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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l 28. 2018

22. 우리에게 적당한 거리는 얼마일까?

2017.5.7. 우마우아까, 아르헨티나(D +90)

혼자 떠난 여행이었고 계속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의도치 않게 대부분의 여정에 동행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무엇보다 말이 잘 통하고, 살아온 문화나 행동 방식이 비슷했으니 상대적으로 입맛이나 취향, 생각이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가끔은 외국인들과 다닐 때보다 힘들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만난 사람들과 단지 여정이 같다는 이유로 낯선 곳에서 같이 다닌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원래 여행은 정말 친한 친구들이나 연인, 가족끼리 가도 싸운다지 않나.




여러 가지 면에서 아르헨티나를 함께했던 나의 두번째 동행은 조금 독특한 경우였다. 모두 남미에 와서 처음 만난 사이었지만 본격적이 동행이 되기 전에 서로에 대해 조금씩이나마 알아가는 시간이 있었고, 함께 다니면 좋겠다는 마음에 굳이 서로의 일정을 조절해가며 다시 만난 사이였다. 이미 서로가 편해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같이 다니는 날 수가 길어지면서 당연한 과정이었을까, 마냥 좋을 것 같던 그 길은 가끔 생각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건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하지만 대놓고 티까지 내버릴 정도로 기분이 상해버렸다. 상대가 툭 내뱉은 말에 혼자 상처를 받아 뜬금없이 마을 산책을 하겠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이 좁은 동네엔 갈 데가 마땅치 않고, 주말이라 아직 환전을 못해 현금조차 한 푼도 없었다. 문득 마을 중간의 광장에서 시작하는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면 그 너머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는데 그 모습이 꽤나 볼만하다는 말이 기억나기에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넓은 돌계단은 양쪽 가장자리에 기념품과 생필품의 경계가 모호한 물건들을 잔뜩 늘어놓고 파는 천막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천막 뒤편으론 거칠고 커다란 선인장들이 대중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낯선 동네. 예쁘고 오래 있기 좋다더니 내 눈엔 황량하기 그지없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쓰고 싶어 하나하나 사지도 못할 물건들을 찬찬히 구경하며 계단을 올랐다. 계단 꼭대기에는 역동적인 모습의 사람들이 엉켜있는 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이 지역이 19~20세기 남미의 독립전쟁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더니 아마도 그런 역사의 흔적인 모양이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을 걸고 있었을 텐데. 무심코 대답을 이어나가다 나는 그의 물건을 사는 대신 친구가 됐다.  


우마우아까 마을 계단 끝에서 바라본 풍경.
마누엘의 목걸이 좌판.
마누엘 그리고 개미와 나눠먹은 노란 사과.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그 계단 꼭대기에서 목걸이 등 직접 만든 장신구를 만들어 파는 마누엘은 진한 쌍꺼풀에 파란 눈이 정말 외국인이구나 느껴지는 아저씨였다. 어쩌면 그때 내 기분이 처져 있었기에 더 쉽게 우리가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곳을 통틀어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데라곤 방금 삐져서 나와버린 동행들 밖에 없다는 사실에 더 의기소침 해 있었으니까.

역시나 우리는 잘 말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마누엘은 열심히 잉카를 타완틴수유(Tawantinsuyu)라고 부른다는 것, 그 제국은 4방위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중 코야수유(Qullasuyu)라고 불리는 지역에 이곳 우마우아까가 속해 있다는 것 등을 설명해줬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서 지금 팔고 있는 잉카 크루즈(십자가)가 바로 그런 의미들을 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건 그냥 호객 행위 아닌가. 그러나 가지고 있는 현금이 하나도 없는 나는 이번에는 정말로 뽀브레 코리아나. 마누엘은 물건도 사지 않고 옆에 앉은 내게 자신의 과자와 사과를 나누어줬다. 이 곳은 고산지대라 코카잎이 도움이 된다는 말에 코카차는 마셔봤지만 잎을 씹어본 적은 없다 대답했더니 그는 대뜸 본인의 목걸이 좌판을 내게 맡기곤 성큼 계단을 내려가 마을 시장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런 모습. 대체 이들은 뭘 믿고 오늘 처음 본 외국인에게 호의를 베풀고 본인의 장사 밑천까지 맡기고 사라지는가. 남미는 어디에서나 소지품을 주의하라더니 말이다.  

사라졌던 마누엘은 어디선가 코카잎을 한 줌 사가지고 돌아왔다. 맨입으로 씹어 먹어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쓰기도 하고 나중엔 입안이 마비되는 것 같은 기분이 영 좋지 않아 갖은 인상을 다 쓰다가 한 선인장 밑에 뱉어버렸다. 코카잎을 버리고 물로 입을 헹구고 하는 사이에 먹던 사과를 잠깐 바닥에 내려놨는데 그 사이에 개미가 달라붙었다. 그는 상관없다고, 개미도 먹을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마누엘, 개미는 같이 음식을 나눠먹었다. 

사이 한 무리의 관광객이 계단을 올라왔고 그 중 2명이 목걸이를 샀다. 돈을 받은 뒤 마치 동료라도 되는 양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그 기쁨을 나누는데, 그 별것 아닌 일이 괜히 즐거웠다. 그렇게 기분이 풀려버려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다시 숙소에 돌아갔음은 물론이다. 여전히 모래바람 날리는 한적한 거리에 내려앉은 햇살이 이번에는 참 평화로워 보였다.


숙소 근처. 해가 저물고 노란 빛이 들어오면 공기가 가을같아지던, 황량해 보이지만 정말 좋아했던 우마우아까의 풍경.


슬프게도 때로는 너무 소통이 잘 되는 상황이 우리를 외려 힘들게 한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그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너무 잘 아니까,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그 생각이 보이니까, 여행에서 내가 상처를 받았던 것은 주로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지쳐버린 내 맘을 달래준 것은 오히려 소통이 잘 되지 않는 누군가들이었다.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우리는 말만으로 이해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기에 서로를 더 오래 응시해야 했고, 애써 기분을 짐작하며 행동을 했다. 아니, 하지만 그것보다 큰 건 어쩌면 여기에서만 보고 헤어져도 될 사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서로를 상처 줄 만큼이나 깊은 마음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었다. 만약 내가 이후에 마누엘하고 여행을 다녔더라면 서로 말이 안 통하고 의미도 알 수 없어 매일이 속 터지는 날의 연속이었을 거다.  

관계에 있어서 참 어려운 것 중에 하나가 적절한 거리두기다. 하루 종일 함께 있으면서 매번 의견도 조율해야 하는 사람들, 혹은 어제오늘 정도로 잠시 스쳐가는 인연들과의 연속인 여행이란 데서 그건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 가끔 우리는 너무 가까웠고, 그럼에도 또 너무 멀었다. 그 과정은 인연을 그대로 헤어지게도 만들지만 때로는 서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남아서 나와 연결이 되어 있는 건 그때 조금 나를 힘들게 했어도 결국 그때 함께 있던 그 동행들이다. 언젠가 툭 터놓고 서운했던 모든 것을 서로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서로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지금도 언제봐도 편한 친구들로 남아있다.

물론 마누엘과는 우마우아까에 머무는 동안 종종 만났다. 고작 열흘 있던 낯선 도시에서, 내가 계단을 올라가면 나를 알고 인사를 하고 말 걸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그는 내 동행들을 따로 마주쳤을 때도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아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고 한다. 

혼자일지라도 오로지 혼자인 날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가까운 사이일지라도 적절한 거리라는 것은 필요하다. 일상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그것을 그 무렵에서야, 여행에서도 그 긴 시간을 보낸 뒤에야 어렴풋이 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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