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기 힘든 애착의 무게

by 책봄

내가 아이를 낳던 때만 해도 엄마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되는 두 가지가 있었다.


자연분만과 모유수유.


두 가지 모두 엄마는 힘들 수 있겠으나 아이의 정서발달, 애착형성 측면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연구결과들을 나열하며 임산부 요가를 가르치던 선생님부터 신생아실 간호사, 조리원에 계시는 선생님들까지 같은 이야기를 줄줄이 쏟아냈다.


초보엄마인 나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고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에 관한 환상을 품기 시작했다. 나의 산후우울증의 8할은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에서 시작되었다. 신체구조상 모유수유에 불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조리원에 계신 마사지 선생님도 모유수유는 힘들 거라고 말씀하셨다. 조리원에 있는 내내 아이는 제대로 젖을 빨지 못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완모를 하겠다는 강한 집착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유축기 앞에 앉아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축기에 앉아 있을 시간에 차라리 잠을 보충하거나 아이를 한번 더 안아주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안다. 그때는 그렇지가 않았다. 어떻게든 자연분만과 모유수유에 모두 성공해 완벽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욕심은 산후우울증으로 이어졌다.


조리원을 퇴소할 때쯤 하루 종일 휴대폰을 잡고 앉아서 모유수유를 검색했다. 어렵게 마사지를 받으며 끝내 완모를 해냈다는 성공기를 볼 때마다 희망을 가졌다가도 젖을 빨지 못하는 아이를 보며 금방 실망하고 무너졌다.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한 아이가 30분에 한 번씩 자다 일어나 울고 수유콜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릴 때도 분유 대신 모유수유를 하겠다며 아이를 끌어안았다. 국물을 먹어야 모유다 돈다는 말에 식사 때마다 미역국을 한 대접씩 원샷했지만 조리원을 퇴소할 때까지 나의 유축량은 신생아 젖병 150ml의 1/3도 채우지 못했다. 아이에게는 아토피가 있었는데 그럴수록 모유를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인터넷 속 모유수유 성공기에 더 집착했다.


수유시간에 아이와 눈 맞춤을 나누는 대신 휴대폰을 보며 모유수유 성공하는 법을 검색했던 나는 보기 좋게 모유수유에 실패했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와의 소중한 수유시간도 휴대폰에 빼앗기도 말았다.




모유수유에 대한 집착은 '애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 초보엄마였던 나는 자연분만과 모유수유는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며 애착을 형성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애착 형성에서 중요한 것은 수유보다 접촉이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할로우의 원숭이 실험이다. 할로우는 새끼원숭이는 어미로부터 분리시킨 후 두 가지 모형을 준비한다. 하나는 철사로 만든 어미원숭이 다른 하나는 헝겊으로 싸놓은 어미원숭이였다. 철사원숭이에게는 우유병이 걸려있었고, 헝겊원숭이에게는 우유병이 없었다. 새끼원숭이는 누구에게 다가가 위로를 얻었을까?

출처 : 위키피디아

놀랍게도 새끼원숭이들은 우유 대신 헝겊을 선택한다. 배가 고플 때만 잠시 철사원숭이에게로 가서 젖병을 빨고는 금세 헝겊원숭이에게로 와서 부드럽고 따뜻한 촉감에 접촉하며 위로를 얻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할로우는 애착에서 중요한 것은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만족이 아니라 정서적인 만족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즉, 아이에게 먹이는 것이 모유이든 분유이든 상관없이 수유를 하는 동안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애정이 가득 담긴 마음으로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 애착형성에 보다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내가 '애착=모유수유'라는 잘못된 공식을 받아들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나를 희생해서라도 아이에게만큼은 최고를 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아마 많은 초보엄마들이 공감할 것이다.


정신과의사 문요한이 쓴 <관계를 읽는 시간>이라는 책에서는 건강한 애착을 이렇게 설명한다.


"안정적 애착이란 끝없는 '단절-회복'의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동아줄이지, 부모의 초인적 인내와 정성으로 한 번도 금 가지 않고 빚어낸 도자기가 아니다."


나처럼 아이와 애착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할까 봐 노심초사하며 초인적인 인내를 발휘하면서까지 아이에게 좋은 것만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애착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때로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항상 최고를 주지 못하더라도 아이와 대화를 통해 화해하고 서로의 욕구를 조율해 가는 과정이 더 건강한 애착을 만든다는 의미다. 그리고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그 일을 해내고 있다.


애착은 분명 생애초기 아이가 획득해야 할 과제임은 분명 하나, 언제나 최고를 주는 것만이 애착을 얻는 방법이 아님을 명심해야겠다.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문요한 지음 / 관계를 읽는 시간 / 더퀘스트 출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두통일지2. 약과 부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