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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방울 Oct 29. 2022

기적이라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16. 온 가족 폐렴 폭풍 속 8모 완주하기    

 6월 모의시험을 마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아기들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었다.


친정어머니께서 본가에 머무시는 방학 기간, 남편이 최소한의 생계비를 벌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에는 아이 돌보미 선생님에게 아기들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6모의 마지막 선택법까지 치르고 나서 허겁지겁 집으로 향하는 중 진동이 울렸다. 돌봄 선생님이었다. 


"오고 계세요? 아기가 똥을 싼 것 같은데."

"아네, 지금 거의 다 왔어요. 제가 얼른 가서 기저귀 갈게요."


돌봄 선생님의 퇴근이 이미 5분 정도 늦어지고 있었으므로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부탁까지는 차마 하기 어려웠다. 그저 발걸음을 재촉해 집에 도착하자마자 보내드리고, 묵묵히 똥을 치웠다.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 느낀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별도의 휴식시간 없는 삶이 지속된다는 것이다. 변호사시험과 동일한 일정으로 진행되는, 전국 모의시험 가운데 그것도 첫 번째 시험인 6모를 치르고 나면 대부분의 수험생이 기진맥진해서 수액을 맞으러 가거나 하루 이틀은 푹 쉰다. 


그런데 부모가 되고 나면 쉬러 간 집에는 24시간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자그마한 생명체가 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쉬려고 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아기를 돌봐야 한다. 더욱이 우리 집에는 아기가 하나가 아닌 둘, 얌전한 공주님이 아닌 세상 제일 활발한 왕자님들이 활개를 치고 있으니. 


운동도 마찬가지다. 무사히 관문을 통과하고 다시 사회에 나온 뒤로 운동 안 하냐는 질문을 종종 받지만, 싱글의 삶에서 누렸던 개인 트레이닝, 일대일 필라테스, 헬스장 등록은 꿈도 꿀 수 없다. 퇴근하고 그런 프로그램에 등록해 운동을 한다면 그 시간 다른 누군가는 꼼짝없이 아기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로3 학기 중을 제외하고, 적어도 그 누군가가 친정어머니가 되지는 않게끔 하는 게 워킹맘이 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확고한 원칙이다. 힘들어도 즐거워도 아기들의 부모인 남편과 내가 오롯이 감내해야 할 몫이어서다. 


쌍둥이를 육아하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 운동 안 하냐고 물어보는 이들은, 기자로 한창 일할 때 만나는 사람이 없는 사실을 빤히 알면서 결혼 안 하냐고 물어보던 이들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 내가 영영 결혼을 안 할까 봐 혹은 운동을 안 할까 봐 걱정해주는 마음의 발로이겠지만,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고, 그때의 결혼도, 지금의 운동도,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여느 때처럼 아침 8시 스터디에 늦지 않게 출석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참이었다. 아기 한 명이 콜록콜록 기침을 심하게 하는데, 마치 개 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남편에게 잘 살피라고 당부하고는 로3의 일상으로 향했다. 정확히 8월 모의시험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와 보니 다른 아기의 기침소리도 동일하게 개 짖는 소리로 변해 있었다. 그러고는 아기 둘 다 밤새 기침과 고열로 끙끙 앓았다. 해열제 효과가 떨어지기 무섭게 39도, 40도를 오가는 이마를 어떻게 식혀야 할지 전전긍긍하면서 남편과 같이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아침 스터디를 이끄는 동생에게 아기들이 아파서 못 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스터디를 시작한 이래 처음 한 결석 통보였다. 그 뒤로 3일을 꼬박 가까운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아기들을 간호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어김없이 열이 오르고, 아기들은 듣기 괴로울 정도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기침을 반복했다.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폐렴 같은데, 입원하시겠어요?" 


당장 8모를 치러야 하는 상황에서 이미 3일을 학교에 가지 못했는데 아기들을 덥석 입원시킬 수는 없었다. 그제야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요청했다. 한달음에 복귀한 어머니께서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기들의 온몸을 닦아주시는 동안 남편은 연신 식은 물을 갈아주었다. 마침내 아기들의 열이 내리고 어머니는 학기가 시작되면 다시 오시기로 하셨다. 다시금 아침 스터디에 나갈 수 있게 된 나는 그로부터 사흘간 전력을 다해 시험을 준비했다.


8모 당일, 10시에 시작하는 공법 선택형 시험을 앞두고 평소보다 일찍 7시 반쯤 열람실에 도착했다. 전날 보던 기출문제집을 펼치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면서 자꾸 고개가 고꾸라졌다. '왜 이러지'라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 신체 에너지가 급격히 하강하며 시야가 하얘졌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불현듯 책을 보는 것도, 앉아 있는 것도 말도 안 되게 힘들어졌다. 


'아, 내 차례가 왔나 보다.' 


아픈 아기들을 돌보는 동안 이미 면역력이 곤두박질을 치고 있던 로3의 컨디션이 성할리 없었다. 이전까지 나는 일단 8모부터 끝내고 아프자고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열심히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시험을 일주일 남기고 아기들이 폐렴에 걸려 공부를 전혀 못했지만 그 뒤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전날도 아니고, 8모가 시작되는 바로 그 아침이라니. 한가닥 잡고 있던 희망이 해도 너무하다 싶은 최악의 타이밍에 와르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기어가다시피 해서 휴게실에 누워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좀 데리러 와달라고. 집에 들어가 소파에 힘 없이 걸터앉는데 아기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아기들이 다시 아픈 조짐을 보여 병원에 데리고 가봐야 할 것 같다고 남편 또한 심상치 않은 기침을 연발하면서 말했다. 


그 길로 남편과 같이 동네 소아청소년과에 아기들을 데리고 갔다. 아기와 엄마가 같이 아플 때 의사에게 부탁하면 따로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상황에서 나도 봐달라고 진료를 접수할 시간도, 증세를 호소할 여유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기들의 처방약을 타러 병원 옆 약국에 들렀을 때,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뜨거운 물에 타 먹는 분말형 감기약을 재빨리 집어 같이 계산했다. 


곧장 차를 타고 학교에 내려 시험장에 들어섰다. 1교시 공법 선택형이 막 시작한 참이었다. 열람실에서 평소에 쓰는 컵에 뜨거운 물을 담아 내 응시번호가 적힌 책상에 두고 앉았다. 정신없이 가느라 신분증도 깜박하고, 5분 정도 늦었던 것 같지만 실제 변시가 아니다 보니 응시는 가능했다. 약국에서 사 온 감기약을 컵에 털어 넣고 벌컥벌컥 마셨다. 


감기약의 강력한 진통 효과가 서서히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몸은 나른한데 정신은 또렷한 기분. 그 상태에서 오후, 저녁까지 차례차례 사례형, 기록형 시험을 치르는데 신기하게도 6모 때처럼 급작스럽게 등 통증이 강타한다든가, 답안을 쓸 때 시간 배분 문제로 더 이상 쩔쩔매지 않았다. 무난하게 각 문항에 떠오른 답을 서술하면서 통백 없이 답안을 채운 것이다. 


그렇게 다음날 형사법, 셋째 날과 넷째 날 민사법까지 완주했다. 마지막 날 국제거래법 답안지를 내고 시험장을 나서면서, 나는 6모 때와는 달라진 느낌에 얼떨떨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이런 확신이 들었다. 


'이게 변시였다면 난 합격이다.'


몇 주 뒤 학과 사무실에서 8모 성적표를 수령했다. 복도를 걸으며 접힌 종이를 조심스럽게 펼치는데, 슬쩍 확인하고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중간을 약간 웃도는 정도였던 성적이 수직 상승해 40등 가까이 오른 것이다. 6모 때와는 달리, 이제 내 앞에 있는 이들이 누구누구인지 가볍게 세어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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