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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Apr 29. 2024

무계획이 내 계획

[주간회고] 4월 마지막주

원래대로면 지금쯤 라오스 비엔티엔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있어야 했다. 계획 중이던 장기근속 휴가가 무산됐다. 대신 6월부터는 기약 없이 푹 쉴 수 있게 됐다. 오늘부로 퇴사가 공식화됐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요상스러운 것이,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 예전에는 지겹게만 여겨졌던 모든 일상의 구석구석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점심시간 산책길의 풍경이, 클라이언트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말이 되게 만들어내는 과정이, 팀원들과의 소소한 시간들이 참 소중해진다.

주말에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친구에게 집을 빌려줬다. 나는 나보다 조금 더 일찍 백수 생활 중인 다른 친구네 집에서 신세를 졌다. TV도 없는 방안엔 거의 모든 벽면이 만화책과 각종 책, 그림 등으로 빼곡하고, 반쯤 열려있는 창문에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여전히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는 친구와 하룻밤을 보내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과 속도가 있다. 그저, 그게 지금의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일 뿐.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방식에 맞추어 자신을 개조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 또한 오랜 시간 그래왔고. 다만, 이젠 좀 지쳐버린 느낌이고 조금 더 나를 잃기 전에 아직은 막연하지만 ,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6월이 되고, 조금 더 자유로워지면 나는, 아마도 당분간 프리랜서로 일하며, 무산된 여행을 위한 배낭을 다시 싸거나, 동네 초등학교 체육센터에 찾아가 수영을 배울 것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안 하고 바로 어딘가에 재취업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계획 없이 나가진 말랬지? 누군가의 타박이 그럼에도 이 세계를 살아야 하는 나를 아껴하는 말인 줄 알지만, 어쩌겠어. 이게 나의 방향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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