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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Mar 25. 2019

무엇을 포기하겠습니까

[고독한 개짱이] 카페라테 & 와플

아직 한겨울 같던 몇 주 전 주말의 일이다. 완벽하게 지쳤다. 알람을 미루고 미루다 겨우 일어나서 씻었다. 왜 잠은 자도 자도 부족할까. 오분만, 십 분만 더 쉬면 좋을 텐데 그랬다간 약속시간에 늦을까 봐 머리도 다 말리지 못한 채로 나왔다. 노트북에 노트에 책까지 배낭에 잔뜩 욱여넣고 거북이처럼. 여름까지만 해도 무겁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요즘 들어 조금씩 어깨가 아프다. 해가 바뀌어서 그런가.


겨우 부동산과의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했건만 마치 약속 따위 없었다는 듯 무시당하는 기분을 받았다. 처음부터 나를 약 오르게 했던 그 부동산이다. 꿔다논 보릿자루처럼 멀뚱히 앉아있는 나를 두고 줄줄이 들어오는 고액의 임대인만 상대하던 중개사는 한참만에 나를 데리고 일어났다. 전화로 약속을 잡을 땐 적어도 3군데는 돌아볼 수 있댔는데 막상 오늘 내가 볼 수 있는 방은 겨우 하나.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지린내가 진동하는데 누군가 볼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린지 오래된 듯했다.


이 부동산엔 아무리 좋은 매물이 올라오더라도 다시는 연락을 안하리라 다짐을 하고 다른 부동산을 몇 군데를 더 돌아봤지만 내 예산으로는 원하는 집을 구할 수 없을 것이란 말만 잔뜩 들었다. 다시 추위 속으로 나왔을 때, 더 이상 지겹고 짜증 나서 다 그냥 때려치우고 싶었다. 그냥 살던 대로 엄마아빠 집에서 살자. 불편해도 그 고생을 감수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몰라. 어쩌면 지금 이 짓은 말 그대로 돈을 버리는 짓인지도 몰라.



* 달달한 것은 언제든 옳다



일이 맘먹은 대로 잘 안 풀릴 때면 꼭 단 것이 당긴다. 기왕이면 따뜻하고 부드럽기까지 했으면 좋겠다. 머그잔에 담긴 향이 좋은 커피에 부드럽고 달달한 케이크 한 조각이라면 사르르 다 잊힐 것만 같다.

막상 카페에 들어와선 와플을 골랐다. 부드러움 대신 허기를 채우는 쪽을 선택했다. 구멍마다 송송 올려진 견과류에 메이플 시럽이 뿌려진 와플을 한 조각 잘라 우유 맛이 진하게 배어있는 생크림에 푹 찍어 먹는다. 어려선 생크림이 느끼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갈수록 생크림이 맛있어지는 건 입맛의 변화인지 그저 내 인생이 써지기 때문인지.   

처음엔 커피도 카페모카나 마끼아또처럼 단 것만 마셨다. 달달한 디저트와 함께 먹기엔 조금 씁쓸한 것이 더 어울린다는 것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보통은 아메리카노가 좋지만 지금처럼 배가 살짝 든든해졌으면 싶을 땐 무조건 라테다. 커피 향과 어우러지는 진한 우유 맛, 왠지 모르게 위로받는 기분.  


엄마아빠가 독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쓸데없는 돈이 너무 많이 나간다는 거다. 같이 살면 한 번에 나가는 돈이 따로 살면 이중으로 나간다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서로의 취향을 포기하면서 살아야 했나.

엄마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럼 돈은 왜 모을까?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지 못하면서, 언젠가 기약도 없고 그려본 적 없는 어떤 미래를 대비해 모으는 돈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시 회사에 취업을 했을 때 나의 결심이기도 했다. 이젠 나가자. 독립을 하자. 그러기 위해서 다시 월급이 꼬박 나오는 안정적 일자리를 찾아간 거기도 하니까.


좋은 곳에 있고 싶다. 기왕 돈을 쓰기로 했다면, 독립을 한다면, 그래도 내가 머물고 싶어 지는 곳이어야 할 것 아닌가. 난 아파트같은 프랜차이즈가 싫고, 겨우 몸하나 누일만한 고시텔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곳도 싫고, 오늘 내가 보고 온 빌라처럼 위치가 갑이라고 허물어져가는 외관에 관리도 안 하면서 몸값 지키려는 곳도 싫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가장 큰 문제는 나에게 돈이 많지 않다는 사실. 어쨌든 결국엔 뭔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나마 있는 돈을 포기하기로 한 거지만 이건 누군가의 눈엔 돈도 아닌가 보다. 이제 또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하겠지. 내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그 하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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