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고전 읽기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를 읽고
소설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 이디스 워튼.
<순수의 시대>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상류층 청년 뉴랜드 아처는 착하고 순수한 메이 웰랜드와 약혼하지만 이혼을 결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엘렌 올렌스카 부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엘렌과 메이는 사촌지간이다. 과연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줄거리만 놓고 보면 고전판 '사랑과 전쟁'을 방불케 한다. 그렇다. 고전소설하면 고리타분할 것 같지만 현대판 막장 스토리 뺨치는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줄거리만 들으면 퓰리처상을 왜 받았는지 의문이 든다.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적 상황과 뉴욕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소설의 시작 역시 당시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1870년대 초 1월의 어느 저녁, 크리스티나 닐손이 뉴욕 아카데미 오브 뮤직에서 열린 <파우스트>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870년대 뉴욕은 산업화 이후 올드머니라 불리는 전통명문가와 뉴머니라 불리는 신흥부자간의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던 시절이다. 올드머니는 자신의 계급을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폐쇄적이고 엄격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 중 하나인 현대의 뉴욕을 생각해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분위기다.
그들은 왜 그렇게 예의와 규범을 중시했을까?
챗GPT와 독서토론을 통해 나눈 내용이다.
Q. 나는 이디스워튼의 소설 <순수의 시대>를 읽고 있어. 1870년대 미국 뉴욕 상류사회를 배경이라고 해. 지금의 뉴욕과는 정말 다른 모습이더라. 당시 뉴욕의 시대적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A. 순수의 시대의 시대 배경은 1870년대 미국 뉴욕의 상류사회입니다. 이 시기는 미국 역사상 "Gilded Age(도금시대)"라 불리는 시기로, 산업화와 경제 성장으로 부를 축적한 상류층이 엄격한 예절과 규범을 중심으로 폐쇄적인 사회를 형성하던 시기예요.
보수적이고 위선적인 상류층 사회 겉으로는 도덕과 전통을 중시하지만, 실제로는 체면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이 많아요. 개인의 감정보다는 가문, 체면, 사회적 기대가 우선시 됩니다.
여성의 제한된 역할 여성은 ‘순결하고 얌전한 아내’의 역할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요구되었고, 독립적이거나 자유로운 여성은 쉽게 배척당했습니다. 엘렌 올렌스카가 이혼하려 하자 사회 전체가 그녀를 경계하고 비난한 것도 이 때문이죠.
유럽과의 대비 당시 유럽은 상대적으로 개방적이고 예술, 사상, 자유로운 연애 등이 인정되는 분위기였던 반면, 뉴욕은 보수적이고 경직된 문화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엘렌은 유럽 생활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이 뉴욕 사회와 충돌을 빚습니다.
산업화 이후의 신흥 부자 vs 구귀족 전통 명문가(올드 머니)와 신흥 부자(뉴 머니) 사이의 암묵적인 계급 장벽이 존재했으며, 올드 머니는 보수적인 규범과 전통을 더욱 강하게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뉴랜드 아처의 갈등과 선택을 더욱 비극적으로 만들며, 작가 이디스 워튼은 이를 통해 ‘진정한 순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독자에게 던집니다.
당시 뉴욕은 전통 명문(올드머니)과 신흥 부자(뉴 머니) 사이에 계급이 존재했고, 올드 머니는 엄격한 규율과 전통을 강조하며 자신의 세력을 지키려 했다. 그런 상류사회에 나타난 엘렌 올렌스카는 위협적인 인물이었을 거다. 불행한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혼'을 하겠다는 그녀. 격식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당당하게 무도회에 참석하는 그녀. 뉴랜드 아처는 자신의 명예에 타격을 입을까 걱정하며 앞장서서 그녀의 이혼을 막는다. 개인의 행복보다는 사회적 평판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뉴랜드 아처는 엘렌과 사랑에 빠짐으로써 스스로 만든 무덤에 빠지는 격이 된다.
자유롭게 개방적인 엘렌 올렌스카를 사람들은 뉴욕에서 온 외국인이라며 배척한다. 뉴욕은 왜 유럽을 경계했을까?
Q. 소설 <순수의 시대>에서 뉴욕과 유럽이 자주 비교되잖아. 당시 뉴욕 사람들은 왜 그렇게 유럽과 비교하며 배척했던 거야? 소설의 배경이 된 당시의 뉴욕의 생활상이나 문화를 알려주면 좋겠어.
미국은 유럽과 달리 전통 귀족 계급이 없어서, 부를 통해 지위를 쌓아야 했고, 이로 인해 신흥 부자와 전통 상류층 간의 긴장감도 존재했어요.
뉴욕 상류층은 유럽 귀족 사회를 문화적 정점으로 동경하는 동시에 미국식 가치관(순수, 독립, 도덕성)과의 갈등이 내면에 있었죠.
이디스 워튼은 소설을 통해 뉴욕 상류층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올드 머니가 가진 전통 기반이 약하다는 치명적 단점은 타인을 배척하고, 엄격한 규율과 원칙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소설은 이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책을 읽다 보니 단순한 막장 드라마 로맨스 소설로만 읽히지가 않는다. <순수의 시대>라는 제목도 새롭게 느껴지고 표지에 있는 순진한 표정의 여성도 다르게 보인다.
이 작품은 1921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은 작품에 대해 "미국의 건전한 생활과 예의범절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디스 워튼은 제목의 역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심사위원들을 보며 황당해했다고 전해진다.
퓰리처상 심사위원조차 꿰뚫어 보지 못한 제목의 역설을 챗GPT와의 몇 번의 대화를 통해 알아내다니. AI와 고전 읽기를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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