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척추측만증과 6월 전국 모의시험의 상관관계
신체의 변화나 이상 신호에 둔감한 편이다. 덕분에 나이 서른이 되도록 척추가 한쪽으로 삐뚤어져 있는 것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다 몸속에 다른 종류의 병을 키운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20대 후반 장기간 병원 신세를 진 뒤로는 경각심을 가지고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는 꼬박꼬박 월급을 받으며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는 싱글 직장인이었으므로, 목돈을 결재하고 퍼스널 트레이닝(PT)을 받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PT 첫날, 인바디를 측정하고 엑스레이 비슷하게 생긴 기기로 자세와 체형을 점검받고 있었다. 담당 트레이너가 대뜸 말했다.
“어이쿠, 척추측만증이 심하시네요. 안 아프셨어요?”
그 뒤로 등 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늦게나마 휜 척추를 조금이라도 바로잡고 싶은 마음에 동네에 자세 교정을 전문으로 한다는 센터도 찾았다. 개량한복을 입고 도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던 원장님은 내 등 부위를 짚어보더니 통증을 느낀 적이 없는지 트레이너와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사실 아픈 건 잘 모르겠다고 하니 불길한 예언성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젊어서 그런 거고, 30대 후반 정도 되면 아프기 시작할 겁니다.”
그렇게 PT와 교정 치료를 병행하다가 결혼하고 로스쿨에 왔다. 쌍둥이를 낳았다. 거주지가 달라지기도 했거니와 가족 구성과 신분까지 180도 바뀐 상황에서 척추측만증에 의한 통증이라는 오지 않은 미래를 대비할 여유 따윈 없었다.
수년 전 교정센터 원장님의 예언은, 30대 중반을 슬슬 넘어가던 복학 시점에 훌쩍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법학전문대학원 협의회 주관으로 열리는 6월 1차 전국 모의시험 기간 중간에는 몸져 드러눕고 싶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됐다.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멘털 관리와 체력 관리가 중요한 로3의 절정, 두꺼운 법서가 주는 중압감을 압도하는 통증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수능을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고3이 그렇듯, 변호사시험을 앞둔 로3이라고 해서 생활이 획기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특히 3학년 1학기까지는 민사재판실무를 포함해 수강하면 도움 되는 미지의 수업들이 많아서 나 같은 경우 1, 2학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수학점을 유지했다. 수강 중인 과목에 초점을 맞춰 공부하면서, 스터디에서는 틈날 때마다 기출시험을 같이 풀어보는 연습을 흉내라도 내려 애쓰고 있었다.
3학년은 이러한 정규 학기와 더불어 세 차례에 걸쳐 실제 변호사시험과 동일한 형태로 5일 동안 진행되는 전국 단위 모의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6월에 보는 법전협 모의시험이라는 뜻의 '6모'는 이 중에서도 1학기를 마무리하는 즈음 인정사정없이 달려든다. 교내 시험이 100미터 달리기라면, 변호사시험은 긴 호흡을 가지고 5일에 걸쳐 완주해야 하는 마라톤이다. 100미터 달리기만 하던 주자가 하루아침에 마라토너로 다소 무리하게 변신해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이 바로 6모인 것이다.
공법, 형사법, 민사법 세 영역의 총 7과목 전체가 시험 범위가 되고, 선택형과 사례형은 물론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기록형도 변시와 똑같이 진행된다. 대비란 게 제대로 돼 있을 리 없다. 계획성이 철저한 몇몇 이들은 수업 부담이 큰 민사재판실무 같은 과목은 아예 수강신청을 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청강하면서 최소학점만을 듣고, 나머지 시간을 변시 준비에 올인해 6모 때 이미 안정적인 성적을 거두기도 한다. 그동안 교내 수업과 시험 위주로 로스쿨 생활을 버텨온 나는 어딘지 금방이라도 빠질 것 같은 돌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무작정 6모에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 날, 공법 전 범위 선택형과 사례형을 잔뜩 긴장한 상태로 몇 시간 치르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그 상황에서 잠시 쉬고 또다시 기록형 시험을 두 시간 연속으로 봐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가뜩이나 생소한 기록형은 누적된 피로의 영향으로 힘겹게 뭐라도 끼적이고 나온 수준에 그쳤다. 아침에 시작한 시험은 기록형까지 마치자 어둑어둑한 저녁이 됐다. 당장이라도 쓰러져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도 재빨리 챙겨 먹고 다음날 아침부터 또다시 진행되는 시험에 대비해야 한다. 백지 답안을 내지 않으려면.
"이, 이런 거구나……."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오빠가 열람실에 들어가기 전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조용히 읊조렸다. 그 오빠는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아내와 아들로 구성된 가족과 임시로 거주를 분리해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로스쿨에서 나와 나이가 엇비슷하고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사람들은 거의 90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가족들과 따로 살았다. 로스쿨의 험난한 과정을 견디면서 변시에 붙을 때까지는 비장한 각오로 가정에서의 역할은 잠시 내려놓는 것이다.
반면 나와 살기 위해 호주에서 여기까지 온, 아직 한국 생활이 익숙하지 않은 데다 한국말이 어눌한 남편과 거주를 분리할 수는 없었다. 거주를 분리하려면 가령 친정 근처와 같이 배우자에게 기반인 곳이 있어야 하는데, 남편의 한국에서의 기반은 오롯이 나라는 한 사람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1분 시간차로 태어나 어느덧 걷고 뛰는 둥이를 같이 돌봐야 하는 사명도 있었다.
둘째 날은 형사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열과 성을 다해 사례형 시험을 치르고 나니 기록형까지 달릴 체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례형 시험을 마칠 무렵부터 등 전체로 지독한 통증이 전해져 왔다. 척추가 휜 오른 방향으로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관통했다. <핵심형사기록>의 앞 페이지라도 빠르게 훑고 있어야 할 마지막 쉬는 시간, 더 이상 앉아 있는 자세를 유지하기가 어려워 여학생휴게실로 달려갔다. 졸업시험을 대체하는 절체절명한 첫 관문의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 누워 있는 다른 수험생이 있을 리 없었다.
이층침대가 두어 대 있는 휴게실은 아늑한 분위기로 조성되어 조명이 밝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챙겨 온 형사기록 프린트물을 펼쳤다. 마냥 고약한 등 통증은 누운 자세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기록형 시험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필사적으로 한 글자라도 머릿속에 주워 담으려 아등바등했다. 그런 자세로 집중이 잘 될 리 없었지만.
다음날 휴식일은 어떻게 보냈는지, 넷째 날과 다섯째 날 대망의 민사법과 선택법 시험은 등이 아픈 상태에서 어떻게 견디면서 봤는지를 떠올려보면 아득한 기억뿐이다. 전날 발발한 통증의 여파로 앉아 있을 수 없어서 휴식일은 누워 지냈고, 다음날 장장 세 시간 반 동안 진행된 민사법 사례형에서는 상법 중에서도 전혀 몰랐던 상행위법 문제가 와장창 나와 처참한 통백 답안지를 내고 말았다. '변시까지 이러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그날 밤은 잠을 설쳤다.
분명한 것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법을 포함한 전 과목 모의시험을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치른 것이다. 그것은 로3을 앞두고 먼저 관문을 통과한 동기들 몇몇으로부터 주워들은 경험담을 토대로 한 일종의 수험 전략이기도 했다. 3회에 걸쳐서 진행되는 전국 모의시험에 진심을 다해 모두 응시하기. 막상 모의시험장에 가보면 선택법은 변시 전 마지막에 치르는 '10모'가 아닌 이상 응시생 자체가 드물고, '8모'는 6모 이후로 지친 체력 회복이나 학업 보충 등의 이유로 아예 응시하지 않는 이들도 많아서 응시율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척추측만증에 의한 등 통증은 출산하고 복학하면서부터 공부를 조금 무리하게 했다 싶은 날 간헐적으로 찾아왔다. 그럴 때면 그날은 평소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었고 다음날 무리 없이 등교할 수 있었다. 6모 중간에 찾아온 통증은 그런 차원을 뛰어넘어 시험을 마치고도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한의원을 찾아가 침도 맞아보고 파스도 붙여보고 할 수 있는 민간요법은 다 시도해봤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충분히 누워서 쉬는 시간을 늘리니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나아지기는 했지만, 변시 기간에도 중간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 누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앉아 있는 동안 등을 지탱해준다는 자세 교정 밴드를 구입했다.
그때부터 장시간 공부할 때마다, 그리고 이어지는 8모와 10모, 변시까지 밴드를 착용하고 그 시간들을 버텼다. 신체를 압박해서 자세를 교정하는 효과를 주는 제품이다 보니 몇 시간 하고 있으면 답답하기도 하고 흐트러지기도 해서 중간중간 풀고 다시 해줘야 하기 때문에 상의 바깥에 착용했는데, 이런 것까지 할 정도로 몸이 좋지 않냐며 걱정해주는 이들도, 모양새가 우스꽝스러워 다소 장난스럽게 놀리는 이들도 있었다.
어쨌든 변시까지 부실한 내 등에는 그 자세 교정 밴드가, 유난히 가늘고 악력이 부족한 내 손목에는 글씨를 많이 쓰는 수험생과 아기를 자주 안아야 하는 맘들 사이에서 평이 좋다는 고가의 보호 밴드가 늘 함께했다. 마치 신체의 일부 같아서 없으면 허전할 정도로. 마르고 닳도록 착용하는 동안 자세 교정 밴드는 신축성 있는 밴드 부분이 너덜너덜해지고 손목밴드에 새겨 있던 브랜드 로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공부하다 보면 별 게 다 신경이 쓰인다. 등 통증이 시작되기 전인 로스쿨 첫해에는 환절기마다 찾아오는 비염이 걱정되어 방학 때 비염 수술을 미리 받는 게 나을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그리고 로3이 되어 변시를 최종 관문으로 해서 차례차례 다가오는 모의시험을 치르다 보면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약한 스스로와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아무리 몸에 좋다는 각종 건강기능식품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유지하며 운동을 병행해도, 변시가 가까워질수록 면역력은 곤두박질쳐서 혈색은 창백해지고 수시로 감기에 걸리기 일쑤이다. 로스쿨 이전까지의 삶에서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신체의 약점이 드러나거나, 급기야는 이전까지 발현하지 않았던 심각한 질병이 찾아오는 안타까운 사례도 있는 것 같다.
로스쿨에서 알던 동생 중에는 기껏해야 30대 초반인데 로3이 된 이후로 한눈에 띌 정도로 새치가 늘어나 반 백발이 되거나, 탈모 증상이 확연한 경우도 보았다. 나의 경우 척추측만증으로 인한 통증 외에도 로3 중반부터 때때로 어지러워 휘청일 정도의 현기증이 나타나서 병원을 찾았지만, 혈압이 평균 이하로 낮게 측정되는 점 말고는 별다른 이상을 진단받지 못했다.
지금도 내 척추는 한쪽으로 휘어 있다. 사무실 의자에 장시간 앉아서 골치 아픈 서면을 쓰느라 끙끙댄 날이면 이따금씩 등이 아프기도 하지만 6모 때처럼 몇 주간 지독한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는 없다. 로3에 겪은 정체 모를 어지럼증은 변시를 치른 뒤로는 깨끗이 사라졌다. 최근 건강검진 결과에 따르면 혈압도 정상이다.
로스쿨 이전의 삶이 그렇듯, 로스쿨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단지 그 사이, 과정의 한가운데에서 가장 약한 스스로와 마주하는 때가 찾아오면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서 넘겨야 한다. 시험 준비와 육아를 병행하면서 점점 체력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을 체감하던 내가 변시 끝까지 가지고 간 유일한 무기는 의지와 정신력이었다. 일상적으로 혼밥을 하고 열람실로 돌아오던 길-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단풍길과 해가 지는 풍경을 만끽하면서, 그런 순간들은 반드시 현재가 아닌 추억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다. 그렇게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