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불행은 전부 너 때문이야!

프로이트 방어기제

by 책봄

남편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어느 해 연말.


우리는 연말을 맞아 호캉스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린 아이와의 여행은 챙겨야 할 것이 한두개가 아니라서 정신없이 준비를 하는 와중에도 남편은 도와주기는 커녕 무슨 이유 때문인지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속으로는 좀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괜히 출발 전부터 그를 자극해 일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서 아둥바둥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차의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할 때, 남편이 갑자기 어떤 물건을 챙겼는지 물었다.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매우 사소한 물건이었기 때문에 그게 뭐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 맞다! 깜빡했네."


남편은 순간 불같이 화를 내며 무리하게 차를 돌렸다.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며 아이의 손을 잡았다. 더이상은 나도 참을 수 없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씩씩거리며 물건을 가져온 남편을 향해 참았던 화를 쏟아냈다.


"오전 내내 준비하는 동안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누워서 폰만 보고 있었지. 내가 뻔히 아이랑 준비하느라 힘든 것 알면서 그건 당신이 챙겼어도 되잖아? 그게 내 잘못이야?"


언성이 높아졌고, 내 말은 타당했다. 남편도 머리로는 동의를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용납이 안되는지 거친 숨을 내쉬며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애가 스스로 옷입고 씻게 두면 되지 왜 쫓아다니면서 챙기느냐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진짜 내가 이 사람하고 계속 살아야 돼? 아니 살 수 있을까?


남편은 늘 이런 식이었다. 무슨 사소한 일만 생겨도 모두 내 탓 아니면 회사 탓을 했다. 연말 연이은 회식으로 눈병이 났을 때도 '이게 다 회사 때문이야.' 라며 화를 내고, 아이가 감기에 걸려도 '너가 주말에 혼자서 외출을 했기 때문이야.' 라며 나로서는 도저히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없는 핑계를 대며 남을 탓하기 바빴다. 자신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고 결백한데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듯한 태도. 주말부부 생활이 8년까지 이어진 이유 중 하나는 그런 그와 매일 붙어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는 인간의 정신은 원초아, 자아, 초자아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자아는 본능에 충실한 원초아와 도덕성과 양심의 기준이 되는 초자아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방어하려는 행동을 보이는 것을 '방어기제'라고 불렀다.


방어기제의 유형은 매우 다양한데 동생을 본 어린 아이가 퇴행을 보이는 것, 허세를 무리는 것도 모두 방어기제의 하나다.


남편이 늘 남을 탓하는 것은 '투사'라는 방어기제다.


늘 회사 탓을 하는 그 마음 속에는 '쉬고 싶다'라는 욕구를 가진 원초아가 있다. 그 생각은 '쉬는 것은 게으르고 불성실한 것이다' 라는 초자아와 부딪힌다. 자아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지만 연이은 회식과 야근으로 자아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눈병이라는 신체화 증상까지 나타난다. 건강한 자아라면 '몸이 피곤하다고 신호를 보내는구나. 휴가를 내야겠어.'라고 원초아와 초자아를 조율하겠지만 건강하지 못한 자아는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이게 다 회사 탓이야!' 라고 말하면서 꾸역꾸역 출근을 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남편은 우울증이었다.


불면증으로 매일 밤잠을 설쳤고, 주말이면 낮에도 표정없이 멍한 얼굴로 텔레비전이나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여행을 가자거나 가까운 나들이를 제안해도 늘 귀찮다는 듯 행동했다. 조심스레 남편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유하며 남편과 매일 밤 긴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할 때쯤 자신의 숨겨진 욕구와 치유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숨김없이 내뱉으며 남편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남편을 지배하는 감정은 언제나 '불안'이었다. 그것은 시부모님으로부터 아주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학습해 온 것이자 물려받은 유전자이기도 했다. 언제나 기대 이상의 성취를 통해 꽤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언제나 불안했다. 그 불안의 대부분은 근거도 없고 일어날 가능성도 극히 희박한 것이었으나 그에게는 꽤 진지했다.


나는 남편의 불안을 지켜보며 아빠에게 일부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들의 불안을 걱정하게 되었고, 그 걱정을 해소하기 위한 방어기제로 '예견'을 선택했다.


예견이란 미래에 생길 수 있는 불안을 미리 예측하고 계획을 세우며 대안을 탐색하기 위한 전략을 말한다. 상담심리를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남편과 아들의 불안으로 불안해진 내 자아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던 것이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이해하면 행동을 조금은 변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편하게 사용하는 잘못된 방어기제 대신 적절한 행동도 배울 수 있다. 방어기제에 대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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