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임과 통제 사이 '부모양육태도'

by 책봄

내가 어릴 때만해도 부모님께 매를 맞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집집마다 있는 회초리는 육아 필수템이었다. 오밤 중에 아빠에게 혼나고 벌거벗을 채로 쫓겨나 우리 집 벨을 누르던 같은 반 친구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지금같으면 아동학대로 신고할만한 일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니라서 엄마는 친구에게 따뜻한 옷을 입혀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라며 타일러 돌려보내신 기억이 난다.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교실에 들어올 때 으레 회초리 하나씩을 손에 들고 들어왔다. 숙제를 안 한 사람, 준비물을 안 가져 온 사람 때로는 시험문제를 틀렸다는 이유로 손바닥을 맞았고, 단체기합을 받기도 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때는 부모님께 이런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하면 학교에서 행실을 어떻게 했길래 선생님께 맞았느냐며 되려 부모님께 혼이 나는 일이 흔했기 때문에 오히려 쉬쉬했다.


당연히 맞고 자라던 어린 아이들은 세월이 흘러 부모가 되었다. 회초리에 대한 부정적 경험과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리며 매맞고 자란 부모들은 더 이상 자녀를 때리면서 키우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자녀를 때리지 않고 가르치는 방법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잘못하면 매를 맞는 것 외에 다른 훈육을 경험한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각종 육아서와 전문가들은 아이를 존중하고 공감해주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스스로 존중받고 공감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던 부모들은 아이 행동을 무조건 다 받아주고, 아이 감정에 지나치게 맞춰주며 양육했고 부모의 권위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바움린드 부모양육태도 유형>


미국의 심리학자 바움린드는 '애정'과 '통제'를 기준으로 부모양육태도를 4가지로 구분했다.


통제가 높고 애정도 높은 유형을 권위있는 부모, 통제가 높고 애정은 낮은 권위적인 부모, 통제가 낮고 애정은 높은 허용적인 부모, 통제가 낮고 애정도 낮은 방임적인 부모가 그것이다.


어떤 유형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가?


정답은 통제와 애정이 모두 높은 권위있는 부모다. 자칫 통제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서 통제가 낮고 애정은 높은 허용적인 부모를 좋은 부모 모델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런 부모 아래에서 자란 아동은 자기조절력을 배우지 못하고, 좌절에 취약하다. 과거에는 권위적인 부모 아래서 위축된 아동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허용적인 부모 아래서 자기조절력을 배우지 못한 아동의 문제가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전 글에서 아동의 자율성과 주도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전제는 적절한 '통제' 안에서 그렇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 통제의 기준은 아이의 발달수준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다닐 유치원을 선택한다고 해보자. 부모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네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유치원 다섯 곳을 직접 돌아다닌다. 그리고 아이에게 어느 유치원에 가고 싶느냐고 묻는다. 언뜻보면 아이의 뜻을 존중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부모가 선택과 책임을 아이에게 미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네살짜리 아이가 유치원을 선택하는 기준은 이성적인 판단일 수 없다. 단순히 선생님이 예뻐서 좋아하는 장난감이 있어서 맛있는 간식을 주었기 때문에 같은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이유만 가지고 유치원을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유치원 환경, 선생님의 교육관, 커리큘럼, 부모의 생활 환경 등을 다각도로 고려해 골라야 하는 것이 누가봐도 이성적인 판단이며 이것은 부모가 해야 할 일이다.


아이를 통제하고, 아이 뜻에 거절을 하면 '아이가 상처받을까봐' , '아이가 기가 죽을까봐' 같은 것들은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결코 언제나 허용적이지 않으며 적절한 좌절을 경험해보아야 그것을 견디는 힘도 생기기 때문이다.


앞선 실험에서도 권위있는 부모의 자녀는 정서적으로 즐거우며 안정되어 있고, 자존감도 높다고 밝혀졌다. 또 자기조절능력과 인내심도 두루 갖추어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반면 허용적인 부모의 자녀들은 충동적이고 반항적이었다. 어른들에게 자나치게 의존하고 과도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인내심이 낮고 낮은 사회성을 보였다고 한다.




아이가 영유아였을 때, 불안이 높은 아이의 불안감을 낮추고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유일무이한 목표였고, 나의 양육태도는 '허용적 부모'에 가까웠다. 가급적이면 아이를 두고 외출하는 일을 삼가고 모든 일에 아이와 함께 했고, 아주 위험한 행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이가 스스로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고, 부모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기꺼이 요구에 응했다.


초등학생이 된 지금은 어떨까?


나는 이제 '권위있는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끔은 무서운 말투로 혼을 내기도 하고, 화를 내고 엄하게 대하기도 한다. 아이 옆을 늘 지키기 보다는 아이가 혼자서 등하교를 하고 놀이터에 나가 놀게 하기도 한다. 다만 시간 약속을 미리 정해두고 정해진 시간까지 돌아오도록 가르친다. 더불어 아이가 규칙을 잘 지켰을 때는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적절한 규칙과 통제 안에서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를 키우며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애정'과 함께 반드시 '통제'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애정만 있고 통제는 없는 양육은 아이에게 유익할 수 없다. 반대로 부모의 불안으로 지나친 통제를 하는 것도 아이의 건강한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사회가 정한 규칙을 수용하는 태도도 필요하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부부관계에 있어서도 최소한의 통제가 없다면 가정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우리 아이가 자라서 수월하게 사회에 적응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펼치며 살기를 원한다면 아주 어릴 때 가장 안전한 집에서부터 그것을 가르쳐야 한다. 갑자기 잘하게 되는 아이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애정은 넘치지만 통제가 부족한 사람이 있고, 통제는 편하지만 애정을 주는 것이 어려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나의 양육태도는 어떠한지를 점검해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설령 그 과정에서 아이가 상처받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건강하게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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