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너, 내 동료가 돼라!

2017.3.7. 리마, 페루(D +29)

by 배짱없는 베짱이

새벽 2시. 핸드폰 진동에 잠을 깼다. “언니 저 지금 공항에 도착했어요.” 약 1주일 전 쿠바에서 만났던 H의 연락이었다. 쿠바를 떠나 콜롬비아로 갔던 H는 나보다 하루 늦게 리마에 도착했다. 날이 밝으면 우리는 다시 만나 페루에서의 일정을 함께하기로 한 터였다.



"너 혼자?" 그래 혼자. “여자 혼자?” 응 혼자. “겁도 없이” “그것도 남미를”… 사실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남미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될 줄이야. 회사는 어쩌고? 지금 나이가 몇인데? 이런 질문들을 걱정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묻는 사람들 중에는 여행을 가고 싶지만 차마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못 간다고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여하튼 사실 내가 혼자 떠나게 된 이유는 정말 간단했다. 가고 싶은데, 가야겠는데, 그 긴 시간을 내어 같이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았으니까.

처음 떠날 땐 혼자였고, 내내 혼자더라도 상관없다 생각했던 나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6개월여에 이르는 여행길에서 오롯이 혼자로 보냈던 시간은 채 열흘이 되지 않았다. 바다 건너 이 대륙에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여행자, 그리고 한국인 여행자, 그리고 눈만 마주쳐도 친구가 될 준비를 마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여행이 끝나면 마추픽추가 얼마나 멋있었는지, 우유니 소금 사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구아수 폭포가 얼마나 장대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이 여행이 끝났을 때 난, 그곳에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지, 그들과 얼마나 즐거운 경험을 했는지에 대해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 인생 처음 만나는 자유였고 모험이었던 남미 여행을 완성시켜 준 나의 친구들. 계획도 정보도 없이, 모두가 간다는 길을 따라 무채색의 지도 여행일 뻔했던 여행이 이들 덕분에 총천연색의 모험기로 변했다.

남미에서 나의 첫 번째 동행이 되어준 친구 H는 ‘여행자끼리는 모두 친구 아닌가요!?’라는 호탕한 마음을 가진 한국 친구였다. 계획이 없으니 함께 다녔으면 좋겠다는 내 말에 선뜻 좋다고 한 H는 새벽에 리마에 도착, 공항에서 노숙을 하면서 한국에서 곧장 리마로 온 간호사 J, 그리고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귀국 전 짧은 여행을 계획한 S를 또 다른 동행으로 모았다. 나이도, 행동반경도, 성격도, 취향도 모두 제각각, 한국이었다면 대체 어디서 우리가 만날 수 있었을까. 아니 만났더라도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싶은 녀석들.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함께 버스에 올랐고 벌써 몇 년은 알고 지낸 친구처럼 떠들며 웃고 있었다. 남미 대륙에 도착한 지 만 하루 만에 이 낯선 나라를 함께 여행할 낯선 세 명의 친구가 생겼다.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 페루의 수도, 리마

리마는 남미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의 첫 번째 도시가 되는 곳이다. 페루의 수도이기도 한 이곳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 플로레스’라는 신 시가지 지역을 제외하면 여행자들에게 위험하다고 많이 알려져 있는 도시기도 하다. 특히 공항 주변이나 구 시가지는 총이나 칼을 든 강도가 많고, 택시도 아무거나 잡아 타면 제대로 바가지 쓰기 쉬운 곳이라고. 그래서 리마는 대체로 다른 도시로 가기 위한 경유지로, 혹은 길어도 1~2일 정도만 머무는 일정으로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리마 공항에 새벽에 도착한 H 역시 곧장 공항 밖을 나서느니 날이 밝을 때까지 공항에서 노숙을 하는 편을 택했던 것이고, 그러는 동안 비슷한 상황에서 공항 노숙을 하는 한국인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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