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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Oct 13. 2018

38. 멈출까, 돌아갈까, 아니면 조금만 더 가볼까?

2018.7.3. 리마, 페루(D +147)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준비하던 그때, 하루에도 정말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그중엔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그때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등에 관한 것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걱정 많은 사람 특유의 사서 하는 걱정들 말이다. 그럼에도 이 모든 걸 실행하게 한 원동력을 굳이 말해보자면 그건 죽음 같은 것이었다. 사람에게는 무조건 찾아오는, 그러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는 모르는 죽음. 그러니 남미는 너무 위험하고, 소매치기나 총 든 사람, 강도도 있고, 또 지형이 험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사람에게 “밤낮으로 화사에서 일하다 죽는 것보단 일찍 죽어도 하고 싶던 여행을 하다 죽는 게 행복할 거야”라고 응수를 했다. 어쨌든 그건 정말로 나를 움직이게 한 힘이었다. 내 미래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사실.




죽을뻔한 경험을 말하려는 건 아니다. 어쩌면 눈치가 없어서 못 깨달았는지 여행 내내 한 번도 그런 비슷한 생각이 드는 순간은 없었다. 그거에 비하자면 이건 정말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다. 겨우 이가 하나 부러졌으니 말이다.


와누꼬를 떠나오던 날, 흐린 날씨 였는데 선명한 무지개가 떴다.


원래대로라면 와누꼬에서 미겔과 또 그의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또 북쪽으로, 밀림의 정수라는 이키토스라든가 혹은 잉카의 마지막 황제 아타왈파와 스페인 정복자인 피사로가 만난 역사적 장소인 카하마르카라든가 그렇게 계속됐어야 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한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길에서 우뚝 멈춰 서고 말았고, 결국엔 망설이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온 길로 되돌아가 버렸다.

 

미겔은 자기가 이용하는 치과를 소개하여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에서 말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내 입안을 맡길 자신이 없었다. 며칠 더 머물다 가라는 그의 요청을 뒤로하고 리마행 밤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래도 수도로 돌아가는 게 도시가 큰 만큼 병원도 많을 테고, 여차하면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쉬울 것이었다. 리마까지는 또 꼬박 하룻밤이다. 어제부터 도통 맘껏 먹지도, 웃지도 못했다. 넘쳐흐르던 즐거움과 낯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머릿속에는 온갖 걱정과 근심만이 가득 들어찼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참아왔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튀어나왔다.


돌아온 리마. 어느새 3번째 방문이었는데, 이때야 처음 이 도시에 짐을 풀고 그것도 모자라 장기체류에 들어갔다.


사실 아팠다면 차라리 감기라든가 아니면 남들 다 겪는 고산병이라도 왔다든가, 이제껏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이건 대체 아픈 거라고 말할 수는 있는 건가, 그냥 문제가 발생한 건가. 다행히 거울을 보고 빠진 자리에 부러진 이를 잘 끼워 맞추면 또 붙었다. 말을 할 때 조용조용 천천히 말을 하고, 식사를 할 때도 그 이를 피해서 조심조심 씹으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고쳐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왠지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는 없는 이 상황. 차라리 부러질 거라면 눈에 보이는 팔이나 다리가 좋았을 거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그러면 나 아프다고 울고불고 소문이나 낼 수 있었을 테니.


현지에서 병원을 가는 일에 망설였던 것은 솔직히 말하면 두려움이 컸다. 일단 말이 통하지 않고, 또 보험도 안될 테니 요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이곳은 일반적으로 우리나라보다 발전이 덜 되었다고 여겨지는 곳. 잘못될까 봐 무서웠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치과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보고, 리마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 몇몇에게도 내 상황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이곳에서 오래 일을 하신 분이 페루는 치과 컨디션이 좋은 편이니 괜찮을 거라는 이야길 해주었고, 이곳에서 다시 만난 M은 여행을 하면서 누적되는 몸의 피로가 사람마다 몸에 약한 부분에서 다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뿐이다, 네가 늘 즐거워했지만 그동안 몸은 지쳤던 걸거다 라고 위로해줬다. 장기 여행자라면 한 번쯤 만나게 될 일일 테니 치료를 받고 좀 쉬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가우디를 연상시키는 리마의 '사랑의 공원'. 이 아름다운 곳에서도 사랑을 못느끼고 걱정만 하며 돌아다녔다. 그러고보니 아픈 와중에도 계속 리마를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다.


이런저런 상황이 현지에서 병원을 가고 치료를 하고 조금 쉬었다 가면 금방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었는데 자꾸만 마음속으로 한국으로 돌아갈 날짜를 가늠해보는 내가 있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운이 좋기도 했다. 아픈 적도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도 나쁜 사람을 만나 위기에 처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여행을 떠나겠다던 난데, 지금 벌어진 이 작은 일 하나로, 아프기보다도 무서워서 이 뒤에 펼쳐질 모든 미지의 세계를 버리고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던 소심하고 걱정 많은 나를 알아차린 순간 희한하게도 또 여기서 버텨볼 용기가 생겼다. 무엇보다도 여기도 다 이가 아프고 가끔은 빠지기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 아닌가. 그렇게 처음으로 여행 중에 병원을 갔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소개받아간 그곳이 엉터리라 한국에 돌아와 다시 치료를 받아야 했지만, 당시엔 잘 마무리됐다. 입을 벌려 맘껏 웃고, 음식도 양껏 먹을 수 있었다. 다시 북쪽으로 갈 수 있게 됐다. 늘 달라지고 싶었던 그 모습으로의 변화가 그제야 조금 찾아왔던 것 같다. 그때 일기에 이렇게 써놓았더랬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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