 내다니.

아이들도 크리스마스 다음 주에 일본에 가니까 엔화로 주면 뛸 듯이 기뻐할 거야.

본인들이 가지고 싶은 물건을 직접 구매할 수 있잖아.


선물을 준비하는 내내 설레었다.

'이렇게 신박한 산타의 선물이 있다니.

다음 날 아이들이 일어나면 행복해할 거야.'


그렇게 상상했던 크리스마스의 아침은 눈물바다가 되어있었다.


아이들의 한숨소리로 잠에 깨어 거실로 나가자

둘째 아이가 먼저 펑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으앙!!!!! 산타가 삼천 원 줬어!!!!!!!!!!!!!"


뒤이어 첫째 아이가 눈물이 잔뜩 고인 채로 말했다.

"산타는 또 내가 갖고 싶은걸 안 줬어!! 이런 돈은 나도 충분히 많아. 나는 선물을 가지고 싶어,

그리고 친구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보통 5만 원은 받는데 삼만 원 받았어 나는"

용돈이 생기면 저금하는 게 습관인 첫째는 이런 날 제대로 된 선물 하나 받고 싶었나 보다.


일단 미처 편지에 적지 못한 말을 먼저 꺼냈다.

"아 엔화는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엔화에서 0 하나를 더 하면 대략 얼만지 알 수 있어.

삼천 엔이면 삼만 원이야"

꾸역꾸역 눈물을 흘리던 둘째의 동공이 살짝 커지는 듯한 것을 보았다.


전 날도 크리스마스를 기념한다며 거실에서 이불 깔고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보다 늦게 늦게 잠든 아이들은 새벽부터 일어나 선물을 보며 내내 슬픔 속에 잠겨있다.


내 예상은 또 빛 나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다음 나의 행보는 작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른다며 아이들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감사할 줄 아는데 감사한데 내가 갖고 싶었던 게 이런 게 아니라 자꾸 눈물이 나"

첫째가 말했다.

둘째는 삼천 원이 아니라 삼만 원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편지와 선물을 다시 꽁꽁 싸 본인 방으로 고이 가져갔다.


"일본 가서 네가 가지고 싶은 것이 돈이 더 필요하면 엄마가 더 보태줄게"

이 한마디에 둘째는 지금 당장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못하는 서운함을 더 누그러뜨린 듯하다.


첫째는 계속해서 도마뱀 도마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아지도 못 키우게 하고 도마뱀도 못 받고 엉엉엉


"너 방정리 100일 동안 잘하면 엄마가 도마뱀 사줄게"

"잘하고 있잖아, 엉엉엉"

"아니, 너 지금 방에 가봐, 엄마가 너 혼내고 싶지 않아서 말 안 하는데 너 방이니까. 너 외투옷걸이에 안 걸어놓고 바닥에 던져놓는 거 엄마 매 번봐, 책상 위에는 책 한 권 펼칠 자리 없고, 너 정리하라고 엄마 몇 번 말하고 내내 말해, 더 말하고 싶은데도 사사건건 다 말 못 하는 거야. 도마뱀도 강아지도 모두 생명체야. 너 생명체 하나를 집에 들이는데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한 줄 아니? 계네는 그냥 레고나 인형처럼 장난감이 아니다. 생명이다 생명!"

"알고 있어!!!"

"알고 있으면 더 신중해야지. 더더욱 신중해야지."


나는 또 따발총 같은 잔소리를 연타로 퍼붓는다.

퍼부으면서도 스스로도 생각한다.

과연 이렇게 계속 내뱉는 말이 전달이 될까.

제대로 내 마음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모두 전달이 될까.

그런 확신이 없으면서도 나는 내뱉는다.

그 순간에 이 많은 말을 다 하지 않으면 분명 언젠가 나눠서라도 다 하게 될 거라 지금 다 말하고 끝내자 싶다.

그런데 이 많은 말이 전달이 되지 않을 거라는 피곤함까지 같이 몰려온다.


그 잔소리는 내뱉는 나에게 시원함보다 피곤함이다.

성탄절 아침부터 아이들을 울리고 설교하고 아이들의 한숨에 같이 한숨 쉬는 나는

산타도 아니면서 왜 매년 산타인 척을 하고 있을까.

산타인 척을 하려면 끝까지 산타인 척을 해야지.

트리 아래 선물을 둘 때만 산타일 뿐.

나머지는 그냥 엄마일까.


내가 진짜 산타가 되면 아이들에게 즐거운 성탄절을 줄 수 있었을까.

물소리 그릇소리를 퍽퍽 내가며 설거지를 하며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단숨에 말하는 잔소리들로 진짜 하고 싶은 건

아이의 슬픈 마음을, 엉망이 된 크리스마스 아침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은 것일까.


'내가 이렇게 이유를 빨리 말하니까, 그 슬픈 마음 강제로 당장 접어'

이런 것일까.


정오가 넘어가고 큰 아이가 여전히 슬픈 얼굴로 내 곁에와 앉는다.

그리곤 말한다.

"엄마, 나 100일 동안 방정리 잘하면 정말 도마뱀 사줄 거야?"

아직도 전투태세를 덜 푼 채 무장하고 싸울 준비를 하고 있던 나는

훅 들어오는 상대방의 강력펀치에 덜컹한다.

역시나 나보다 더 대단한 아이들.

나를 이기는 아이들.

"물론이지. 100일이야 딱 100일 크리스마스 오늘부터 딱! 100일, 4월쯤 될 것 같은데!? 그때까지만 방정리 열심히 하면 너는 생명체를 키울 자격이 되는 거야"

"알았어, 나 해볼게, 100일 하니까 되게 많아 보이는데 4월 하니까 금방인 것 같고 계속 그래"

"그렇지, 속상했지"

"나는 돈보다는.... 선물이 받고 싶었어."

아이의 슬픈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산타는 나에게 영원히 없을 평생의 선물 이 둘을 주었다.

자신 대신 나에게 산타의 임무를 주고서


내가 진짜 산타였으면 너에게 도마뱀도 강아지도 주었을 텐데.

내년 성탄절에는 꼭 엄마가 아니라 산타가 되어 볼게.


하지만 생명체는 진짜 소중하고 신중해야 한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