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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Sep 29. 2018

36. 페루의 자메이카, 밀림으로 가는 길

2017.6.29.  와누꼬, 페루(D +143)

지금부터는 어디에도 잘 나오지 않는 곳에 대한 이야기다. "Bienvenido! Aqui es Jameica de Peru!(잘 왔어, 이곳은 페루의 자메이카야)"라고 미겔이 두 팔을 번쩍 들어 환호하며 나를 맞았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그땐 참 무모했다. 아직도 보지 못한 페루의 또 다른 모습들이 궁금해서 덜컥 그를 따라나선 것이다. 페루의 북쪽에 숨어있다는 아름다운 밀림을 보기 위해서. 그 실상을 알지도 못한 채.

 



리마에서 시외버스를 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서울의 고속터미널이나 남부터미널처럼 이곳저곳을 가는 버스가 한 터미널에 모여있는 것이 아니고 버스 회사 혹은 목적지에 따라 몇 개의 작은 터미널이 거리의 상점처럼 줄지어 서있다.

M은 와라즈(Huaraz)로, 나는 와누꼬(Huanuco)로 둘 다 방향은 북쪽이었지만 목적지가 다른 만큼 터미널도 떨어져 있었다. 먼저 출발하는 나를 M이 배웅해줬고, 그렇게 약 두 달을 함께 했던 마지막 동행과 다시 헤어졌다. 어두운 밤을 달리는 야간 버스. 이제 다시 혼자된 내 앞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 것인가.


또 다시 야간버스. 이제는 익숙하다. 버스 회사를 가릴 것도 없이 와누꼬로 가는 터미널을 찾아가 2층버스의 세미까마 좌석을 30솔에 예약했다.



이 글을 계속 읽어 온 사람이라면 기억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겐 여행 와서 사귄 페루 친구가 하나 있다. 여행의 아주 초반, 쿠스코에서 만난 미겔. 그냥 스쳐가는 인연이란 생각에 서툴게 그 녀석을 보내버렸지만 우리는 SNS로 종종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연락을 이어갔다. 마침내 다시 페루로 돌아왔다는 내게 그렇다면 이번엔 네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페루도 봐야 하지 않겠냐고, 아름다운 밀림에 갈 수 있도록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와누꼬(Huanuco). 리마에서 버스를 타고 약 10~12시간. '아마존의 낮은 지대로 나가는 강기슭에 위치한' 도시라는 설명이 붙어있는 곳인걸 보니 밀림의 시작쯤이나 될까. 그리고 이곳이 바로 미겔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마치 몇십 년은 알고 지내던 사이인 것처럼 터미널에서 뜨거운 재회의 포옹을 나눈 우리는, 나의 여독(?)을 풀 새도 없이 급하게 다시 움직여야 했다. 이미 미겔의 친구들이 밀림으로 출발을 했으니 빨리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했다. 캐리어는 잠시 그의 집에 맡기고 나는 단출하게 옷가지만 챙긴 배낭을 들쳐멨다. 아침의 햇살이 좋았기 때문일까, 처음 보는 와누코라는 도시는 바람도 햇살도 그림 같고 거리는 깨끗한 아름다운 전원도시처럼 느껴졌다.



아침. 한산한 풍경의 와누꼬와의 첫 만남.

  

툭툭과 콜렉티보를 번갈아 타고 이동을 하는 동안 날씨는 어느새 한 여름에 가까워졌다. 어젯밤 리마만 기억하더라도 추워서 경량 패딩을 입고 버스에 올랐던 것 같은데. 한반도 면적의 6배. 남미에서 3번째로 큰 나라라는 페루는 크기도 그렇지만 땅의 지형적인 요인 때문에 극단적이고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일단 안데스 산맥의 산악지대. 여행하는 동안 내가 주로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다. 낮에는 햇빛이 강렬하지만 밤에는 춥고, 또 건조한 곳. 쿠스코가 대표적인 도시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해안지대는 비교적 온난한 사막형 건조기후로, 대체로 덥고 사계절 내내 크게 추워지지 않는다. 페루의 서쪽 면은 모두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데, 이렇게 바다와 가까운 곳의 도시인 수도 리마, 내가 초반에 들렸던 사막의 와카치나, 이후에 들리게 될 뜨루히요, 망코라 등이 이곳에 속한다. 그리고 소위 밀림이라고 부르는 삼림지대 '셀바'가 있다. 덥고 습한 열대성 기후. 우리에게 익숙한 아마존이 시작되는 곳. 대표적인 도시로 북쪽 깊숙이에 자리한 이키토스가 있다.


산넘고 산건너, 밀림으로 가는 길.


실제로 페루 전체 국토의 약 60%가 바로 이 셀바에 속한다고 한다. 미겔이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이후 나의 목적지는 북쪽의 이 밀림 지대가 될 것이었다. 딱히 자연이나 동식물, 밀림, 태고의 신비 같은 것에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다. 그저 2개월 가까이 페루에 머물면서 셀바를 체험하지 않는다면 과연 돌아가서 페루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피부가 따갑도록 쏟아지는 햇볕, 가만히 있어도 흘러내리는 땀, 혹시 거인국으로 향하는 길에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 태양도 풀도 나무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아, 반대로 높거나 큰 건물들은 점점 안 보이는 걸 보니 거인국은 아닌 모양이다. 생각이 많은 나와 반대로 미겔의 얼굴은 점점 더 환해졌다. 그는 늘 밀림이야 말로 생명이 있는 곳, 모두가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말하곤 했었다.  


나무가 참 높기도 하다. 와까야꾸의 풍경.


"Bienvenido! Aqui es Jameica de Peru."

여기가 왜 자메이카라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세배? 아니 다섯 배보다도 높은 듯한 열대 나무 가로수 사이에서 미겔이 신이 나서 외쳤다. 와까야꾸(Aucayacu)라는 이름의 그 도시는 이곳에 있던 잉카 혹은 그 이전 시대의 원주민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원주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는 것은 그만큼 새 문명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었다는 것. 아마도 '밀림'이라는 자연환경이 그것들을 가능하게 했을 거다. 남미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초록의 거대한 자연과 어우러져 유원지 같은 분위기가 났지만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근처에서 간식으로 과일도 사고 미겔이 서두르는 통에 마을을 맘껏 구경도 못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돼."



또 다시 툭툭을 타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어딘가로 향하는 길. 하늘이 참 파랗다.


친한 친구 세네 명과 떠난다는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 사람들의 손길이 드문 아름다운 밀림을 헤매며 그곳에서 폭포도 가보고 텐트도 치고 그렇게 며칠 동안 탐험을 할 거라고 했었는데. 아니, 그건 단지 내가 그렇게 알아 들었던 걸까? 어쩌면 나만의 기대였나?

툭툭에서 내리니 눈 앞에는 잔디밭 광장이 펼쳐져 있고, 그곳엔 텐트도 사람들도 많다. 혹시 나 지금 너무 더운 장흥 유원지에 잘못 온 것은 아니지? 그리고, 너 친구 세네 명이라며? 어, 저 중에 친한 애는 세네 명이야. 이 잔디밭이 밀림이야? 아주 아름다운 곳이지. 야, 이거 대체 정체가 뭐야? 저기 우리 교수님이 계신다, 일단 인사를 드리자.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세상에. 나는 엉겁결에 그의 대학 MT인지 답사인지 모를 어떤 곳에 쫓아온 것이었다. 이곳이 밀림이 맞긴 하는지 언제부턴가 핸드폰은 신호가 잡히지 않고 있었다. 미겔에게 끌려가듯 풍채가 좋고 머리가 하얗게 센 교수님에게 가 무슨 말인지도 모를 소개로 인사를 드리곤 앳된 얼굴로 뭉쳐 다니며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텐트를 쳤다.

나름의 배려인지 미겔은 친구들 사이에 끼지 않고 나를 데리고 조금 떨어진 공원에 데려갔다. 다시 한번 확인을 한다거나 깊게 생각할 틈도 없이 바쁘게 달려온 하루의 해가 벌써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어떤 현실감 같은 게 확 느껴지는데, 차라리 대학 답사라니 다행인 것 같기도 했다.

해가 떨어질 때까지 우리는 말없이 앉아있었다. 서서히, 하늘이 붉게 물들어갔다. 미겔은 이따금 하모니카를 꺼내 연주를 했다.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간간히 멀리에서 들려왔다. 이제 내일, 본격적인 밀림 탐험에 나서게 될 거다. 무려 페루의 대학생들과 함께 말이다...!






* 미겔과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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