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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또 Nov 28. 2023

이따가 말고 지금 사과하세요, 영화 <세 자매>

영화 '세 자매', 사과하세요. 우리한테, 이따가 말고 지금 사과하세요

사과하세요. 우리한테, 이따가 말고 지금 사과하세요, 영화 <세 자매>


개봉 : 2021.1.27

관객수 : 8.3만 명

감독 : 이승원

주연 :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 등


소개

“언니가 늘 기도하는 거 알지?” 완벽한 척하는 가식덩어리 둘째 ‘미연’(문소리). 

“내가 미안하다” 괜찮은 척하는 소심덩어리 첫째 ‘희숙’(김선영).

“나는 쓰레기야” 안 취한 척하는 골칫덩어리 셋째 ‘미옥’(장윤주).

각자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가던 세 자매는 아버지 생일을 맞아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데... 내 부모에게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었던, 문제적 자매들이 폭발한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세 자매'를 뒤늦게 봤다. 아무런 정보 없이. 출연 배우들과 제목은 익히 들었지만 내용은 전혀 몰랐다. 넷플릭스에서 영화가 보여 그냥 가볍게 틀었다. 일을 하며 소리의 적적함을 없애려 가벼운 마음으로 틀어놓을 생각이었다. 


후회했다. 이렇게 볼 영화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봐서 다행이었을까? 일을 마무리하고, 결국 영화에 완전히 눈을 돌렸다. 눈물이 터졌다. 결국 오열했다. 소리까지 내며 엉엉 울었다.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이 흘렀고, 여운도 길게 남았다. 마음이 아팠다.


괜히 봤다. 그런데 참 보길 잘했다. 잘했다는 표현이 미안하지만 누군가는 했어야 할 이야기. 문소리, 김선영, 장윤주의 연기, 그 이상의 것이 폭발하는 작품이었다. 다른 듯 닮은 세 자매의 이야기로 시작해 결국 곪아있던 가족들의 이야기가 터지면서 결국 이 세상 모든 가족들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세 자매' 속 세 자매가 중간까지 보여주는 삶은 답답함 그 자체이다.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모두가 곪아 있다. 제발 그런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름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만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무언가 방어적이며 회피하는 듯한 모습이다.



첫째 희숙은 매일 돈만 가져다 쓰며 아내에게 폭언을 하는 남편에게도 절절, 엇나가며 투덜대는 딸에게까지 절절맨다. 몸은 아프고, 돈도 없어 전기세 아끼려 불도 켜지 못하면서 애써 실실거리며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산다. "미안하다"는 말이 상대방을 더 화나게 하는 것마저 미안해하며.. 정작 자신의 몸과 마음은 시들어 가는데 표출시키지 못하니 애써 괜찮다는 말로 자신을 방어한다.



셋째 미옥은 술을 달고 산다. 글 쓴답시고 과자를 아작아작 씹어대며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한다. 착한 남편에겐 히스테리를 부리고, 사춘기 아들에겐 새엄마 노릇은커녕 동네 양아치 누나처럼 말 걸기 일쑤다. 샛노란 탈색 머리와 독특한 패션으로 자신의 아티스트적 똘끼를 이해받고 싶어 하지만 결국엔 그 면모를 방패로 자신을 방어한다.



첫째, 셋째보다는 깔끔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둘째 미연. 그렇다고 둘째 미연의 삶은 완벽한가. 좋은 남편, 좋은 엄마, 좋은 아파트, 교회 성가대 지휘자, 완벽하게 살기 위해 완벽한 척 하지만 결국 겉모습에 집착하는 가식덩어리일 뿐이다. 아슬아슬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키고 싶지 않은 미연은 결국 가식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극이 중반을 지나면서 결국 세 자매가 이토록 방어적이었던 이유가 드러난다. 이들이 애써 외면했던 어린 시절의 상처. 잊은 채 살고 싶었지만 도저히 잊히지 않는 기억. 지금 방어하며 살게 만든, 방어할 수 없었던 시절의 기억.. 이들을 곪고, 곪고, 또 곪게 만들게 한 기억을 만든 장본인, 아버지.. 그의 생일을 맞아 한 자리에 모이면서, 결국 이들의 곪았던 상처는 터지고 만다.


"사과하세요. 우리한테, 이따가 말고 지금 사과하세요"


미연이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는 울부짖음이 참 아렸다. 몸도 커지고, 힘도 세지고, 목소리도 커졌는데.. 상처받은 마음과 다친 영혼은 그대로인 이들의 표정이.. 어린 시절의 그 상처받은 그대로의 눈빛이 참 아렸다. 



기대야 할 부모는 상처를 줬고, 도와줘야 할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렇게 상처받은 영혼들은 방어적인 어른이 됐고, 어른이 되어서도 아직 상처받은 아이로 지내게 됐다. 마땅히 빛나야 할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 채, 단단한 나로 존재해야 할 어른이 되지 못한 채. 


하지만 '세 자매'의 엔딩 장면이 이 아린 마음을 그래도 한 겹 덮어주며 여운을 남겨줬다. 결국 방어만 했던 자신을 드러내고, 애써 감췄던 아픔을 표출한 뒤 다시 눈물을 닦고 다음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은은하게나마 아픔을 어루만져줬다. 형제애로 서로를 보듬어준 것도 있지만 결국에는 아픔 그 자체에 잠식되지 않고, 다음을 살아가려는 각자의 모습이.. 해맑게 그들 뒤를 따라가는 어린 시절 그들의 모습이 의외의 위안을 줬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성장하는 과정에서, 혹은 어른이 된 후에도 크고 작은 상처를 겪었다. 무조건 행복하고, 좋은 일만 있는 삶은 없지 않은가. 마냥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을 살고, 그런 성격을 지녔다면 그것대로 큰 행운이겠지만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은 결국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고난을 헤쳐나가고 극복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가족에게든, 친구에게든, 사회에서 만난 그 누구에게든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살아가며 방어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애써 외면하고 사는 부분도 있을 거고.


그런데 영화 '세 자매'를 보고 뭔지 모르게 용기가 생겼다. 내게 상처 준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용기. 


"사과하세요. 이따가 말고 지금 사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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