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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Feb 19. 2023

나의 독립 일지

나온지 4년 만에야 쓰는 소회랄까…

뭐 하나 끝까지 쓰지를 못한다. 맨 처음 시작했던 남미여행기가 그랬고, 나와 살기를 마음먹고 준비하면서의 과정을 쓰던 글이 그랬고, 무언가 내 속에 해소되지 않은 불만덩어리들을 걷어내 보자고 시작한 글도 그랬다. 하고 싶은 말이 없어서라고 누누이 이야기하지만 정말 그렇기 때문인지, 아니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꺼내놓는 것이 부끄러워 애초에 생각을 안 하는 것인지, 그 과정이 너무 힘들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역시나 그냥, 게을러서이리라 ㅠ


아무튼 그 언젠가 쓰다 만 나와 살기의 과정 끝에 난 독립에 성공했고 그렇게 마포구에 나와 산 지 어느새 4년이다. 정말 운 좋게도 지하철 역세권에 방도 무려 3개나 있는 집을 구했다. 심지어 이전 세입자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모든 옵션을 두고 간다고 했다. 낡은 빌라였고, 평수도 작은 편이었지만 혼자 살기에 그리고 처음 나와 사는 집으로 너무 훌륭한 곳이었다. 거실은 없었지만 방이 3개인 덕에 옷방, 침대방, 거실용 방 등 공간을 모두 분리해서 사용했고, 마포에서도 꽤나 중심가 지역의 역세권이어서 어디로든 언제든 이동도 편했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놀러 오기도 좋아서 초반에는 이 사람 저 사람 초대도 많이 했었는데, 집안에 있으면 이 근방이 소음도 하나 없이 조용해서 어쩌면 내가 이 동네서 제일 시끄러운 사람인건 아닐까 걱정할 정도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끔씩 들리는 새소리 외에는 고요한 이 집이 좋았고, 마음껏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라 더 좋았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다 늦게 들어와도, 혹은 게임을 하거나 TV를 봐도 눈치 볼 일 없는 이 생활이 꽤 근사했다. 게다가 조금만 걸어 나가면 카페에 맛집에 술집에 없는 것이 없었고 큰 마트에 시장에 편의점, 영화관, 옷 가게, 정말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을 누렸던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순간이 다 좋았을 리는 없지. 고충을 말해보자면 우선 이 집이 지어진지 내 나이와 비슷한 구옥이었다는 거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배겨 있었는데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추위(외풍)였고, 두 번째로 화장실 상태였다. 집주인이 (돈을 아끼려고 인지) 새시 공사를 큰 방 창문과 화장실만 해놓고 작은 방은 옛날 나무와 철제 2중 창을 그대로 둔 집이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아무튼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더웠다. 특히 추위를 많이 타는 내겐 겨울이 고역이었는데,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방바닥이 지글지글 끓어올라도 집안의 공기가 따뜻해지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밤새 보일러를 돌리면 그나마 좀 훈훈해졌지만 출근을 하면서 보일러를 낮추거나 끄고 가면 그 사이에 집은 또 식어있고, 후리스를 덧입으며 집안이 따뜻해질 때까지 방바닥에 이불을 깔아놓고 그 안에 들어가 누워있다 기어코 잠들고 마는 날들이 반복됐다. 가능한 내 몸이 우선인 삶을 살기 위해 가스비는 아끼지 말자 주의였는데, 올 겨울에는 난방비 폭탄이 무서워 아껴가면서 틀어야 했고 그래도 작년만큼… 아니 작년보다 더 나왔다. 속상하다. (마찬가지로 더울 땐 또 엄청 더웠는데, 에어컨을 켜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큰 방만 겨우 시원해져서 방문을 닫고 큰 방에서만 생활했다.)

집에서 가장 추운 곳 중 하나는 아무래도 화장실이었다. 환풍기가 없어서 화장실을 사용하고 나면 늘 창문을 열어놓아야 했고 그러면 밖의 찬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냉큼 들어와 찼다. 창문을 닫고 거실 쪽 문을 열어놓는 방법도 있었지만 안 그래도 오래돼서 벽의 타일에는 금이 가있고, 나무로 된 문지방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 세면대 배수관 쪽에는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들이 남아있는 그런 화장실을 거실에서도 바라보고 싶진 않았다.

가끔씩 집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안 해주려는) 집주인과 벌어지는 실랑이, 관리 안 되는 구옥의 지저분한 계단참(그렇다고 뭐 나도 청소한 적은 없지만), 쓰레기 문제로 인한 앞집과의 언쟁까지. 이건 다 안 좋았던 기억이지만, 또 이런 일 한번 안 경험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경험해 보는 게 어디야, 뭐 이런 생각으로 잘 넘겨왔다. 아무튼 그렇게 4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계속 독립생활을 이어 나가야 할 두 번째 집을 찾아볼 때가 되었다. 두 번째 집을 알아보면서 생각보다 내가 나에 대해 잘 알게 된 것 같다고 동생한테 이야기를 했었는데, 지금의 그 생각과 감정들을 글로 남겨놓으면 어떻겠냐는 대답이 왔다. 그게 무슨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또 아무것도 안 쓰고 날려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 생각났을 때 이렇게 끄적여본다. 집을 통해 어떻게 내가 나를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인지, 그게 다음 집을 구할 때 어떤 의미가 되었다는 것인지 그 이야기는 좀 쉬었다가 다음에 이어서 적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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