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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Apr 13. 2023

발자국박사

발자국박사 꾸기의 모험

꾸기의 별명은 ‘발자국 박사’. 발자국에 대해선 모르는 게 없어요. 꾸기는 발자국을 좋아해요. 발자국만 보고 다니죠. 꾸기는 땅에 찍힌 발자국을 보며 누구 발자국인지 알아내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요. 꾸기는 하루 종일 발자국만 보고 연구하는 게 제일 행복하다고 말하는 친구예요.

오늘도 꾸기는 발자국을 보느라 땅만 보네요. 그런데 그때 ‘쿵!’. 친구 꼬미와 부딪치고 말았어요. “꾸기야! 앞을 보고 다녀야지” 꼬미가 말했지만 꾸기는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다음 발자국을 따라갔어요. “꾸기는 내가 지나가도 인사도 안 하고, 이제는 사과도 안 하네. 쳇” 꼬미는 발자국만 보는 꾸기를 바라보며 속상한 마음에 입을 삐죽거렸어요.

꼬미의 마음도 모른 채 꾸기는 발자국만 보며 집에 도착했어요. 집 앞에서 고개를 든 꾸기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어요. “엇? 엄마, 아빠 소리가 안 들리네? 어디 가셨지?” 꾸기 눈앞엔 오로지 발자국만 찍혀 있었어요.

꾸기는 밖으로 나와 엄마, 아빠를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사라진 건 엄마, 아빠뿐만이 아니었어요. 고개를 들고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어요. 오직 발자국만 보였어요.

“발자국 나라다!” 꾸기가 소리쳤어요. 발자국만 따라다니던 꾸기가 결국 발자국 나라에 온 거예요. “발자국만 있는 나라라니 너무 신나잖아!” 꾸기는 너무 신이 나 크게 웃었어요. “여기선 발자국만 볼 수 있다! 야호!”

발자국 나라는 꾸기가 궁금해하던 발자국이 가득했어요. 엄마, 아빠 발자국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키가 엄청 큰 꾸기네 반 담임선생님의 엄청 큰 발자국도 보였어요. 꾸기는 아무도 부딪치지 않고 발자국만 보고 다닐 수 있어 행복했어요. 바닥만 보고 다닌다고 혼나지도 않으니 이렇게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때였어요. “바쁘다 바빠” 샤샤삭. “바쁘다 바빠” 샤샤삭. 허겁지겁 바쁜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목소리를 따라가보니 작은 발자국들이 어디론가 바쁘게 가고 있었어요. “아니! 발자국들이 말을 하다니! 발자국 나라는 정말 최고다!” 신이 난 꾸기는 발자국들을 쫓아 뛰어갔어요.

샤샤삭. 샤샤삭. 빠른 발자국들을 쫓아간 꾸기는 숨이 찼지만 전혀 문제 되지 않았어요. 작은 발자국들은 땅 속에 난 구멍 앞에 멈춰 있었어요.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간 발자국들이 소곤소곤, 따라온 꾸기를 보았나 봐요. 발자국들은 소리를 낮췄고,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았어요. 샤샤삭 소리를 내던 발자국들은 누구의 발자국이었을까요? 꾸기는 궁금했어요.

나무 아래, 생각에 잠겨 있던 꾸기 뒤로 쿵! 쿵! 큰 발자국 소리가 들렸어요. 놀란 꾸기는 몸을 숨겼어요. “무거워..” 쿵! “무거워..” 쿵! 꾸기 옆으로 큰 발자국이 쿵 찍히며 지나갔어요. 꾸기는 살금살금 발자국을 따라갔어요. 발자국은 동굴 속으로 사라졌어요. 쿵 소리를 내는 무거운 발자국은 누구의 발자국이었을까요?

꾸기는 더 많은 발자국들이 궁금해졌어요. 너무너무 궁금해 참을 수 없었어요.

“세상엔 얼마나 많은 발자국들이 있는 거야? 더 많은 발자국들을 만나고 싶어”

꾸기는 다시 길을 떠났어요. 이제는 발자국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졌거든요. 지나가는 발자국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어요. 꾸기는 용기를 내 발자국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결심했어요.

그때, 어디선가 지독한 똥냄새가 났어요. 꾸기는 코를 막고 주위를 둘러봤어요. 저 멀리서부터 냄새를 풍기며 똥 밟은 발자국이 걸어오는 게 아니겠어요? 꾸기는 똥 밟은 발자국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어요.

“너 어쩌다 똥을 밟은 거야?”

꾸기가 묻자 발자국은 깜짝 놀랐어요. “지금 나한테 말을 건 거야?” 발자국도 똥냄새가 나는지 코를 막고 물었어요. 꾸기는 다시 “그래. 너! 너 어쩌다 똥을 밟은 거야? 냄새가 지독해”라고 물었지만 발자국은 알려주지 않았어요. 발자국은 어쩌다 똥을 밟은 걸까요? 꾸기는 똥 밟은 발자국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똥 냄새가 너무 지독해 다시 발을 돌렸어요.

꾸기는 똥냄새를 피해 걷다 웅덩이를 발견했어요. 웅덩이에는 따뜻하고 깨끗한 물이 가득 차 있었어요. 꾸기는 신발을 벗고 발을 담가 보았어요.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니 꾸기의 몸도 나른해졌어요. 따뜻한 웅덩이를 살펴보니 꾸기 발자국 말고도 여러 발자국이 찍혀 있었어요. “안녕?” 꾸기는 따뜻한 물속 발자국들에게 인사를 건넸어요. 발자국들이 찍힌 물이 일렁였지만 물속에 있는 발자국들의 목소리는 꾸기에게 들리지 않았어요.

아쉬움을 뒤로한 채 꾸기는 다시 신발을 신고 공원 벤치에 앉았어요.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나니 꾸기는 금방이라도 잠이 올 것만 같았어요. 그때였어요. 깜빡 잠이 들었던 꾸기의 귓등으로 바람이 날렸어요. 다시 눈을 뜬 꾸기, 바람에 날아가는 발자국들을 보았어요. “바람의 발자국들인가 봐!” 꾸기는 이번엔 꼭 발자국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요.

“발자국들아! 어디로 가는 거야!” 꾸기가 큰 소리로 물었지만 바람에 날아가는 발자국들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지 돌아보지 않은 채 날아갔어요. 그런데 마지막 발자국이 꾸기에게 소리쳤어요. “꾸기야! 너 발자국이 사라지고 있어!”

그때서야 꾸기는 뒤를 돌아봤어요. 정말 꾸기의 발자국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럴 수가! 발자국들아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꾸기는 잠이 홀딱 깼어요. 꾸기는 생각 했어요. “내 발자국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야겠어!”

꾸기는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봤어요. 하나씩 하나씩 사라지고 있는 발자국들을 빨리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였어요. “꾸기야!” 꾸기 옆을 서성이던 세모 발자국이 꾸기를 불러 세웠어요.

“넌 누구 발자국이니?”, “난 너의 발자국이야”, “뭐라고? 넌 내 발자국이랑 너무 다르게 생겼는 걸?”, “아니야. 난 너의 발자국이 맞아”, “아니야. 이건 내 발자국이 아니야” 꾸기와 발자국은 계속해서 실랑이를 벌였어요. 그러자 발자국이 말했어요. “꾸기야. 이럴 시간이 없어. 지금 너의 발자국들이 사라지고 있다고. 빨리 쫓아가 봐야지” 꾸기가 다시 돌아보자 저 멀리 발자국들이 사라지고 있었어요. 꾸기는 실랑이를 벌이던 동그라미 발자국과 함께 빨리 뛰어갔어요.

그때, 한 발자국이 또 꾸기를 불렀어요. 동그라미 발자국이었어요, “꾸기야! 그쪽 길이 아니야”, “넌 누구니?”, “난 너의 발자국이야”, “넌 내 발자국이 아니야”, “아냐, 맞아” 꾸기는 또 실랑이를 벌였지만 시간이 없었어요. 꾸기는 세모 발자국, 동그라미 발자국과 함께 다시 발자국들을 쫓아갔어요.

한참을 뛰다 보니 꾸기는 발이 아팠어요. 그러자 동그라미 발자국과 세모 발자국이 말했어요. “우리 위로 올라가” 꾸기는 발자국들에게 미안했지만 잠깐 올라가 보기로 했어요. 아니 그런데 이게 웬 일, 꾸기 발자국에 딱 맞는 게 아니겠어요? 꾸기는 발자국들의 정체가 궁금했어요.

세모 발자국, 동그라미 발자국 위로 올라가자 꾸기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어요. 힘은 하나도 들지 않았어요. 덕분에 꾸기는 사라지지 않은 꾸기의 발자국들을 잡을 수 있었어요. “발자국들아 어디로 사라지는 거니?”

꾸기의 발자국들이 꾸기를 돌아보더니 말했어요. “세상 모든 발자국들을 만나고 싶어 떠나는 거야” 한 발자국이 말한 채 휭 날아갔어요.

“발자국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어! 발자국들도 다른 발자국들이 궁금했던 거야!”

꾸기의 발자국들은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니었어요. 꾸기의 발자국 사랑이 어디서 왔겠어요? 꾸기의 발자국들도 다른 발자국들이 궁금했던 거예요.

그때였어요. 세모 발자국이 껄껄 웃었어요. “꾸기야. 너 정말 내가 기억나지 않니?” 꾸기는 세모 발자국이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어요. 그때 세모 발자국이 말했어요. “샤샤삭” 꾸기는 마침내 기억이 났어요. “너! 구멍 속으로 사라지던 발자국?”

옆에 있던 동그라미 발자국도 크게 웃었어요. “꾸기야. 그럼 나는 기억나니?” 꾸기는 동그라미 발자국을 한참 바라봤어요. “엇? 너 따뜻한 물이 담겨 있던 웅덩이 발자국?”

세모 발자국과 동그라미 발자국이 크게 웃었어요. “그래! 그때 남겨진 너의 발자국이 바로 우리야!”

꾸기는 깨달았어요. “내가 쫓아갔던 다른 발자국 위로 내 발자국도 찍혔던 거구나!” 꾸기는 세상 모든 발자국 위로 또 다른 발자국이 찍힌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어요.

이 세상에는 어디에나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어요. 꾸기는 그 위를 걸어 다니며 발자국들을 만났죠. 꾸기도 발자국을 남기면서 말이에요. 꾸기의 발자국 위로 다른 발자국이, 또 다른 발자국 위에 꾸기 발자국, 또 그 위에 다른 발자국. 세상 모든 발자국들은 세상 모든 곳에서 꾸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꾸기의 발자국들이 사라진 이유, 세상 모든 발자국들을 만나고 싶어 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어요. 세상의 모든 발자국들이 궁금했던 꾸기. 그런 꾸기만큼이나 꾸기의 발자국도 이 세상에 정말 궁금한 게 많았어요.

발자국이 찍힌 땅을 보던 꾸기는 몸을 일으켜 세우고 고개를 들었어요. 저 멀리 가고 있는 발자국들을 따라 꾸기도 한 발자국 내디뎠어요. 꾸기는 그렇게 세상 모든 발자국들을 만나기 위해 세상으로 또 한 발자국 나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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