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고집'이 아니라 자율성과 주도성

by 책봄

마트 장난감 코너. 세살쯤 되보이는 아이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다. 당황한 엄마는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려고 있는 힘껏 아이를 안아 올리지만 아이는 온 몸으로 저항한다. 발버둥을 치며 활사위처럼 몸을 꺾어 기어이 엄마 품을 떠나는 아이. 그런 아이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엄마는 행여나 아이가 다칠까 반쯤 포기한 채로 다시 내려놓는다. 엄마 팔을 벗어난 아이는 이번에는 아예 바닥에 누워 울기 시작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무슨 큰 일이라도 생겼나싶어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곤 했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런 시선들이 엄마를 더욱 진땀나게 한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가 힘들겠네.' 속으로만 생각하고 모른척 지나친다. 사실 대부분은 큰 일도 아니다. 아이와 부모의 의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을 뿐.


아이가 두돌이 조금 지났을 때의 일이다. 아이는 편의점에서 파는 미니 약과를 좋아했다. 목이 메일까봐 먹기 좋게 반으로 잘라 아이 손에 올려주었는데 약과를 본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누가보아도 내가 잘못한 일이 없었다.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라고 손에 쥐어준 것이 다인데 무슨 잘못이 있냐는 말이다. 당황한 나는 아이를 달래보려 갖은 수를 썼지만 그럴수록 아이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결국 그런 아이를 지켜보다 황당하기도 하고 또 화도 나서 씩씩대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 날의 화근은 내가 약과를 반으로 잘라서 준 것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는 다시 약과를 원래 모양대로 돌려놓으라며 운 것이었다. 왜 엄마 마음대로 잘라서 주냐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대성통곡하고 울 일이니? 잘라주든 그냥 주든 약과는 약과지 뭐가 달라지니?'


그 이후로도 아들의 똥고집과 나의 난처함이 부딪히는 일은 한두번이 아니어서 언제부터인가는 나도 아들의 똥고집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너 마음대로 하라고 지켜보는 일이 많아졌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인간의 탄생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생애 전 단계를 8단계로 나누어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 이론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 단계별 반드시 획득해야 할 삶의 과제가 있다고 보았다.


부모가 아이를 양육하면서 아이의 똥고집 때문에 애를 먹는 시기가 보통 두 돌~7세 사이인데 이 때는 에릭슨의 발달 단계상 자율성과 주도성을 획득해야 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엄마가 잠시라도 한 눈을 팔면 아이는 높은 곳에 올라가 있거나 위험한 물건을 만지려고 하는 등 양육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차라리 누워만 있을 때가 편했지' 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


또 부모의 모든 말에 '아니' , '싫어', '내가 할거야' 같은 말로 응수하는 때도 이 때쯤인데 역시 아이가 자율성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중이라는 신호다. 세상을 자기 마음껏 탐험하고, 이것저것을 만지고 탐색하며 아이 나름대로 세상을 배워나가는 중인 것이다. 아주 사소한 일을 반복해서 성공하며 성취감을 느껴야만 다음 과제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 채워진 자율성은 다음 단계인 주도성을 배우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주도성이라고 하면 리더십있게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남들과 협동하며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자기가 원하는대로 마음껏 하며 욕구를 채운 아이들만이 남의 의견도 존중하고, 양보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이가 자율성을 획득해야 할 돌~세돌 시기에 나는 완전히 항복한 상태였다. 체력도 고갈되었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반포기 상태였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가급적 많은 것을 아이 뜻에 따라주었다. 주말마다 나들이를 나가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는 일은 못했지만 안전한 집 안에서 만큼은 매우 허용적이었다. 너무 지칠 때면 할머니 집에 데리고 가서 아이 뜻대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다행히 할머니 역시 매우 허용적인 분이었다).


부엌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를 꺼내서 놀 때도 모른척 내버려두었고, 온 집안의 옷을 다 끄집어 낼 때도 그러려니 했고, 직접 물을 따라마시겠다고 정수기 앞에서 장난을 쳐도 저러다 말겠지했다. 목욕하러 들어갔다가 거품놀이에 빠지면 몇 시간이고 그냥 욕실에서 놀게 두었고, 쌀을 씻어보고 싶다고 하면 비록 쌀알이 전부 쏟아져도 장난감 한번 사준 셈치고 마음껏 씻게 두었다. 에릭슨의 발달단계를 잘 알아서? 아니. 그냥 기운이 달려서 그랬다. 그런게 결과적으로 나의 어리숙한 행동이 아이의 자율성을 발달시켰다고 하니 뒤늦게 다행이다 싶은 생각은 들었다.


다만 딱 한가지 원칙만은 지켰는데 집이 아닌 밖에서는 엄격하게 행동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엄격하게 행동하며 아이와 부딪히게 되는 것이 싫어서 밖으로는 잘 안나갔다. 나가서 고집피우는 아이와 대립하는게 더 피곤하니까 차라리 집안 꼴이 엉망이 되더라도 집에서 노는 날이 많았다. 주말마다 나들이를 나가고,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는 일은 못했지만 안전한 집 안에서 만큼은 매우 허용적이었다. 너무 지칠 때면 할머니 집에 가는 일이 전부였다. 다행히 할머니 역시 매우 허용적인 분이라 할머니 집에서도 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놀았다.


만약 지금 어린 아이와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다양한 경험과 자극을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부모가 있다면 걱정하지 마시라. 아이는 지금 가장 안전하고 허용된 집 안에서 충분히 자율성을 누리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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