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거부에 적용한 플라시보 효과

by 책봄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마음이 조급했다. 겨울이 왔음은 곧 한학기가 끝난다는 뜻이고 머지 않아 새학기가 시작될 거란 의미다. 어디에 가나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아이를 둔 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다. 새로운 교실,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새출발을 하는 3월은 설렘 보다는 걱정이 크다는 것을.


기질적으로 위험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높고, 낯선 상황에서 충분한 관찰이 필요한 아이는 처음 유치원에 갈 때 엄청나게 울었다. 배테랑 선생님부터 원장 선생님까지 동원되어 아이를 달래보았지만 해결이 되지 않아 결국은 아이를 뿌리치듯 교실에 던져놓고 도망쳐 나왔던 유치원 첫 등원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의 등원거부 이유는 유치원이 싫은 건 아니었다. 하원할 때는 즐거운 표정이었고, 유치원이 재밌고 친구들 선생님도 다 좋다고 했다. 선생님의 피드백도 긍정적이었다. 단지 아이가 견디기 힘든 것은 딱 한가지.


'엄마랑 헤어지기 싫어.'


그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어렸을 때,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대단한 분리불안을 겪었다. 이후에 상담심리를 공부하며 그것이 '분리불안장애'라는 것을 알았다. 성인이 된 나는 엄마와 분리되어서 잘 살고 있으니 아이의 분리불안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으나 매일 아침 등원거부 실랑이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방법을 생각해냈으니 바로 '플라시보 효과'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플라시보란 '기쁨을 주다' 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말로 플라시보 효과란 의사가 효과 없는 가짜 약을 환자에게 처방했는데 환자는 그 약이 효과가 있다고 믿어 병이 호전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환자의 심리적 요인으로 가짜 약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플라시보의 효과가 더욱 좋은 경우를 살펴보면 환자가 의사에 대한 신임이 높은 경우, 솔직하고 순진한 성격의 사람일 경우가 그렇다.


아이에게 나는 신임이 높고, 아직은 엄마 말을 믿을만큼 솔직하고 순수한 나이이므로 속는 셈치고 플라시보 효과를 적용해보기로 했다.


1단계 - 아이와 놀아줄 때, 등원상황을 떠올리며 감정을 읽어준다.


"00아, 유치원갈 때 횡단보로를 건너면 갑자기 엄마랑 헤어지기 싫고 긴장되고 눈물이 나지?"


"엄마도 어릴 때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어서 눈물이 계속 났어. 진짜 웃기지?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엄마는 스무살 때도 할머니랑 헤어지기 싫어서 울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눈물나는 거야. 당연한거야. 엄마도 00이를 너무 사랑해."


여기서 포인트는 등원할 때 눈물나는게 당연한거라는 것! 너의 감정은 정당하다는 것! 엄마도 예전에그랬다는 것! 그리고 웃으면서 아무렇지 이야기할 만큼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2단계, 엄마랑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 들 때, 어떻게 할지 해결책 제시


"00아, 엄마가 찾아보니까 이 초콜릿에 마법을 걸면 파워알약이 된다고 하네! 이거 먹으면 용기가 생기고 눈물도 안 난데!!!!"


"엄마랑 같이 초콜릿 사와서 파워알약으로 만들어놓자! 그리고 내일 아침 유치원갈 때 시험해보는거야! 준비됐어?"


"이것은 이제부터 파워알약이 됩니다. 이걸 먹으면 용기가 생기고 눈물이 나지 않아요."


엄마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정말 파워알약이 되어 아이를 씩씩하게 등원시켜줄 거라고 굳게 믿으며 간절하게 마법을 걸어야 한다.



3단계, 아이 스스로 "소리내서" 되뇌이게 한다.


자기암시라고 하지요? 실제로 상담을 공부해보니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있는 환자에게 스스로 소리내어 긍정적인 생각을 말할 수 있도록 하는 치료법이 있다. 그래서 교과서대로 아이에게도 스스로 소리내어 말할 기회를 주었다.


"00아, 유치원갈 때 파워알약 먹으면 용기가 생겨 안 생겨?"

"생겨!"

"파워알약 먹으면 눈물이 나? 안 나?"

"안 나!"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울지말고 유치원에 가야돼' 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아니라 '파워알약의 힘을 믿어보자'라는 가벼운 느낌으로 말했요.


그리고 디데이 아침. 집 앞을 나서기 전, 한번 더 되뇌이게 했다.


"00아, 유치원갈 때 파워알약 먹으면 용기가 생겨 안 생겨?"

"생겨!"

"파워알약 먹으면 눈물이 나? 안 나?"

"안 나!"


그리고 등원거부가 시작될 기미를 보이기 직전! 엄마가 먼저 선수치며 외친다.


"00아, 드디어 시험해볼 때가 됐어! 빨리 먹어보자!"


그리고 아이가 입에 넣자마자, 호들갑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오오오~ 진짜 눈물이 안 나잖아! 용기가 생기고 있나봐! 우와~ 이대로 한번 가보자!"


아이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말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매일 아침 파워알약으로 변신한 초콜릿을 먹으며 용기를 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아이는 유치원에 적응했고 일곱살 형님반이 되었다.


3월의 첫날. 엄마를 붙잡고 길에서 울고 있는 동생을 보며 아이가 말했다.


"엄마, 동생은 파워알약을 모르나봐. 우리가 가르쳐줄까?"


아이는 진짜로 파워알약의 힘을 믿었을까? 아니면 애를 쓰는 엄마의 진심이 통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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