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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하는 일을 돌아보며

[개짱이 다이어리] 2025.3.29의 기록

by 배짱없는 베짱이

홍대에 있는 공유 오피스에 와있다. 오늘은 밀린 일도 좀 하고, 요즘은 어떤 회사에 구인 공고가 올라와 있는지 이력서(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해야 하나 싶은 생각으로 왔는데 한 시간 반 정도 딴짓을 하다가 또 이렇게 글쓰기 창을 열고 말았다.


[요즘 하는 일]

1. 북페어에 나갈 내 책 만들기

어젯밤에서야 깨달았다. 실제본을 너무 쉽게 봤다는 걸. 실제본을 위해 따로 뽑은 20부는 팔지도 나누지도 못할 책이 됐다. 애초에 실제본이 쉬울 줄 알았냐고, 내 동생은 뭐든 쉬운 줄 알고 덥석 시작하는 내가 참 신기하다고 했다. 사실이긴 하다. 실제본을 하기로 맘먹은 것도, 그 이전에 회사를 그만두는 것도, 더 이전에 남미로 무작정 여행을 떠났던 것도, 다 이렇게 힘들 줄 몰라서 그랬던 거다. 가끔 무식한 게 약이 된다. 애초에 겁먹었으면 절대 해보지 못할 도전들을 별생각 없이 저지르고 있다.

실제본 도전이 도움이 된 건 또 하나 있다. 실제본 반, 중철 반 할 요량으로 중철 책자를 조금만 뽑았는데 다 받고 나서야 표지 인쇄파일이 잘못됐던걸 알았다. 애초에 실제본 없이 중철로만 많이 뽑았더라면 좀 아까웠을 것 같은데 부수가 적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먼저 든다. 앞으로 더 여유 있고 꼼꼼하게 작업해야겠다는 반성도 조금 하고. 사실 지금 뽑은 중철제본도 못 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완벽한 작업물을 선보이고 싶은 나와 (늘 하던 대로) 이 정도는 넘어가도 괜찮다는, 굳이 돈을 더 쓸 필요 없다는 내가 내 안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 어차피 승패는 좀 기울어 있지만 ㅎㅎ 조금 더 싸워보거라 요것들아 ㅎㅎㅎ


2. 남의 책 만들기

사실 남의 책 만들기야 회사에서 늘 하던 일이라서, 조금은 쉬울 줄 알고, 게다가 남의 책이더라도 나 또한 재미있어하는 주제라면 조금은 더 신나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작했다. 그러나 역시 쉬운 과정이 하나도 없다. 모든 상황과 사람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게 내 문제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약간의 자괴감까지 든다. 지금까지 일 다 헛해온 거 아닌가 하는. 대체 나의 전문성이란 게 있을까 싶은. 일단 방향키는 내가 잡고 흔들어야 하는데 그냥 파도가 가자는 데로 가도록 두게 된다. 그냥 사람들하고 부딪치기 싫은 게 큰 것 같기도 하고. (늘 갈등을 가능한 피하기 위해 시키는(돈 주는) 사람이 해달라는 거 가능한 다 해주는 게 나의 가장 큰 문제였다) 이제 벌써 재미도 없어서 큰일이다 ㅎ


3. 게임 만들기

여기서도 자괴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 나름 자신 있고 재미있게 작업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이 또한 어려울 줄 모르고 쉽게 도전...) 시작한 일인데 이제는 쳇GPT에게까지 밀렸다. (내겐 챗이 아니고 '쳇'이다. 쳇!) 이야기의 맥락부터 톤앤매너를 고려한 이미지 제작까지, 이제는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걸 실감했다. 게다가 애초에 기획이 부실했던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이제 와서 자꾸 드는데 이건 2. 남의 책 만들기에서 지금 내가 괴로운 부분과도 겹친다. 결국 주제에 대한 깊은 탐구와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뾰족하게 만들기에서 다 실패한 것 같아서 내 커리어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하는 거다. 그래도 그나마 잘하는 분야는 늘 이렇게 맥락을 잡고 관련성을 찾아서 이야기로 이어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거면 될 줄 알고 시작했던 일에서 줄줄이 난관에 봉착하는 중. 그래도 2와 다른 점은, 여기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할수록 이야기가 뾰족해진다는 점이다. 갈등이 아닌 문제해결 과정의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건 여전히 재미있다. 확실히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들 때 재미가 유지된다.

(별개로, 나는 1에서 모든 작업을 말하자면 아날로그 스타일로 진행했는데 앞으로 이런 노력과 시간이 (주제와 별개로)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지, 스스로 내 작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나가야 하나 싶은 고민도 생겼다. 쳇!)


4. 외주 원고 작성

요즘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벌고 있다. 사실 적극적으로 일 따내는 노력을 하지 않는 와중에 정말 감사한 일이다. 여러 가지 새로운 일을 벌이면서도 내 정체성을 이어주는 밧줄 하나 있다는 게 소중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렇게 받은 외주 원고의 마감일이 다가오는데... 오늘 그 글을 쓰겠다고 이렇게 책상을 찾아 나오기까지 한 건데... 왜 이리 손이 안 가지... 빨리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을 텐데. 잘 써야 다음 원고도 받을 수 있을 텐데라는 압박 때문인가... 프리의 삶은 역시 험난하다. 알았는데 몰랐다 ㅎㅎ 또 무모했어. 잠깐 잊었어 ㅎㅎㅎ


5. 게임 리뷰 작성

얼결에 보드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 무리에 합류했다. 특정 게임을 제공받아서 해보고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내가 콘텐츠를 올리기로 한 플랫폼(브런치)에 맞는 스타일인지도 모르겠고. (역시 또 기획력의 부족인가. 난 지금까지 무슨 일 하고 산 거지 ㅎㅎ(거진 1년이 다 되어가는 2025.12.16.주석 : 그래서 브런치와 블로그를 분리하는 작업을 최근 하기 시작했다) 그보다는 브런치에 쓰고 싶은 게임 글이 새로 생겨서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플레이어에서 크리에이터로'. 보드게임 하겠다고 모인 사람들끼리 3. 게임 만들기 하게 된 과정을 글로 남기는 거다. 한 번의 에피소드로 끝날 수 없고 연재 글이 되어야 할 텐데 중간중간 홍보성 게임 글이 들어가는 게 어색할 것 같다. 실제로 다른 일들이 치고 들어와서 그렇기도 하지만, 크리에이터 선정되고 브런치에 글 쓰는 횟수가 줄었다. 그래서 보드게임 글을 블로그로 옮겨와 볼까 생각도 했던 건데, 블로그에 보드게임 에세이는 영 안 어울린다. 블로그로 옮기면 또 남들과 비슷한 게임 소개로 변하고 말겠지. 만화로 그리는 것도 생각해 봤었는데 지금 보유한 플랫폼 중 활용할만한 적당한 공간이 없다. 스스로의 브랜딩을 위해서 빨리 좀 정리하고 잘 모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6. 취.. 취업?

커리어도 수입도 불안하다. 애초에 퇴사를 할 때도 잠깐 놀 생각으로 그만뒀던 거라 이제 슬슬 원래 자리로 돌아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가 아닌 지금 이 자리가 원래 내 자리 같다. (물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다 일하는 자신보다 쉬는 자신의 모습을 진짜 모습이라고 여길 것 같긴 하다만) 지금까지 달려온 이 트랙을 완전히 벗어날지 다시 들어갈지 이제는 진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같다.

트랙 안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은 이유가 단지 돈이라면? 가지 말아야겠지. 하지만 80%는 돈이 맞다. 나머지 20%는? 안정감. 더 많은 사람들이 달리는 트랙 안에 나도 함께 있다는 안도감. 다수의 무리 안에 일단 끼어 있으면 대충 따라 걸어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리를 벗어나면 이야기가 다르다. 혼자 맴을 돌다 가끔은 뒤로도 가고 누가 봐도 뻔히 길이 아닌 곳에 머물고 그런 모습이 너무 잘 티가 난다. 쓰다 보니 어쩌면 이것 때문인 것 같다. 개미의 탈을 벗어버리고 잃어버린 베짱이. 베짱이가 되고 싶어서 다시 개미의 탈을 쓸 생각을 하다니. 아직 도전이 부족했나.



오늘 받은 썸원의 뉴스레터 제목은 [커리어를 쌓아야 할 때 알아야 하는 잔인한 사실들]이었다. 나와는 또 멀어진 이야기를 다루는군, 싶으면서도 열어봤다가 몇몇 문장들이 마음에 와닿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프 베조스의 후계자가 직접 밝힌 커리어 조언> 요약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열정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 인생이 짧기 때문에 자신을 열정적으로 만들거나, 정말 잘하거나, 정말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합니다. 어차피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의 상당 부분은 일을 하며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보람되고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하루하루를 기분 좋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습니다.


글을 쓰세요 제발! :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쓸 수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이야기를 재창조할 수 있습니다. 글로 쓰지 않은 생각이나 마음이나 비전은 그냥 붕붕 떠나는 것에 불과하고, 그런 생각은 수정할 수 없습니다. 수정하기도 전에 잊혀져 버리니까요. 저는 아마존에서 일을 하기 전에 축구팀 코치, 골프 매장 점원 등등 여러 일을 전전했습니다. 인생에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순간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하다 보면,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진정으로 행복한지를 알 수 있거든요. 대신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기 위해 글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글로 쓰면 당신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뿐 아니라, 수정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어떤 일을 하든,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계속 글로 써내려가세요.

-제프 베조스의 후계자가 직접 밝힌 커리어 조언 일부, 썸원의 Summary&Edit에서 -



핑계 같지만, 이 레터를 읽다가 글을 먼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블로그를 열었다. 이렇게 두서없이 글을 쓰다 보면 '그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을까. 생각할수록 '자신을 열정적으로 만들거나' '정말 즐거운 일'은 다 트랙 밖에 있는 것 같은데, 또다시 트랙 안으로 들어가려는 이유는 뭘까? 트랙 안에서 내가 아직 못 찾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그 가운데 '정말 잘하거나'가 빠져서 그런 걸까.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내가 나도 괴롭다. 이 글을 발행하는 것도 실은 조금 부끄럽다 ㅎㅎ 아무튼 그래도 주절거리지 않으면 생각이 잘 정리되지가 않아서. 여전히 정리는 잘 안 되지만, 써놓고 나중에 또 읽으면 조금씩 변해가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까 하고. (7년 전에도 그래놓고 여전했지만.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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