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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짱없는 베짱이 Jun 11. 2018

07. 다른 대륙의 친구를 사귄다는 것

2017.3.27. 쿠스코, 페루(D + 49)

남미는 수공예 시장이 매우 발달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언제 어느 도시에서나 팔찌나 귀걸이, 목걸이 등 각종 액세서리를 만들어서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거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도 다르지 않아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조그마한 야마 열쇠고리에서부터 본인이 만들었다는 액세서리, 그리고 초콜릿 따위를 파는 사람들이 나를 스쳐갔다.




"우리가 만든 팔찌야. 구경해볼래?"

아르마스 광장 벤치에서 멍 때리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 것은 까맣고 곱슬곱슬한 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꽤나 불량해(?) 보이는 청년과 그 옆에 눈에 잘 띄지 않는 까맣고 작은 또 다른 한 아이였다. 우연찮게도 마침 그날은 장기투숙을 하기로 한 호스텔의 매니저로부터 남미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서 판다는 그 문제의 '팔찌'의 아주 기본적인 패턴을 배워 완성한 날이었다.  


남미에서 처음으로 직접 만들어본 팔찌. 바로 이 팔찌로 인해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그거 나도 할 줄 알아. 이거 봐, 내가 만든 건데?"  

그러니 너네 물건은 사지 않겠다는 말이었는데 두 사람이 갑자기 신났다. 넌 어디서 온 앤 데 이런 걸 만들 줄 아니, 또 어떤 패턴을 할 줄 아니, 그럼 여기에서 만들어봐. 우리에게 실이 있어. 네가 네 패턴을 가르쳐주면 우리도 네게 하나를 가르쳐줄게.


벤치에 앉아서 때 아닌 팔찌 만들기가 시작됐다. 이후에야 안 사실이었지만 내가 조그맣고 까만 아이와 팔찌를 만드는 동안 자기를 모이세스라고 소개한, 그 곱슬머리 선글라스는 광장을 지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호객을 하고 있었다. "이거 봐요, 이 동양 여자애. 한국애가 팔찌 만드는 거 본 적 있어요? 여기 팔찌가 더 있어요."

팔찌 하나를 겨우 완성하고 작은 아이가 나에게 다른 패턴을 가르쳐주던 무렵, 더 이상 장사가 되지 않았는지 모이세스는 그들의 호스텔에서 다른 색의 실을 더 가지고 오겠다며 자리를 일어났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는데 하늘이 꾸물꾸물, 마치 비가 내릴 것만 같았다.  

두 번째 패턴 배우기가 한참 진행될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이세스는 오지 않았고, 우리는 광장 가장자리 건물 밑으로 자리를 옮겨 비를 피하면서 팔찌 만들기를 이어갔다. 그때 나는 스페인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고작 5일쯤 지났을 무렵. 영어를 할 줄 아는 모이세스와는 짧게나마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지만 이 작은 아이는 "What's your name?"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 나와 소통을 시도했고, 우리는 나의 아주 짧은 스페인어와 손짓 발짓, 그리고 어색한 웃음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모이세스와 본인은 둘 다 페루 사람으로 지금은 여행 중. 둘은 이곳의 호스텔에서 서로를 알게 되었는데, 그들이 묵는 호스텔 '아우키스'는 아르마스 광장에서 두 블록 거리. 심지어 1박에 10솔로 매우 저렴. (장기간 머물 예정이라면 너도 이곳으로 와. 싸니까.라는 호객도 빼먹지 않았다.)  

두 번째 팔찌까지 완성을 했고, 비도 잦아들었다. 남미 여행을 준비하며 직접 만들어 온 명함을 그 아이에게 줬다. 그는 종이에다 본인의 이름과 이메일을 적어줬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작은 아이, 미겔이 다음 목적지인 아레키파로 떠날 때까지 두 번 정도를 더 만났다.


미겔과 모이세스를 처음 만났던 날.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쿠스코를 방문한 사람들이 고산병에 걸리지 않기를 기원하는 잉카 식의 세레모니가 진행되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남미 사람과의 첫 만남. 어땠냐고?  

다시 만나기로 한 그날 저녁, 약속시간이 10분, 15분이 지나도록 미겔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장에 연락할 방법도 없고, 가만히 기다려야 하나, 그렇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나 바람맞은 건가? 아니, 애초에 또 보자는 건 빈말이었는데 그걸 덥석 잡아 문 것이었나, 이대로 더 늦기 전에 숙소로 돌아갈까, 온갖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저 광장 끝에서 손을 흔들며 나타난 환한 표정의 미겔. "뭐가 문제야, 나 9시에 (호스텔에서) 출발했다고." 세상에나, 저 태평한 얼굴. 우리 만나기로 한 시간이 바로 9시였다고!!

이 녀석 믿어도 될까? 낯선 장소에서 만난 낯선 이들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는 해외여행의 단골 소재 아니던가. 게다가 시작부터 이런 불신을 심어주다니, 일단 만난거 함께 움직여보되 절대 경계를 늦추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한 순간의 방심,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돈과 핸드폰 등 중요한 물건이 다 든 가방을 의자에 놓고 일어난 것이다.

이미 배낭을 잃어버린 경험도 있는 데다 남미에서는 모두 '내 물건은 내 물건, 니 물건도 내 물건'이라고 소지품은 반드시 몸에 지니랬는데. 머릿속이 걱정과 불안의 카오스가 되어 자리를 돌아보는데, 내 가방을 지켜보는 미겔의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듯 하다. "이런 거 절대 의자에 놓고 가지 마. 위험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빨리 다녀와." 그... 그게 아니라... 나는 무엇보다 너를 믿을 수가 없는걸...?  

이미 뗀 발걸음을 다시 돌리기도 민망하고 에라 모르겠다, 초 스피드로 볼일을 마치고 나왔다. 처음 자세 그대로 내 가방 파수꾼(?) 역할 중인 미겔. 그 진지한 표정에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날 내내, 내가 숙소에 돌아갈 때까지 그는 그렇게 주변을 경계하며 내 가방과 본인의 가방을 열심히 지켰더랬다.

 

외국어도 못하고, 남미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도 부족한 내가 현지인을 만난다는 건 잠깐 스치고 갈 한번의, 그저 재미있는 이벤트와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랬기에 더 마음을 쓰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이미 끝이 정해진 인연에게 굳이 마음을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미겔이 쿠스코를 떠나던 날에도 우린 광장에서 만났다. 본인 덩치만 한 여행 가방을 메고, 역시나 약속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아무 문제 없다는 듯한 환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해보고 싶은 스페인어 대화도 여전히 마음같지 않고, 그래서일까 사실은 조금, 금방, 지겨워졌다. 하필 그날 내 숙소에서는 저녁에 다 같이 고추장 팍팍 사용해서 한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했다. 미겔의 버스 시간까지 아직 2시간도 넘게 남은 걸 알면서도 난 이제 그만 들어가 봐야 한다고 말했다. 피곤하다고 그랬다.  

미겔은 자신이 만든 거라며 가방에서 목걸이를 꺼내 선물해줬다. 그리곤 혼자 터미널로 떠났다. 마지막 말 역시 정확하게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대륙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분명 아는 이야기인데, 나도 알고 있는데, 신호등 건너 인파에 휩쓸려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면서야 문득, 아, 이게 마지막인 거구나, 우리는 이제 평생을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이상하다.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사귄 다른 대륙의 친구, 처음으로 나를 amiga라고 불러준 친구가 그렇게 훌쩍 떠나버렸다.


강한 에너지를 가진 돌로 여행내내 나의 부적이 된, 미겔이 만들어 준 목걸이.
누군가와 함께 앉아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던 그 벤치에 앉아서 바라 본 코리칸차의 풍경. 의도했던 건 아니었는데 미겔 덕분에 그래볼 수 있었다.
안녕. 떠나가는 미겔의 뒷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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