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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Oct 06. 2018

37. 그 친구가 선물해준 특별한 밀림의 추억

2018.6.30. 팅고마리아, 페루(D + 144)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거의 고립되어 있던 곳, '아마조니아의 문'이라는 별칭을 가진 곳, 지금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팅고 마리아(Tingo maria). 아마존의 가장자리에서 밀림으로 이어지는 이 곳은 오랫동안 사람 손이 닿지 않은 채 산속에 고립되어 있었기에 순수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 순수한 자연을 경험해보고 싶어 갔던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자연보다는 함께 갔던 학생들과의 여정이 더 생생하다. 그러고 보니 대학교 답사는 거의 10년 만이다. 무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학생들을 쫓아서 말이다.  




미겔의 학교 사람들과 합류한 그 직후의 일이다. 열대기후로 넘어오는 통에 온 몸이 땀에 젖어 씻어야 할 것 같았다. 미겔이 같이 씻자며 나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차라리 이놈이 흑심을 품고 음침한 곳으로 향했다면 소리라도 지르며 도망쳐 나왔을 텐데. 그가 데려간 곳은 사방이 탁 트인 곳이었다. 트여도 너무 트인 곳. 그곳은 강가였다.

남학생이며 여학생, 아까 인사를 나눈 교수님까지 바지를 걷어올리고 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있었다. 옷을 입은 채로 온 몸을 다 담가버리거나, 그러지 않더라도 티가 안 나게 잘 가려가며 구석구석 씻는 것 같았다. 빨래를 같이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물은 흙빛이었고, 개중에는 비누나 샴푸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인근에 다른 샤워시설이 없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없었지만 온몸이 끈적끈적, 도저히 안 씻고 버틸 수는 없었다. 팔 다리, 목 정도에 겨우 물을 축이고 몸을 숙여 머리까지 감고 나왔다. 저 흙빛 강에서 온 몸을 깨끗이 씻은 이 사람들과 차마 몸을 다 담그지 못하고 보이는 곳만 씻고 나온 나. 과연 누가 더 깨끗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러나 텐트 치고 들어가야 한다는 밀림을 향하면서 어떻게 씻을지 생각조차 못해봤다니, 이건 완벽한 나의 패배다.



아침부터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구덩이에 빠진 버스를 꺼내기 위해 몰려든 남학생들.


이튿날은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우리가 가려는 곳은 버스를 타고 더 깊이 들어가야 했다. 버스는 두 대가 있었는데, 비교를 하자면 한 대는 비교적 깨끗하니 우리나라의 고속버스 같은 느낌, 또 하나는 남미에서 가끔 타던 덜덜거리는 로컬버스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로컬버스는 갑자기 구덩이에 빠져 올라오지 못하는 바람에 모든 남학생들이 뒤에 달라붙어 밀어야 했다.

아마 이곳에 떠나올 때 어떤 버스를 탈지 골라서 학생들로부터 돈도 다르게 걷은 모양이다. 이곳에선 사람들이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움츠러들지 않는다고, 그러니 좀 더 자유롭고 열려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 적 있었는데. 어쩌면 티 나는 격차가 더 큰 곳이기에 가난이 더 잘 보이는 곳인 건 아니었을까. 미겔은 말하자면 늘 뽀브레 페루아노. 내 자리를 어떻게 마련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따라 로컬버스에 몸을 실었다.


저 뒷모습 다 학생들이다. 복장도 여유로움도 밀림이나 산에는 이미 익숙한 듯한 포스.
울창한 숲.
진짜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의 숲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곧 사람 키의 열 배는 훌쩍 넘는 듯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나타났다. 고대 원시 밀림이 이런 모습이었을까, 우리는 이제 진짜로 거인국을 탐험하는 소인들 같아졌다. 그러나 모두들 이런 장면이 낯설지 않은 건지 학생들은 눈 앞의 거대한 풍경보다 나의 존재를 더 신기해하는 것 같다. 생각보다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 놀랐는데 역시나 K-POP과 드라마의 힘이 큰 모양이다. 누군가 한국에 그렇게 잘생긴 남자들이 많은데 어쩌자고 저런 페루아노를 쫓아 여기까지 왔냐고 진심으로 놀라서 묻기도 했다. 연예와 연애, 역시 지구 반대편에서도 그 또래 친구들의 관심사는 비슷하다.

트레킹을 싫어 하지만 그래도 산을 못 타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시작하니 정말 쉽지가 않다. 두 번이나 제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실 어디가 길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수풀을 헤치며 앞사람만 따라갈 뿐. 가까이에 물이라도 있는 건지 언제부턴가 이끼도 많고 흙은 다 젖어 있었는데, 30~40분 정도 산을 타다 보니 거대한 폭포가 나타났다. 오토롱고 폭포(Catarata de Otorongo), 오늘의 목적지다.


대학 답사라기엔 너무 험난대보이는 여정.



그날은 그 폭포 주변의 숲의 생태를 직접 살펴보는 날이었다. (아마도) 기후와 토양, 환경 등에 따른 식생 등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이 한참 이어졌다.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가득하다. 나비나 이름 모를 곤충들도 많은데 죄다 평소 보던 것들에 2배는 더 큰 것 같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나도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마냥 아쉽기만 한데, 그 와중에도 설명 안 듣고 딴짓하는 학생들은 꼭 있다. 한 학생은 곤충을 보고 신기해하고 놀라는 나를 보더니 어디선가 자꾸 그런 것을 가져와서 보여주며 나는 알아듣지도 못할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산에서 먹은 점심은 넓적한 이파리에 싼 밥이었다. 앉아 쉴 수 있는 나무 의자는커녕 돗자리 같은 것도 없어 대충 흙바닥이나 비어져 나온 나무 뿌리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심지어 수저도 나눠주지 않아서 전날 받은 것을 씻어서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손으로 먹을 뻔했다. 이들은 산에 올 때 이렇게 쓰레기로 버려질 수 있는 것들을 최소화한다고 한다. 밥을 다 먹은 잎은 그대로 땅에 버려도 금방 썩어서 분해되거나 양분이 될터였다.


대롱대롱 매달린 줄기 바나나도, 카카오 열매도 처음봤다.


그 길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는지 돌아오는 길엔 어디선가 나타난 아줌마 아저씨들이 자꾸 학생들을 불러 세워 먹을걸 줬다. 만화에서만 봤던 것 같은 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린 바나나 같은 것들 말이다. 이 동네 사람들인 모양인데, 그렇게 주는 과일들이 꼭 나무에서 갓 따온 모양새다. 알고 보니 길 양쪽을 뒤덮고 있던 나무들에 온통 바나나와 카카오 같은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다.

처음으로 카카오 열매를 봤다. 앞서 가던 누군가가 열매를 반으로 쪼개서 나눠줬는데, 씨가 커다란 하얀색 과육은 초콜릿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지만 꽤나 달았다. 실제로 초콜릿은 과육이 아닌 씨를 말리고 으깨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이곳은 다시 미겔의 동네인 와누꼬의 풍경.


답사는 다음날까지도 계속됐다. 우리는 식물원을 갔고 동물원도 갔다. 식물원은 또 다른 밀림에 들어온 듯 멋있었지만, 동물원은 좁고 깨끗하지도 않은 시설에 동물을 가둬둔 것이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아 평소라면 보기 힘들 투칸이나 구아띠 등 낯선 동물들이 많을 텐데도 잘 둘러보지 못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팅고마리아 지역은 주요 카카오 산지로 남미 최초의 공정무역 초콜릿을 생산하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 생산자 조합이 우리나라 아름다운 가게 등과 관계를 가지고 왕래도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 국립공원을 돌아볼 수 있는 투어도 맘만 먹으면 찾아서 더 편하게 에메랄드 빛 강과 동굴 등의 다양한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니까 혼자서도 맘먹고 미리 준비했다면 더 알차고 좋은 여행을 할 수 있었다는 거다.

미겔을 따라 나섰던건 기왕에 기회가 왔을 때 좀 더 편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고, 현지인을 따라간다니 남들은 하지 못하는 경험을 하고 싶은 욕심이 반이었다. 생각만큼 이 경험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지만, 스스로 준비를 충분히 하지 못해서였는지 그만큼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고 실은 조금 힘들기도 했다. 결국 강물에 훅 들어가서 온 몸을 시원하게 씻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신기한 건 이제 나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학생들은 아직도 가끔씩 미겔에게 내 안부를 묻는다고 한다. (설마 진짜 여자친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겠지?) 아 물론 미겔과 더 깊은 관계가 된 것도 맞다. 그냥 스쳐 지나갈 뻔한 인연에서, 이제는 서로 자라온 시간, 가족, 생활 등의 이야기를 알게 된 진짜 친구로 발전했달까. 미겔은 지금도 가끔씩 와누꼬의 풍경이나, 그가 동네의 도서관 등에서 봉사하는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보내오곤 한다. 언젠가 다시 그곳을 간다면 그때는 조금 더 푸욱- 그들의 삶에 빠져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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