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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ul 17. 2023

아이는 초등학생, 엄마는 대학생

내 나이 서른여덟. 23학번 새내기가 되었다.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등교 첫 날, 긴장감으로 밥을 못 먹는 아이 입에 각종 반찬을 얹어 먹여주고 아이를 학교에 들여보낸 후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붐비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도 아까워 계단으로 허겁지겁 뛰어올라와 미리 준비해 둔 교재를 한손에 품고 학교로 향했다.


교실은 우리 집 거실. 아이가 공부하는 책상 한 켠을 빌려쓰기로 했다.  

사이버대학에 입학했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생길 때쯤 여성학자이자 이적의 어머니로 유명한 박혜란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막내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세 아들을 앉혀두고 말씀하셨단다.


"이제 너희들은 다 키웠으니 내가 좀 크자."


그리고는 여성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전업주부로 산지 정확히 십년째되던 해였다. 그 말이 몇 날 며칠이고 머릿 속에 박혀 지워지지가 않았다. 내가 좀 크자는 말.


남편 몰래 모아두었던 예금 통장을 뒤졌다. 결혼 전, 지인의 부탁으로 할 수 없이 들었던 적금보험이 있었다. 5년 동안 적금을 붓고, 10년 동안 예치를 해두면 복리식 이자를 준다는 상품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는 5년 동안 붓던 적금이야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10년 예치였다. 10년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전세를 올려주어야 했을 때, 아이가 수술을 받느라 큰 돈이 필요했을 때, 차를 바꾸고 싶었을 때 등등.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어렵게 지킨 적금이었다. 천만원 남짓한 돈으로 무엇을 할까 고민만 하다가 일단 예금에 맡겨두었었다. 그 돈을 쓸 때가 됐다.


자격증, 취업을 위한 교육 등을 알아보다가 기왕 공부하기로 한거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연고도 없는 지방에 살면서 아이키우며 대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사이버대학을 알아보았고, 고심 끝에 등록을 마쳤다.


른의 삶은 호기심과 열정만으로 덤비기에는 기회비용이 큰게 사실이다. 럼에도 한번 저질러 보기로 했다. 거침없는 포부와 달리 현실은 입학지원서를 제출해놓고도 갈팡질팡 고민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공부를 하고, 과제를 제출하고, 시험을 치르고 솔직히 이 모든 과정을 다 해낼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건 나를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오늘은 기분 좋은 얼굴로 아이와 남편을 마주하고 육아도 밥상차리기도 흥이 나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사실이다.


숨겨놓은 비상금이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배우고 싶은 열정이 아직 살아있어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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