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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이 Jan 15. 2024

노는 남편의 간식을 준비하는 마음

드디어 남편의 일과에 새로운 일이 추가되었다. 열흘 정도를 신나게 집에서 밀린 TV만 보던 남편이 드디어 생산적인 일을 시작했다. 수영강습을 받기로 한거다. 남편은 물을 무서워한다. 어느 정도냐하면 아이가 어릴 때 수영장이 있는 펜션을 놀러간 적이 있는데 가슴 정도 오는 물높이에서도 겁을 먹어 아무것도 못 하는 바람에 나 혼자 독박으로 아이와 놀다 지친 적이 있었다. 그 후로 우리 부부는 여름에도 물놀이를 잘 다니지 않았다.아들이 커서는 수영장에 가려면 필연적으로 남편이 나서야 하는데 남편이 물을 좋아하지 않으니 수영장이 가까이에 있어도 갈 일이 없었다. 


그런 남편이 수영을 배우겠다고하니 뜬금없이 무슨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평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이번 기회에 꼭 배우고 싶다길래 응원하는 마음으로 수영복과 수영모, 수경을 선물했다. 가방 안에 고이 넣어 첫 강습을 떠났다. 떠나는 사람은 남편인데 왜 내가 더 떨리는지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전화를 걸어 물었다. 


"어땠어?"

"괜찮던데. 심지어 물에 떴어."


모처럼 새로운 도전에 들뜬 남편의 목소리가 반가웠다. 남편의 그런 모습을 오랜만에 보아서 기분이 좋았다. 


남편은 의지가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분 정도 걸리는 출퇴근 시간에도 집에 오면 피곤하다고 누워있고, 주말에도 나들이 보다는 집에서 TV 보기만 좋아하니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너무 심하다 싶었다. 틈만 나면 휴대폰을 들고 게임을 하거나 인스타 릴스를 보고 있으니 의욕도 없고 도전정신이라고는 눈을 씻어도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사람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휴직을 하고 열흘동안 누워서 TV만 보고 있을 때도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싶었다.


그런데 열흘을 누워만 있던 남편은 마치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동물이 다시 숲을 누비듯 의지를 불태우며 매일 아침 수영장으로 향하는 중이다. 나와 아들이 아직 자고 있을 시간에 조용히 혼자 일어나 아침밥을 스스로 챙겨먹기까지 한다. 나도 번번이 실패했던 미라클모닝을 실천 중이다. <나는 솔로> 대신 수영하는 법에 관한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우리 대화에는 '수영'이 단골 주제가 되었다. 여름방학 특강으로 잠시 수영을 배웠던 1학년 아들까지 나서 "아빠, 음파음파는 이렇게 하는거야."라며 훈수를 두고 "너가 그렇게 잘 하면 같이 가서 좀 가르쳐줘라." 라고 응수하는 남편. 그 둘을 지켜보는 마음이 왜 이리 뿌듯한지. 


남편에게 부족했던 것은 의지가 아니라 여유였나보다. 나를 위해 투자할 마음의 여유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남편도 가족을 위해 애를 많이 썼구나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그 마음은 허기진 남편을 위해 준비하는 간식으로 대신 전한다. 고마워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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