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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Nov 11. 2018

39. 로컬이 대체 뭐길래

2017.7.10. 뜨루히요-완차코, 페루(D + 154)

페루의 북쪽에는 밀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해안가를 따라 적도 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따사롭게 쏟아지는 햇볕, 서핑의 초심자들이 즐기기 딱 적당한 부드러운 파도, 긴 모래사장, 맛있는 맥주와 해산물이 잔뜩 차려진 저녁 식탁, 마치 동남아 해변가의 어느 휴양지에라도 온 것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이 매일이 유유자적 평온한 축제일 것 같은 사진 속 해안가의 풍경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다시 밀림을 향하려던 생각을 접고 바닷가로 발길을 돌렸다.




리마의 북쪽으로 해안을 따라 버스를 타고 9시간 정도 올라가면 뜨루히요(Trujillo)라는 도시에 닿는다. 페루 북부의 주요도시인 이곳은 과거 사막 지대안에서 유일하게 물 공급이 가능했던 곳으로, 잉카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하기 전부터 다양한 고대 문명이 꽃피웠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 머물면서 여유를 즐기다가 모체(Moche)와 치무(Chimu) 문명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된 잉카 이전 시대 문명의 흔적을 둘러보는 코스는 정말 완벽해보였다. 심지어 이 도시는 크고 넓은 아르마스 광장과 바둑판식으로 쭉쭉 뻗은 도로, 커다란 쇼핑몰과 공항까지 갖추었건만 그럼에도 사람이 많지 않아 어딜가나 밝고 한적한 분위기를 풍겼다.  


뜨루히요 시내. 넓게 뻗은 거리마다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숙소는 뜨루히요 중심가에서 택시로 10~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해안가의 작은 마을, 완차코(Huanchaco)에 잡았다. 이곳은 페루, 아니 남미에서 알아주는 '서핑 스팟'이기도 했다.

걸어서 5분이면 바닷가에 가닿는 숙소에서는 방에서 일어나기만 해도 크게 뚫려있는 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파도가 보였고 그곳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핑보드를 든 사람들이 일어났다 누웠다 하며 파도를 즐기고 있었다.



다시 재정비를 하고 떠나는 길엔 리마의 숙소에서 만난 두 명의 새로운 동행이 곁에 있었다. 나와 같은 장기여행자 신세로 대기업을 때려치고 여행길에 올랐다는 R과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남미는 처음, 이 대륙에 도착한지 이제 갓 삼일을 넘긴 서핑매니아 K. R은 나처럼 목적없이 막연하게 이제 북쪽을 가봐야겠다던 중이었고, K 역시 무계획, 보통은 아래쪽의 쿠스코나 볼리비아 소금사막을 향해 갔어야 할텐데 서핑 포인트가 있다는 말에 우리를 따라 북쪽으로 온 터였다.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 든 것은 리마에서 버스표를 살 때였다. 나보다 어리고(젊고), 덩치도 좋고, 건강해보이는 남자녀석들이, 초보 여행자들이나 타는 크고 이름있고 비싸고 좋은 버스만을 고집하는 것이다. 16시간 거리에 길도 험하기로 유명한 쿠스코-리마 구간을 70솔(한화 약 2만 6천원 내외)에 달려온 난데, 고작 9시간 남짓 길도 해안가를 따라 쭉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뜨루히요 행 버스삯으로 무려 118솔(한화 약 4만 3천원 내외)이라니.

예상치 못했던 병원비로 생각보다 큰 돈이 나갔고, 그렇게 더 빠듯해진 예산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나는 당혹스러웠지만 짐짓 표현을 아꼈다. 버스만이 아니라 뭔가를 먹을때도, 살때도, 이들은 충분히 아낄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도 고려하지 않고 그냥 펑펑 써댔다. 남미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있는 유경험자이자 이 동행의 맏이로써, 현지인의 삶을 파고드는 진짜 배낭여행의 묘미가 어떤 것인지 알려주어야겠다고, 앞으로 내가 이들을 이끌어가보겠노라 다짐을 했다.



뜨루히요 인근 남미의 숨어있는 서핑 스팟이기도 한 해안가의 작은 도시 완차코.


완차코에 도착해 처음 묵은 숙소는 누가봐도 '서핑하는 사람들의 아지트' 같아 보이는 자유분방 후줄근한 느낌의 호스텔이었다. 숙박비는 심지어 인당 15솔. 사람이 없어서 4인실을 우리 세명이서만 문닫고 사용할 수 있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괜찮아 하길래 더 알아보지 않고 콜을 외쳤는데, 해가 지기 무섭게 이곳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했다. 어쩌면 여긴 사실 사람들의 숙소를 위장한 귀뚜라미들의 보금자리였는지도 모른다.(차마 그것들이 곱등이라고 믿고 싶진 않다. 정녕 귀뚜라미 일것이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려고 꺼내든 냄비에서 귀뚜라미가 나왔다. 마시던 맥주잔에도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귀뚜라미가 다이빙을 하더니 빠졌다. 방문을 꽁꽁 잠가 두었건만 방에도 귀뚜라미가 들어와서 우리는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불안 불안해하다 겨우 침대에 누웠다. 호스텔 주인 리사는 바닷가는 원래 이런 곳이라며 웃어 넘겼다.

우리 역시 서핑을 마치고 호스텔에 앞마당에 모인듯한 사람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며 나름 즐거운 하루를 보냈지만 그 하룻밤을 마지막으로 숙소는 옮겼다. 남미는 원래 이렇게 ‘헝그리’한 곳이냐며 시종 놀라워하던 K가 나서서 좋은 숙소를 찾아다녔고, 그 중에서 내가 시설 대비 가격 등이 적절한 곳을 추려내며 결국 괜찮은 숙소를 찾아냈다. 숙박비는 두 배 정도였지만 바다를 향한 벽면에는 커다란 통 유리창에, 외부와 확실하게 분리된 실내엔 침구도 깔끔하고 주방도 여느 가정집 못지 않았고 화장실은 넓고 깨끗했다.


첫날 묵었던 숙소의 풍경과 맥주잔에 빠져버린 그것....
두번째 숙소 방에서 창밖으로 보이던 바닷가의 풍경


하염없이 바닷가를 보고 서핑체험을 해보는 것도 재밋는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시내에 나가는 걸  포기할 순 없다. 장을 보기 좋은 큰 마트도, 치무 문명을 대표하는 유적지인 찬찬(chan chan)도 트루히요 시내에서 더 들리기 쉬운 위치에 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한 버스표도 사야했고, 이래저래 하루 한번 정도는 계속 시내를 나갔다.

그 무렵쯤부터 공금을 모아 쓰기 시작했지만, 셋이 함께 타면서도 나는 택시가 탐탁치 않았다. 물론 적당한 택시는 괜찮지만 가끔은 버스로 이동하는게 더 나은길도 있다. 그런데 어딘가를 갈때마다 택시만 생각하는 애들이 조금 답답했던 것 같다. 다행이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자는 나의 의견에 선선이 따라왔다. 물론 시내로 나가는 길엔 버스가 괜찮은 선택이었다.

 

서울의 명동이나 종로처럼, 일본 오사카의 도톤보리 인근처럼, 터키 이스탄불의 술탄 아흐멧 광장 주변처럼, 여행지는 걷다보면 걷는대로 계속 걸어서 이어지는 길이 나오게 마련이다. 그렇게 하염없이 계속 걷게되는데, 어느새 정신차리고 나면 다리에 힘은 풀려있고 우리는 꽤 많은 거리를 걸었구나, 싶은 그런 길들 말이다. 리마보다 여유롭고 차분한 느낌의 거리, 쿠스코보다 크고 알록달록한 감각적인 건물들이 펼쳐진 트루히요의 시내 역시 그랬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걷다보니 어느새 처음 버스를 타고 내렸던 곳보다 꽤 먼 곳까지 와버렸다. 심지어 숙소에서 먹자고 몇가지 음식과 술 등을 산것도 한보따리였는데, 나는 여기서 하지 말아야 할 고집을 부렸다. 돌아가는 길도 버스를 타고 가자고 했다. 그때 깨달았어야 하는데, 어쩌면 나야말로 로컬을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되었던 아닌지.  

그러나 조금만 가면 나올 것 같던 정류장이 왜인지 보이지 않는다. 지나가던 사람에게 물어보자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겠다는데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따라 어디론가 하염없이 끌고간다. 저 사람들 혹시 어디 이상한데로 우리 데려가는거 아냐? 의심가득 품고 그들을 따라 한참만에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미 힘은 빠질 때로 빠져버렸고, 해질무렵 버스에는 출퇴근인지 통학인지 알수없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버스가 거칠게 코너를 돌때마다, 급정거를 했다가 다시 출발을 할때마다, 정류장에서 사람들이 타고 내릴 때마다, 이리저리 치이면서 무어라 불평도 못하는 두 동행들을 보는 내내 얼마나 미안하고 또 미안했던지. 심지어 택시로 15분이면 도착할 거리는 버스를 타고 30분도 더 넘게 걸렸다.

생각해보면 R은 몸이 안 좋아져서 리마에 길게 머물다 다시 출발하던 길이었고, K는 남미에 온지 이제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이 선택하려는 조금 편한 길을 나는 불편해하며 여행의 초보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던 것 아닐까. 장기여행의 매너리즘에 빠졌던걸까, 나야말로 언제부턴가 로컬 그리고 한정된 예산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답답한 생각을 하고 있는건 아니었는지.


아직도 이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여기까지 왔으면 이런 경험도 한번 해봐야지”라며 모든 과정들을 웃어 넘겼다. 그러나 정작 나는 로컬을 경험해야 한다고 버스를 탄것임에도 피곤해하는 아이들을 신경쓰느라 버스를 가득 채운 현지인들의 퇴근길 표정이라든가 차창밖으로 어둠이 내리는 도시 풍경 따위는 하나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우리는 조금씩 서로에게 맞추어갔다. 나는 조금 더 즐겨야 할 때 즐기는 법을, 그들은 조금 더 일상처럼 여행을 느끼는 법을. 지금껏 내 여행길과 꽤나 성격이 다른듯한 이 도시를, 지금껏 만난 동행들 중 가장 나와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한 이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을 또 함께 다녔다. 지금껏 겪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흠뻑 즐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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